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우편배달부 마리오가 전하는 봄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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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우편배달부 마리오가 전하는 봄소식
  • 한인경
  • 승인 2017.03.29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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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경의 시네 공간] ⑧『일 포스티노, IL POSTINO』/ 마이클 레드포드 감독


‘한인경 시인의 시네 공간’은 남구의 예술영화관 ‘영화공간주안’과 한인경 시인의 협약하에 <인천in>에 리뷰하는 기획입니다. 한달에 1~2회씩 ‘영화공간주안’이 상영하는 예술영화의 예술적 가치 및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기회를 함께 나눕니다. 



“세상은 특별한 은유(Metaphor)들로 가득 차 있다”

 

개 봉 : 2017.03.19. 재개봉 (114분/이탈리아)

등 급 : 15세 관람가

감 독 : 마이클 래드포드

출 연 : 필립 느와레,마시모 트로이시, 마리아 그라찌아 꾸치노타

음 악 : 루이스 바칼로프

 

출처 : 영화『일 포스티노』

 

요즈음 잔잔한 波紋이 일고 있는 영화가 한 편 있다.

1994년 제작된 영화, 2017년 3월에 재개봉된 영화 『일 포스티노』다. ‘포스티노’는 이탈리아어로 우편배달부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탈리아의 작은 섬에 존재감 없던 ‘마리오’라는 청년이 페루의 민중 시인 ‘파블로 네루다’에게 은유라는 시적 표현을 배워가면서 그에게 새롭게 펼쳐지는 세상과 두 사람 간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라는 원작에 근거를 두고 있다.

 

감상 포인트 세 가지,

먼저, 시의 본질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은유(Metaphor)가 영화 전반을 지배한다. 시란 무엇인가? 은유란 어떤 것인가? 세계적인 시인 네루다가 순수 감성을 지닌 낭만 청년 마리오에게 접근시켜가는 과정이 볼 만하다.
 

두 번째, 이탈리아의 작은 섬 칼라 디소토의 훼손되지 않은 풍광과 루이스 바칼로프의 서정성 높은 음악, 허름한 자전거를 타고 때로는 끌고 가는 마리오의 모습이 보여 주는 미장센이다.


세 번째, 다음의 장면을 개인적으로 가장 감명 깊었던 순간들, 명장면으로 평가한다.

마리오가 섬의 곳곳을 다니며 아름다움을 채취하는 장면이다. 아름다움을 채취한다? 마리오가 알게 된 아름다움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때 마리오의 모습은 어눌하고 할 일 없는 작은 섬 백수의 모습이 아니었다. 시를 알게 되면서 세상에 눈뜨고 삶에 진지하게 다가가는 마리오였으며, 매사 자신감 없고 수척해 보이기만 했던 마리오가 아닌 생의 한가운데서 주체적으로 살고 있는 인생의 주인공이었다.

 

출처 : 영화『일 포스티노』

 

칠레의 저항 시인 네루다가 이탈리아의 작은 섬으로 부인과 함께 망명을 오게 된다. 그로 인해 세계 각처에서 네루다 한 사람에게 오는 우편물의 양이 엄청나다. 아버지를 이어 어부의 길을 가기 싫어하는 마리오는 우연히 임시 우편배달부를 찾는다는 광고를 보게 되고 그 길로 네루다의 우편물을 배달하게 된다. 마리오는 라디오 또는 서적을 통해서나 만날 수 있었던 유명 시인을 직접 대하게 되어 설레는 마음으로 우편배달을 하게 된다. 네루다의 시집을 읽고 시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있던 차에 네루다에게서 ‘은유’라는 단어가 나온다.


사랑을 얻기 위해 네루다로부터 은유를 배우고 싶어 했던 마리오, 자신이 발견해가는 은유로 행복해하는 마리오는 사랑하는 여인 베아트리체 루소와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일구는 데 성공한다.

