서쪽 끝 농단, 북성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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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끝 농단, 북성동
  • 유광식
  • 승인 2016.12.29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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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소요] (6) 유광식 / 사진작가
▲ 유광식_북성포구(선상 파시)_2011

요즈음 사회적 화두는 단연 국정농단으로 말미암은 대통령 퇴진 운동일 것이다. 매 주말은 습관처럼 광장을 찾아 촛불을 밝히고 있다. 그렇게 연이어 서울과 지역 곳곳에서 촛불은 오르는데 이에 질세라 비선들의 방어도 만만치 않다. 과연 거리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고 취할 작정인 것인가? 분명한 것은 이번 사태는 “아니다!”라는 의식을 행동에 옮긴 경우로서,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부당함에 맞서 싸울 줄 아는 큰 의지를 지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서울 가까이 인천은 개항과 더불어 서울로의 첫 관문이었지만 지금은 그 역할이 감퇴되어 싸늘한 분위기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북성동은 예로부터 발전과 쇠퇴를 사인(sin)곡선처럼 반복하고 있다. 지리적 위치로 말미암은 자연스런 조건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 쇠퇴의 현상을 이용하는 무리가 있는 듯 우려가 크다. 현 시국 못지 않게 아니다!라는 현상이 잦은 곳. 떠나보자. 그 현장의 속으로. 내항 바다를 볼 수 있는 첫 장소. 자유공원을 시작으로 그 걸음을 옮겨본다. 하루 아니 반나절이어도 족하다.

자유공원 위에 서자마자 커다란 배(실제 관망대는 배 모형이다.)를 타고 우리는 항해를 시작하게 된다. 공원엔 많은 어르신들 못지않게 많은 비둘기가 노닐고 있다. 광장에서는 남으로 인천내항과 북으로 수도국산을 바라볼 수 있지만 가장 많이 담아가는 풍경은 인천상륙작전으로 유명한 맥아더 장군 동상이 아닐까 싶다. 한 겨울에 동상이 걸릴 만도 한 차가운 자태이다. 시대가 많이 변했건만 동상보존결의대회란 명목으로 매년 가을 이곳 광장에서 설탕을 쌓아놓고 달콤한 보수집결행사를 이어가고 있다. 좀 더 서쪽방향으로 옮겨 내려가 본다.  


▲ 유광식_자유공원(맥아더동상 앞 사람들)_2011

▲ 유광식_자유공원길_2011

설탕의 달콤함은 달고나로 달래고 그 옆 중식당에서 짜장면을 먹는다. 인천과 부산의 차이나타운은 그 역사를 같이 한다. 개인적으로 차이나타운에서는 중식요리 말고는 다른 특성을 경험하지 못했다. 지역과 화교협회와의 교류는 몹시 제한적이고 단지 책으로만 살필 뿐 사진 몇 장 찍고 궁금함으로 남기게 된다. 그래도 같은 땅 아래 이웃하고 살면서 우리는 너무 모르고들 있어 안타깝다. 어쨌든 짜장면의 맛은 어린 시절 말만 들어도 군침이 돌았던 설렘을 언제든 해소시켜 줄 수 있음이 반갑다. 음식은 맛을 딛고 기억이며, 이동의 지표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배를 채웠다면 이제 언덕 밑 패루를 넘어 인천역으로 간다. 

 

▲ 유광식_차이나타운_2011

인천역! 대학시절 기차 타고 마지막에 내린 역! 내려 본 풍경은 황량함과 택시 몇 대, 식당 안 불빛 그 정도다. 지금은 수인선이 지하로 개통되어 시흥과 안산까지 옛 노선을 회복했다. 얼마 전 지나가다 역 맞은편에 롯데리아 패스트푸드점이 생긴 걸 보고 복합역사계획이 순간 떠올랐다. 기존의 건물을 위협하는 숨이 콱! 막히는 큰 건물은 바라지 않는다. 가뜩이나 좁고 사람 많은 곳에 빼곡히 콘크리트를 밀어 넣는 자! 누구의 놀음인지 모를 그런 개발?은 환영하고 싶지 않다. 수인선에 얽혀 있지 않은 자 없고 걸려 있는 고기와 추억이 막대했던 옛 시절! 그러나 지금은 수인선 개통이 둥지내몰림(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의 원흉으로 뭇매를 맞고 있다. 개통과 더불어 원통해 죽겠다고들 한다. 교통의 확충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기도 하지만 이렇게 갈등과 분리를 일으킨다. 이것은 누구의 농담 섞인 농단인가?
 
