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순 채색화 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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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순 채색화 展
  • 공지향
  • 승인 2010.09.06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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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0일 ~ 16일 가온갤러리


‘세월을 입히는 서정적 채색화’.

우리의 채색화는 고구려 벽화를 비롯한 여러 역사적 실체에서 보이듯 회화사적으로나 양식적으로 그 정통성을 인정할 만한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민족의 근본 회화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화라 부르는 전통회화는 다양한 양식으로 분화하고 변모해 발전해 가고 있다. 빠른 속도로 진화하는 글로벌시대의 예술구조 안에서 어쩌면 위기이며 또한 기회라는 양면성이 함께 존재하는 속에 놓여 있기도 하다.

통합과 반발을 주도하는 개체들이 끊임없이 충돌하며 우리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과제로 ‘한국성’에 대한 무성한 담론들을 쏟아내고, 한때는 내용과 형식의 두 표현 축 중에서 ‘어디에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라는 형식의 문제에 주된 관심을 보인 적도 있었다.

 현대에서 장르의 구분은 무의미해졌다고도 볼 수 있으며 한국화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이미 많은 작가들이 형식의 구분을 외면한지 오래되었고 재료나 양식에서는 상당히 유연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고 ‘시대성’이라는 이유로 소위 ‘전통성’을 외면만 할 수는 없다. 다양한 형식실험도 필요하겠지만 재료의 한계범위 안에서 전통을 고수하고 매만지는 노력도 필요하다. 이른바 ‘줄다리기’라는 전통놀이문화를 놓고 살펴볼 때 우리 고유 한복을 입고 전해 내려오는 방식 그대로 이어가는 사료적 개체도 중요하다. 가벼운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채 시대에 맞는 일반적 놀이로서도 의미 있다.

결국 전통의 미학적(미의식) 구조와 틀을 이해하면서 작가 개인의 조형의지와 근성으로 지구력 있는 활동의 작품을 다져가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그러할 때 전통회화는 다양한 양식으로 전개되고 꽃피우며 개성 있는 글로벌시대의 국제적 보편성을 획득하는 한국회화로서의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김동순은 스스로 체득한 전통의 채색화 기법을 고수하며 자기만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작가다.

씨앗은 움트기 전에 눈구덩이 속에서 한겨울 차가운 한기를 맞아야 언 땅을 뚫어 세상을 향할 수 있다. 빼어난 기풍에 고결한 난초 꽃 역시 뜨거운 여름 타는 목마름을 인내하였기에 그 향기가 아름답다.

김동순의 삶이 그랬고 그이가 피워낸 예술혼 역시 그러하다.

필자가 아는 김동순은 스스로 인내할 줄 아는 근면한 생활인이다. 또한 그이는 오랜 시간 인내하며 축적한 한 올 한 올 실타래로 커다란 그림을 수놓을 줄 아는 속 깊은 화가이다.

어렵사리 돋아오른 보리 싹을 모질게 밟아주는 지혜는 오히려 강인한 생명력으로 환원되어 속이 꽉 찬 알곡을 영글게 한다. 결코 녹록치 않은 김동순의 삶은 오히려 오늘의 그녀가 끊임없이 붓을 잡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누구도 넘보지 못할 잔잔한 미소를 품게 하였다.

김동순이 살아온 질곡의 과정들은 우리의 민족성, 예술성과 상통하며 고스란히 그림 속에 배어 있다.

김동순이 그려내는 그림들은 세월을 느끼게 할 만큼 무게 있고 우직하다.

온통 거실바닥에 늘어놓고 몇 날이고 몇 달이건 치밀하게 계획하고, 멈추어진 시간 안에서 세월마저 죽여 나가는 작업행태는 일면 화두 하나를 붙잡고 처절하게 자신과 맞서는 수도승을 보는 듯하다.

두껍게 배접한 화선지 위로 수십 번을 반복하여 깊게 우려낸 바탕화면에 두텁고 농익은 채색을 겹겹이 해나가는 작업방식은 분명 그이가 걸어온 인생을 닮았다.

화가 김동순에게 그림은 무엇일까?

그녀에게 그림은 아침에 눈을 뜨고 창문을 열어 세상과 조우하듯, 그녀의 주변을 스치고 맴도는 인연들과 그들이 토해내는 작은 이야기에 화답하는 소통의 시간이고 공간이며 방법이다. 소통의 대상이 사람이거나 돌 틈 사이 피어난 이름 없는 풀꽃 하나여도 그녀의 붓질 안에서 녹아나고 새롭게 태어난다.

사람을 그릴 땐 그 대상의 눈빛 안에 자신의 세상살이 걸음 하나하나를 반추하고, 꽃과 나비를 그릴 때도 그이의 현실과 꿈이 동시에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맴돈다.

화면에서 보여주는 여성적 감성미와 서정적 감흥은 대상의 현실미를 마치 동심적인 환상의 정경으로 전개시키며 현실세계와 아련한 꿈의 세계를 넘나드는 듯하다. 그러한 작업양상은 보는 이에게 묘한 정감과 감미로움을 전하기도하고 작가의 호젓한 심의를 반영하는 내밀한 시정(詩情)으로 가득 채우기도 한다.

다시 말해 대상이 주는 가시적 이미지에 충실하며 거기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는 서정성 짙은 채색화로 그이 눈에 비친 조형적 이미지를 상징과 암시의 정경으로 변환시켜 현실과 비현실을 하나의 화면에 표출시키고 있다.

화면의 조형적 구성과 자신의 감성에 익숙해진 분위기 표출에 중점을 두고, 이때 강렬하고 원색적인 화려한 꽃과 나비 등의 소재를 이상적 미감으로 회화와 연결시켜, 안으로 품어 은유된 독창적 채색작업을 보여준다.

김동순은 권력이나 명예, 제도의 중심으로부터 조금은 거리를 두고 살아왔다. 자의든 타의든 간에 그것은 화가에게 고독과 외로움을 주지만, 다른 한편 그것은 자존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임과 동시에 자신의 작품세계를 만들어 가는 내공의 힘이다.

김동순은 세상의 편견에 맞서지 않고 원망마저 속으로 삭혀 그림에 담아내는 성품을 소유하고 있다. 세상순리를 따라 조용히 자신의 일에만 충실한 그녀는 이미 회화적 동양정신을 그대로 품고 살아간다. 유연함과 아량으로 흔들림 없이 자신의 울타리를 지켜나가는 김동순 작가는 20년 전 필자가 처음 그녀를 대면했을 때 수줍음 그대로 오늘을 살아간다.

누구보다 자존심 강한 남편과 아들마저 같은 길을 걷는 장인적 분위기 속에서 말보다 그림으로 말하는 그이 모습에 남다른 감회를 느낀다. 그동안 살아 온 세월이 그랬듯 흔들림 없는 작업이 이어져 그이가 그린 꽃처럼 세상의 중심을 향해 가득한 향기를 전해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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