 

마리오는 세상 밖의 모든 사물에 대한 은유에 차츰 눈뜨게 된다. 그러던 중 네루다가 본국 칠레로 돌아가게 되고 마리오는 네루다를 생각하며 섬의 아름다움을 녹음하게 된다. 초기에 마리오는 네루다로부터 이 섬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말해 보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베아트리체 루소”라며 사랑에 빠져 있는 여인 이름 밖에는 생각나는 것이 없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마리오는 어느새 본인이 살고 있는 섬의 아름다움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작은 파도, 큰 파도 밀물과 썰물, 절벽의 바람 소리, 나뭇가지에 부는 바람 소리, 아버지의 서글픈 그물 소리,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 아들의 심장 소리를 녹음하게 된다.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의 소리를 녹음한다며 마이크를 갖다 대는 마리오. 누가 이렇게 스쳐버리기 쉬운 일상의 소리 들을 아름다움의 대표 이미지로 떠올릴 수 있을까.

 

“마리오, 그물이 어떻지? 형용사가 필요해.”

“서글퍼요.”

 

고기잡이하는 아버지의 그물을 마리오는 ‘서글픈 그물’로 은유적 표현을 하게 된다. 시를 알게 되면서 작은 섬 주민 마리오는 지금껏 몰랐던 내면의 감성, 이성까지 끌어내게 된다. 수년이 흐른 후 섬을 다시 방문한 네루다는 부인 베아트리체로부터 마리오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된다. 시에 눈을 뜬 마리오는 사랑의 연시에 만족하지 않고 더욱 깊어진 정신세계로 의식이 확산되어 갔다.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의 가면적인 공약을 지적하며 사회적 정의에 앞장서는 작지만 힘 있는 목소리를 내게 된다. 정치 군중 시위에 네루다의 시 낭송을 위해 참가하게 되는데 이 시위 중에 마리오는 죽음을 맞이한다.


이야기는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 특유의 낭만적인 위트가 간간이 섞여 웃음과 감동을 함께 준다. 관객이 시인이든 아니든 영화는 우리들의 인생 이야기로 몰입을 하게 한다. 참고로 실존 인물인 네루다는 1971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이기도 하다.

 

출처 : 영화『일 포스티노』

 

 

영화 속 마리오가 발견하게 된 은유를 몇 가지 소개해 본다.

은유라는 바다에 첫발을 내딛는 순수 청년의 감성이 그대로 묻어난다.

“사랑에 빠졌어요. 너무 아파요. 하지만 낫고 싶지 않아요.”

“당신의 머리는 나비의 날갯짓 같고, 당신의 미소는 장미요, 땅에서 움튼 새싹이요, 솟아오르는 물줄기, 그대 미소는 부서지는 은빛 파도요.”

 

네루다와의 대화 중 마리오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서슴없이 말하기도 한다.

“시란 시를 쓴 사람의 것이 아니라, 그 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것입니다.”

마리오에게 시가 찾아온 순간이었다. 동시에 마리오의 세상이 달리 보이기 시작하는 시점이었다.

 

출처 : 영화『일 포스티노』

 

68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음악상을 받은 것을 비롯하여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을 거머쥔 영화다. 특히 『일 포스티노』 OST는 한국 남자 간판급 피겨스케이팅 선수인 차준환 군이 2016 주니어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이 음악에 맞춰 선이 아름다운 연기, 서정성이 높은 연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시종일관 영화를 끌고 가는 두 주인공.

약 20년 전에 개봉된 영화이기도 하지만 안타깝게도 영화 속 두 주인공은 필름 밖에서는 볼 수가 없을 것 같다.

 

마리오 역을 맡은 마시모 트로이시(1953~1994)

어쩜 저리 역할에 꼭 맡는 배우를 정했을까 감탄이 나온다. 심장병으로 통증을 참아가며 촬영을 마쳤다는 후문을 들으니 스크린 속 마리오의 모습이 연기로만 보이지 않는다.
 

