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할머니와 며느리와 손녀
새끼손톱과 약지손톱에 빠알간 물을 들인 할머니가 걸어가신다. 허리가 많이 구부러진 할머니가 지팡이는 든채 뒷짐을 지고 오른발 왼발 걸어가신다.
계란 한 판 사려고 마트 다녀가는 길.
계란파동이라고 가격도 엄청 비싼데 살 수 있는 양도 제한적이다. 한 사람이 한 판 밖에 살 수가 없단다. 그것도 30알 들은 한 판이 아니라 15개 들이 두 개 이하로 제한적이다. 우리나라 계란보다 가격은 이천 원 정도 싼 하얀 달걀 백구가 미국서 건너와 한쪽에 많이 싸여있다. 가격이 조금 싸도 왠지 백구에는 손이 안 가진다. 우리 나라 달걀(달걀도 국산 미국산 따져가며 사게 될지 몰랐네) 15개 짜리 두 개를 살까하다가 15개 들이 하나를 사가지고 마트를 나오는데 허리가 반이 굽은 할머니 한 분이 앞에서 걸어가신다.
그 뒤로 할머니 딸인 듯한 여자와 손녀인듯한 여자아이가 이야기를 하며 할머니 뒤를 따라가고 있다.
할머니를 보자 자동적으로 움직이는 나의 두 발.
뒷짐을 지고 허리가 반이 굽어서 땅만 쳐다보며 천천히 걸어가시는 할머니.
어? 그런데 뒷짐 지은 할머니 손에 뭔가가 쥐어져 있다. 아이스크림이다. 누가바...(누가바?내가바 할머니~)
그런데 누가바 아이스크림이 할머니 소매에 닿아서 녹고 있다. 할머니는 그것도 모르고 땅만 보며 걸어가신다. 할머니 꼬까옷 다 버리겠네...
할머니 놀라실까봐 일단 한번 할머니~ 하고 불러드렸다.할머니가 못들으신다. 할머니에게 다가가 물휴지를 꺼내 할머니옷 소매에 떨어진 아이스크림을 닦아드렸다.
"거봐여, 안드실거믄 진작 버리라니까 ? 고맙습니다." 딸인 듯한 아주머니가 계면쩍게 웃으며 나를 쳐다본다. "아이스크림 드시고 싶대서 사드렸더니 틀니빠질까봐 안드신다네요."
"아 그러시구나 할머니~ 아이스크림 안 드실거면 제가 버려드릴까요?"
"버리긴 ?음식버리믄 죄 되야."
아, 그래서 할머니가 아이스크림을 들고 가시는 거였구나.
"할머니, 죄 안되시게 제가 버려드리께요."
"젊은 사람은 더더구나 죄되믄 안되지.앞으로 살 날이 더 많은데?"
할머니가 살가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시며 웃으신다. 그 눈이 참 정겨우시다.
"아, 어머니 그래서 안 버리신거예요? 주세요. 제가 버릴께여."
"됐다. 멀컹멀컹해지믄 그때 내가 먹을꺼야."
"아이스크림이 다 녹으면 그게 무슨 맛이예요. 이리 줘요.버리게."
달라, 싫다 실랑이를 하는 할머니와 며느리.
하더니 며느리가 갑자기 할머니손에서 아이스크림을 홱 빼앗는다.
당황한 할머니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신다.
당황한 할머니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신다.
"엄마, 할머니한테 왜그래에~. 할머니 내가 먹으께. 됐지? 엄마."
하더니 할머니 손녀가 자기 엄마손에서 아이스크림을 받아서 먹는다.
"고마와여, 학생."
"네? 아 네 ?"
아이가 웃는다.
손녀의 수줍은 웃음이 할머니를 닮았다. 수줍은 듯 부끄러운듯 그런 따뜻한 미소.
고마운 아이. 참 이뿌다. 할머니를 좋아하는 아이. 그래서 더 많이 고맙다.
"조심히 가세요, 할머니."
"... 그래요, 잘가요..."
할머니가 또 수줍게 웃으신다.
아이스크림이 없어진 손.
할머니는 여전히 뒷짐을 지시고 천천히 걸어가신다.
허리가 반 굽은 할머니가 뒷짐을 지고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걸어가신다.
아이스크림을 다 먹었나보다. 아이가 갑자기 뒤로 돌아서더니 깊숙히 허리를 굽혀 나에게 인사를 한다. 그러더니 할머니 팔짱을 꼭 낀다.
아이가 어른이다.
고맙다 이쁜 손녀 딸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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