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공과 지상의 경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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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공과 지상의 경계에서
  • 안정환
  • 승인 2017.03.27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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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안정환 / 해병대 병장 · 연세대학교 의공학부

우리나라 남자들에겐 스무살이 되고 법적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일종의 성인식과도 같은 기간이 있는데, 다름 아닌 군대다. 이 땅의 남자라면 모름지기 군대를 가기 마련이다. 나 역시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스무살이 되기까지 나름 열심히 살아왔다. 대학을 가기위해 공부하는 과정은 고달프기 그지없었고 꿈과 현실의 간극은 꽤 넓어서 이 둘을 애써 붙들고 있자니 늘 고통스러웠다. 몇 번의 위기와 수십 번의 갈등, 좌절을 반복하면서 원하는 대학을 들어갈 수 있었지만 대학은 또 다른 경쟁의 시작이었다.
 
한 학년을 마치고 나는 군대를 핑계로 숨 막히는 머리싸움에서 잠시 비켜나고 싶었다. 입대하는 날, 후덥지근한 8월의 하늘은 우중충했고 내 표정은 그보다 더 우중충했다. 하지만, 군대라는 미지의 규범으로 들어가는 두려움보다 2년간의 사회와의 합법적인 격리가 주는 안도감이 더 컸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이 순진한 안도감이 오산이었다는 것은 훈련소에 들어간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처절하게 깨닫게 되었지만 때는 늦었다.
 
온 몸의 세포가 살아 꿈틀대게 만드는 해병대. 그 중 난다 긴다 하는 공수부대에 배치된 나는 순수한 열정과 탐구를 필요로 하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합류했다. 나는 열심히 캔통을 나르고 병기를 휘두르며 군대 내에서의 과업들을 이행해갔다.
군대는 사회생활의 예행연습이라고들 말한다. 그래선지 생존을 위한 발버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반목과 갈등, 이간질과 시기도 존재했다. 다만 국가를 위해 목숨도 던질 수 있는 절대적인 목적을 두고 형성된 집단이라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내부에서는 반면에, 그러한 필사적인 목적이 개개인의 본성을 끊임없이 자극했고 덕분에 군대에서 인간내면의 여러 군상들을 볼 수 있었다.
 
군대에선 참고 인내하라는 통설들이 인간관계의 필요충분 조건이라 생각했지만 역시 행동으로 옮기기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논리와 사고가 강압적이고 때로 비상식적인 일들 앞에서 생각하지 않고 따르는 획일성에 나는 반기를 들었던 것 같다. 선임들 눈에 예뻐 보일리가 있겠는가. 제3자의 시선으론 암만 봐도 이상한 규칙을 군대 내에서는 문화로 인식하고 따르는데, 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들 하지만 큰 틀은 남아 있었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편으론 빠른 시간에 ‘군대화’ 되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났었고 더불어 자기혐오와 귀찮음, 어설픈 정의감과 양심이 배배 꼬여 조여들며 나를 괴롭혔다. 혼란의 종지부를 지어줄 명확한 선(線)이 필요했다. 그 선은 다행히도 늦지 않게 찾아 왔다.
 
공수부대에 있는지라 당연히 공수훈련을 받았고 마지막 1500피트에서 뛰어내리는 훈련만이 남아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헬기에 탑승하고 마침내 상공으로 뛰어들 때 나는 보았다. 푸른 하늘과 먼 바다가 보이며 닮은 듯 닮지 않은 해공(海空)의 정경을 명확히 구분 짓고 있는 수평선. 지상에서는 단지 미지의 세상에 대한 상상력만 주던 수평선이 같은 위상에서는 하늘과 지상의 상이함 속에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상공은 바람소리 하나 없이 놀랄 만큼 고요했고 내 목소리는 귀에 채 닿지 못하고 허공으로 흩어졌다. 고뇌의 해답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너무 겉돌지도 푹 빠지지도 않고 그 사이를 고수하며 중용의 태도를 유지하는 것. 함께 뛰어내린 동료들은 눈을 감거나 공포에 괴성을 질렀지만 내게는 그 광활한 허공과 수평선과 추락하던 바람은 또 다른 세계를 열어준 환희였다. 땅에 닿기 전 몇 초간 1500피트 상공에서 바라본 지상은 개미 만 한 사람들, 콩알 만 한 자동차들, 성냥갑 만 한 건물들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낙하가 끝나자 이내 세상은 다시 잡다한 소음들로 잠식돼갔지만 여운은 남아있었다.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도 그것을 바로 실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밥을 먹으면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듯 내게도 스스로를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다. 군대에서 내 태도는 여전히 까칠했지만 이 문제는 보편적인 범주로 환기해서 생각할 가치가 있었다. 1500피트 허공에서 느낀 적요와 내 몸을 휩쓸고 지나가던 바람, 내려다 본 세상의 분주함이 이루어낸 열정과 냉정 사이의 공백. 그 공백에서 보면 나의 괴로움이란 한낱 스치던 바람에 불과했다.
 
그곳에서 내가 보았던 수평선의 평화는 그 지점이 극과 극이 만나도 결코 흔들리거나 뒤틀리지 않았다. 절대 고요와 공존과 합일과 평화가 다만 그곳에 있을 뿐이었다. 내가 군대에서 인간의 다양성을 보았듯, 또 그로 인해 실망하고 고뇌했듯, 누군가는 나의 내면에서 한 순간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모습을 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는 획일성과 비논리에 반기를 들었던 내 결기가 또 다른 편협과 비논리를 낳았을지 누가 알겠는가.
이제 군대 생활은 2개월 남짓 남았다. 사회에 나가서 상공과 지상의 경계에서 구한 해답을 다시 보게 될 날이 올지 모르지만,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고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않는 균형의 조화를 이루는 것. 군대에서의 남은 2개월이 좋은 연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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