 
▲ 유광식_인천역사_2016

비둘기들을 벗하며 인천역에서 걸어 본다. 자유공원광장에서 내항 건너 보이던 인천만의 환타지아, 월미도가 나타난다. 월미도는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고, 자전거를 타고 갈 수도 있다. 섬이자 육지인 월미도. 젊은이들은 월미놀이공원에서 디스코를 탄다. 옛날 디스코를 추던 문화는 이제와 자동화된 기계에 몸을 싣는 것으로 대체된다. 말이 디스코지 내가 보기엔 커다란 세탁기 돌리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한편, 간혹 마음이 싱숭생숭 할 때면 나는 혼자서 월미산을 오르내리곤 했다. 높지 않은 산이고 전략적 요충지라 군 시설이 많고 개방이 이뤄진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산중턱 한 바퀴(20분)를 돌면 심신이 정화되는 것을 인천항 풍경과 더불어 체감할 수 있다. 최근에는 전쟁 통에도 살아남은 나무가 있을까라는 물음에서 수령을 조사해 공원사업소는 살아남은 나무라는 표식을 해두었는데, 그 진위여부를 떠나 재미있다. 월미산 전망대에 오르면 송도, 청라, 영종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먼 바다보다는 높이 솟은 빌딩을 지표 삼아 바라보게 되는데, 우리는 그만큼만 인천을 알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개발이라는 이름의 마천루들. 2000년 초 많은 청년들이 그랬을 경험의 한 예처럼 새벽에 서울에서 몇 명의 동료와 함께 승용차로 내달려 월미도에 당도한 기억이 있다. 나는 다소 취한 상태로 내렸는데, 내리자마자 짠내음 그득한 향에 급기야 울렁거리는 리듬을 난간 아래 바다에 쏟아내고 말았다. 그렇게 월미도는 내게 짜고 또 짜다. 월미도엔 현재 위락시설이 증설되었고 일부 친수면 매립이 이루어졌고 물범(카)은 바다 아닌 산을 오르내리느라 힘 꽤나 들 것이다. 그리고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관계기관장들의 월미도 토지매매의 수상한 거래도 있다고 한다. 월미도에서 정신없이 노는 가운데 머리 굴리는 놈들이 창궐한 격이다. 그러기에 앞서 과거 미군 폭격으로 인한 월미도 민간인희생자에 대한 사실을 그들은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북성동은 상처 입은 기억의 자취가 많다.  

 
▲ 유광식_월미도(오래된 주상복합건물)_2016

북성동에는 야심차게 진행된 사업이 하나 있다. 월미은하레일이 바로 그것인데, 전면적 부실시공으로 인해 시민의 혈세가 샜고 최근 소형모노레일로 재시공하면서 한 쪽 다리 잃은 모양새로 현재 레일은 빨갛게 녹슬어 있다. 9년 여 동안 매연과 시민분노가 쌓인 6.1km의 레일 주변은 비둘기들의 임시거처가 된지 오래다. 보면 볼수록 울화통이 터진다. 시공사와 시는 그 동안 니탓내탓 꼭 청문회 상황과 별반 다르지도 않았다. “잘 모르겠습니다.”라며. 레일따라 인천역 방향으로 걷다 보면 방치된 분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웃고 있는 하얀 곰 한 마리를 발견하게 된다. 대한제분 공장의 싸일로(곡물저장탑) 옆길로 가본다. 밀과 옥수수가 혹 떨어져 있다면 가만 놔두어야 한다. 비둘기의 소중한 밥상이다. 길 안쪽으로 악취일 수 있는 향이 있지만 그러지 말고 참고 가야 한다. 인천은 그렇게 달콤하지 않다. 그럼에도 소중한 장소와 역사, 역동이 늘 곁에 스며 있다. 

