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와 토론과 성찰이 이루어지는 우리들의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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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토론과 성찰이 이루어지는 우리들의 광장
  • 이혜정
  • 승인 2016.12.27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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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칼럼] 이혜정 / 청소년창의문화공동체 '미루' 대표




지난 10월 24일, ‘정유라의 도발’이라는 제목으로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입학을 다룬 글을 썼다. 그리고 딱 2개월 사이, 대한민국은 거센 역사의 소용돌이를 건너고 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저 최순실과 그의 딸의 문제인지만 알았다. ‘대한민국 권력서열 1위는 최순실, 2위는 정윤회, 3위는 박근혜’라는 이야기가 돌아도 그것만은 입에 담을 수 없었다. 아무리 정책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해도 일국의 대통령을 그렇게 폄하하는 것은 그래도 아니라 생각했다. 그런데 바로 24일 저녁 JTBC의 특종보도로 비선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백일하에 드러났고 다음날 대통령은 1차 담화를 통해 최순실과의 관계와 '연설문 개입'을 인정했다. 헌법과 법률을 사수해야 할 한 나라의 대통령이 사사로이 권력을 남용하고 국가의 기밀을 사인에게 제공한 엄청난 현실 앞에서 모든 국민이 허망하고 허망하고 또 허망했다.
 
하지만 누군가 ‘개, 돼지’와 같다고 얘기한 국민은 헌법이 정한 그대로의 모습으로 또다시 침몰하고 있는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광장에 나섰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역사를 가로질러 심장에 새겨진,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진리와 정의를 대한민국의 국민은 광장에서 다시 확인하고 있다. 광장에서는 80세 어른신도 하나의 촛불이고 한 살배기 우리 동네 유나도 하나의 촛불이다, 그 광장에서 민주주의는 뚜렷한 실체로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광장은 광화문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광장은 식당에도 있다. 50대의 아주머니 두 분이 식사를 하시면서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시는데 그 전개가 얼마나 치밀한지 계속 듣게 되었다. 두 분은 정유라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박근혜와 최순실의 인연, 그리고 최태민과 박근혜 대통령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조목조목 이야기를 나누고 60년대, 70년대 해먹던 짓을 21세기의 나라에서 계속하고 있었다고 개탄했다. 서로 궁금한 것을 묻고 대답하며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모습이 여느 토론 프로그램 못지않았다.
 
광장은 지하철 안에도 있다. 지하철 안에서 만난 70대의 할머니는 어디 가느냐며 물으신 뒤자신이 용인 산다고 말을 꺼내신 뒤 부끄러워 살 수 없다고 입을 떼셨다. 이유인즉 최태민의 무덤이 용인에 있는지도 몰랐고 용인에 살면서 그 사람 무덤이 그렇게 있다는 것이 낯 부끄럽다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결국 나에게 지지하는 대선주자를 물으시고 당신께서는 이재명을 생각하고 있다고 하셨다. 당연히 할머니의 연세에 어울리지 않는 선택이라 이유를 물었더니 종편에 나와 토론하는 모습을 지켜봤는데, 논리적이며 힘 있는 리더십까지 갖춰, 지금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지도자라 생각하셨단다. 할머니께서는 자신의 생각에 분명한 근거를 가지고 조리있게 말씀하셨다.
 
광장은 버스 정류장에도 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퇴근길의 아주머니는 당신이 시급이 6,030원인데 최순실과, 박근혜 대통령, 재벌들이 결탁하여 수백원이 움직인 것을 보면 한 숨만 나온다는 얘기를 하셨다. 나 같은 사람이 삼성에게 가서 시급 6030원 받으며 사는데 어려우니 우리 아들이 축구하는데 어려우니 기금 출연하라고 하면 하겠느냐며 결국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사사로이 사용했으며 그 대가로 삼성이 합병하는데 손을 들어준 것 아니냐며, 건강보험공단이 손해 본 5000억 원을 국민 호주머니에서, 결국 내 호주머니에서 채울 생각을 하면 울화통이 터진다고 하셨다.
 
미국에서 오랜만에 귀국한 친구를 환영하는 자리에서 친구들은 권력에 부역한 자들의 모습을 톺아보며 우리 사회의 모습을 나로부터 점검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하수인 노릇을 자처했던 김종 차관, 안종범 정책조정수석비서와 우병우 민정수석, 김기춘 비서실장, 그리고 황교안 권한대행을 비롯한 국무위원, 새누리당 친박계 국회위원에 이르기까지 정상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모른다, 기억이 안 난다고 하나같이 발뺌하고 있다. 그들이 과연 몰랐을까? 몰랐다면 모두가 직무유기요, 알았는데도 모두가 침묵하고 동조하고 있었다면 부역자들이다. 대통령이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하면 검증도 없이 사람을 찍어내고 대통령이 기금을 조성하라면 어떤 생각도 없이 재벌들을 강탈하고, 시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시청의 화장실을 대통령이 방문한다고 뜯어 교체하고. 뿐 만이랴. 대기업의 내노라하는 브레인들은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정유라의 분유값과 식대비용까지 제공해 왔고 정유라의 지원을 위해 사전 조율했다. 우리는 우리사회의 정⋅재계 인사들의 '생각없음'에 대해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검은 커넥션에 경악했다. 평범한 우리 친구들은 부당함과 부정에 가담하고 있는 것은 없는가 하고 스스로 되묻고 성찰했다.
 
광장에 나오지 못하는 자들, 그들에게 소통은 없었다. 광장에 나오지 않은 그들에게 토론은 없었다. 광장에 나오지 않은 그들에게 반성과 성찰은 없었다. 그들에게는 명령과 복종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이 누린 것은 부와 권력의 달달한 편안함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자들에게 미래는 없다.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자기 존엄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지금 광장에서 사유와 토론과 자기 성찰과 반성으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세워가고 있다. 우리 국민이 존엄해지는 만큼 대한민국은 성숙해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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