어눌한 발음, 구겨지고 세탁한 지 오래돼 보이는 허름한 옷차림, 저만큼 들어가 보이는 슬퍼 보이는 눈, 그러나 마치 검은 진주처럼 반짝거리기까지 한 큰 눈, 수척해 보이는 외모, 구부정한 어깨는 분장했으리라는 것을 고려해도 실제로도 체력이 강한 배우는 아닐 것으로 생각이 될 정도였다. 주인공 마리오를 맡은 마시모 트로이시는 영화 촬영 당시 심장 이식이 계획되어 있었으나 영화 촬영을 먼저 강행했다고 한다. 약 10주간의 촬영 기간 내내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촬영을 마쳤다고 하며 촬영을 마치고 바로 다음 날 41세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영화 『일 포스티노』는 마시모 트로이시 자신의 생을 바친 영화가 되었다.

 

파블로 네루다 역을 맡은 필립 느와레(1930~ 2006)

프랑스 배우 필립 느와레는 한국에서는 『시네마 천국』의 영사기사 알프레도 할아버지로 낯익은 배우다. 필립 느와레는 젊어서 보다는 1988년 그의 나이 58세에 출연한 수작 『시네마 천국』으로 영국 아카데미, 런던 비평가협회 남우 주연상의 영광을 안으며 알려지기 시작했다. 말년에는 암으로 투병하다 76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일 포스티노』에서의 필립 느와레는 본인의 이미지와 잘 조화를 이룬 역할이었다. 지적이면서도 다정한 면도 갖춘 저항시인 네루다역으로 관객들을 끌어들이며 시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시인이란?

안도현의 글 중에서 ‘시인이란 시를 읽는 재미를 아는 사람’이라는 구절이 생각난다.

오스트리아 사상가 이반 일리치(Ivan Illich, 1926~2002)는 ‘인류를 살리는 3가지’를 ‘도서관, 시, 자전거’라고 했다. 자전거를 타고 별을 세며 글을 벗하고 시를 가까이하는 삶을 상상해 본다. 이 시대를 살아내고 있는 우리에겐 위로받고 싶은, 때로는 기대고 싶은 무엇인가를 갈망한다. 지친 심신에 휴식을 주고 싶다. 깊은 울림이 있는 글은 위로인 동시에 휴식이다.

 

출처 : 영화『일 포스티노』

 

 

한 편의 시가 영화로 탄생하였다.

콧물을 닦으면서 감기에 걸렸고 어부가 하기 싫다는 마리오가 주변을 은유적 시선으로 보게 된다. 모든 사물이 특별한 은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시를 알게 된다. 딱딱한 형식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활력 넘치고 신나는 생을 맛보게 된다. 감성에만 매달리는 유약한 시가 아니라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행동을 변화시킨다. 무기력하게 살고 있던 마리오가 삶의 본질에 눈뜨고 세상에 다가가면서 변화하는 모습과 그런 마리오를 바라보는 大 시인 네루다의 진정 어린 시선이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작품성과 배우들의 실감 나는 연기, 오락성까지 스펀지처럼 스며들어 있다.

 

영화 『일 포스티노』는 삶과 글이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시 한 편에는 하나의 삶이 있고 작가에 대한 신뢰가 깔려 있다. 내 글이 상대방에게 신뢰를 주고 위로와 희망을 주고 때로는 설득력이 있기 위해선 나의 삶도 같은 보폭으로 동행해야 한다.

 

마리오라는 우편배달부가 보여 주는 작은 떨림들이 위로가 되고 휴식이 되어주는 이유다.

 

출처 : 영화『일 포스티노』

 

 

이곳저곳에서 꽃소식이 들려온다.

꽃향기와 함께 멀리 이탈리아의 작은 섬에서 우편배달부 마리오가 봄소식을 전한다.

두 세기를 지나 2017년 오늘. 이 봄에 다시 만나게 된 『일 포스티노』,

시란 이런 것이고 은유란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내용의 영화가 아니다.

발견하자. 우리 가까이 있는 메타포들을.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여유 있는 정신을 세워보자.

한인경/시인·인천in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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