월미은하레일을 따라 걷다보면 어느새 하얀 곰의 육중한 웃음이 가까워져 있다. 그렇게 북성포구에 도착한다. 지금 이곳을 무심결에 지나칠 수는 있지만 중국집의 여러 코스요리처럼 그리 실망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이곳은 현재 우리의 여정에서 짚어야 할 중요한 장소이기도 하다. 북성동의 지명을 이곳에서 오롯이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원래 북성동은 ‘북쪽의 성’이라는 뜻으로, 작은 포가 있었다. 현 대한제분공장 자리가 그 위치를 대신하며 지금은 그 앞에서 북성포구라는 이름으로 작게나마 어업과 판매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가을이면 사람들이 먼 곳에서도 씩씩하게 차를 몰고 와 포구위치를 물은 다음, 새우젓을 사다 김장을 담근다. 지금도 어업선 위에서 선장 아내와 사람들의 흥정을 흔하게 접할 수 있다. 인천에 몇 남지 않은 포구이자 감성을 유인하는 장소성이 짙은 곳이다. 최근 악취민원과 인근 준설토투기장으로 지목되면서 매립될 위기에 봉착하자 <인천북성포구살리기시민모임>이 결성되었다. 좀 더 깊이 바라보니 매립 후 땅을 매매하겠다는 검은 계략의 구조가 밝혀지면서 저항이 커지고 있다. 인천의 정체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닐진데 누구의 소유인지도 모를 바다면을 누가(최씨 일가는 아닐테지) 왜 가지고 노는지 모르겠다. 물론 일부 주민과 항만관계자는 이런 움직임에 대한 불편함으로 일필휘지 현수막 시위를 하고 있다.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한다. 어떤 가치를 지킬 것인지. 근처 내항1?8부두 재개발도 결국은 주거시설의 확장이 될 듯도 한데 인천의 주무관청의 장은 왜그렇게 콘크리트 블록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현재는 문화의 시대이며 공공의 공유공간 개념이 확장되는 때이다. 작은 포구의 불법시설 등은 고치되, 갯벌매립으로 인한 악취제거(차라리 냄새 먹는 하마를 키우는 방법?ㅠㅠ)라는 그들의 놀림에는 그 동안의 생선이 주입한 영양가도 포함되어 있음을 그들은 기억할 일이다. 여전히 삶의 굴곡진 리듬에, 굴 까는 아주머니들과 새우젓 마을의 낮은 지붕 아래 온도가 그리 쉽게 사그라들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민들은 이 상황을 침묵하지 않고 행동할 것이다. 우리가 밝힌 촛불이 그 촛불을 아끼는 자에게는 따뜻하지만, 악의를 품는 자에겐 따끔한 바늘 같은 뜨거움일 터이다.


▲ 유광식_대한제분 옆길(북성포구 진입로 중 하나)_2013

▲ 오유진_북성포구_2007

▲ 김주혜_북성포구 입간판(왼쪽 갯벌면이 매립예정지)_2016

북성동을 거닐며 마냥 좋은 풍경보다는 파도치는 분노의 표현들이 담기는 현재이다. 그래서일까? 마을주민의 삶보다는 공간의 현안들만 숱하게 언급한 꼴이 되어 버렸다. 복잡다양한 현안들 속에서 북성동의 정체성이 변색되는 것 같아 보여도 어떤 이는 북성동이 “지도상으로 보니 모양새가 꼭 심장 같다.”라고 한다. 인천의 심장과도 같은 역할을 기대해 본다. 의미가 심장이다. 


▲ 유광식_북성포구 진입구(대한사료와 배수리 공장 옆 사잇길)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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