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되는데 왜 정치는 안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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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되는데 왜 정치는 안 되나요?
  • 이혜정
  • 승인 2017.02.28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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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칼럼] 이혜정 / 청소년창의문화공동체 '미루' 대표

아직 탄핵의 봄은 오지 않았다. 하지만 헌법을 유린하고 국민이 부여한 권력과 국가기밀을 특정 사인에게 일임하였으며,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는 임무를 방기해온 대통령이 탄핵되는 것은 국민의 명령이자 이 사회의 마지막 정의다. 탄핵 인용을 넘어 대한민국은 새로운 사회를 청사진을 펼쳐내야 하며 그 출발은 대통령 선거가 될 것이다. 대선주자들은 촛불로 열어낸 민주주의 새로운 장에서 자신들의 정책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커다란 그림을 그리기 전에, 대권주자로서 국민의 선택을 요구하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비극적 상황에 종지부를 내고 대한민국 민주주의 새로운 장을 가능하게 했던 모든 주체세력이 새로운 민주주의 장에서 자신의 권리를 평등하게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사전 정지작업이 바로 그것이다. 더 정확하게 만 18세 청소년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는 법제도의 개정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촛불이 더 넓게 확장될 수 있었던 것은, 촛불이 더 큰 존재감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광장을 메운 청소년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사실 인천지역에서 대학생들보다 먼저 광장을 지켜준 것은 해맑은 얼굴의 중학생, 고등학생들이었다. 그들은 광장에서 성숙한 시민으로 민주주의의 새장을 열었지만 새로운 정치의 장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 2월 임시국회에서 여야의 선거연령 하향 조정과 조기대선·재·보궐 선거 동시 실시 법안 등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만 18세의 선거권이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유엔 아동권리협약에서는 생존, 보호, 발달과 더불어 참여를 권리로 명시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청소년 정책에서도 청소년의 참여권은 지속적으로 강조되어왔다. 그 일환으로 청소년특별회의와 청소년참여위원회, 청소년운영위원회 등의 청소년 참여기구가 제도화 되었다. 없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이런 제도들이 실상은 성적도 좋고 스펙도 좋은 청소년들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것은 모든 청소년들이 알고 있는 진실이다. 사실 이런 제도가 없어도 모든 청소년들의 참여권을 보장하는 가장 광범위하고 확실한 방법은 바로 청소년들에게 선거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OECD 국가 중 아직도 선거연령이 19세 이상인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며, 선거연령이 확인되는 세계 234개국 중에서 19세를 기준으로 하는 나라도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한국보다 더 높게 잡은 나라는 10여개의 저개발국에 불과하다.

선거연령 하향을 반대하는 논리는 18세는 아직 정치적 판단력이 부족하다는 주장이다. 국가 운명을 좌우하는 선거인만큼, 애들에게 투표권은 주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하지만 18세가 어떤 나이인가? 18세가 되면 부모의 동의 없이 자유로운 결혼이 가능하다. 운전면허 취득이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공무원 시험 응시가 가능하며 위기의 상황을 당연히 전제하는 군대에 입대 할 수 있는 나이이다. 실제로 만 19세가 되지 않은 대부분 만 18세 청소년들이 술집에서 당당히 술을 마실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유독 선거만은 되지 않는단 말인가? 사실 이 정도에 이르면 만 18세 선거연령 하향 조정을 반대하는 이유는 특정 정체세력의 두려움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만약 만 18세의 청소년들이 사리판단이 어려워 선거권을 줄 수 없다면 치매 어르신, 조현병 등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분들까지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는 현 민주주의 선거제도는 모두 대전환이 필요하다. 이들의 논리대로라면 사실상 성숙함이 검증된 사람들에게만 선거권을 부여해야 하는 것이다. 정치적 성숙함의 정확한 기준을 마련하고 매번 선거를 치루기 전에 그 기준을 통과한 사람들에게만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부여해야만 할 것이다. 만약 이들의 논리대로라면 민주주의 근간이 모두 무너질 수밖에 없다.

한편 고등학교 3년 학생 일부 투표에 참여할 경우, 학교가 이른바 ‘정치판’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반대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학교는 어떤 곳인가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곳이다. 교육의 제일의 목표가 무엇인가 바로 민주시민 육성육성. 그래서 사실상 학교는 정치판이 되어야한다. 학교가 민주주의 산 교육장이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정치적 견해가 토론되어지고 스스로 참여를 통해 민주주의 가치를 생생하게 경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논리는 살아가는 모든 과정이 정치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며 이런 주장을 하는 분들이 정치를 이끌고 있다는 것은 심각하게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인들과 어른들이 미사여구로 청소년을 미래의 주역으로 추켜세우고 포장하면서 실상은 가장 중요한 권리를 유보하고 있을 때 청소년들은 스스로 정치적 공간을 만들고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여 왔다. 2008년 광우병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에서 촛불 소녀의 등장으로 재기발랄한 청소년들의 정치행위가 광범위하게 정치의 표면에 등장하였다면 2016년, 17년에는 네트워킹의 힘으로 무장한 새로운 유형의 청소년들의 참여가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아마 청소년들은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자신들의 정치적 역량을 폄훼하고 무시하는 정치세력이 누구인가? 미사여구로 포장하지 않아도 청소년들은 주역이 된다. 그리고 이미 주역이다. 청소년들은 이미 선언했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정치적이며 정치적 역량을 가지고 있다. 18세 청소년의 선거권을 더 이상 미루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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