恨의 쓰나미, 최후 승리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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恨의 쓰나미, 최후 승리를 위하여
  • 지창영
  • 승인 2017.04.03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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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지창영 / 시인


최고 권력자가 감옥에 갇히는 혁명의 시대

 

한때 권력의 중심부에서 나라를 좌우하던 실세들이 속속 감옥에 갇히고 있다. 대통령 자리에 있었던 박근혜 씨도 올림머리를 풀고 승용차에 뒷좌석에서 호송인들 사이에 끼어 이송된 후 구치소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폭포수가 절벽에서 낙하하듯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서 죄인의 자리로 떨어졌다.

 

민중은 4년여전 박근혜의 대통령 당선이 믿기지 않았다. 그 이후 벌어진 참혹한 일들이 꿈만 같아서 다양한 방법으로 저항해 왔지만,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탄핵과 구속이라는 결과를 우리 눈으로 보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역사적인 일들이 눈 앞에 펼져지는 것을 보니 연일 감개가 무량하고 꿈이 아닌가 싶기도 하여 가끔 허벅지를 꼬집어 보기도 한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일은 혁명이다. 이 혁명이 파도가 될지 쓰나미가 될지 아직은 모른다. 파도는 파장이 짧기 때문에 그 높이가 아무리 높아도 금방 부서져 내리고 만다. 방파제를 매섭게 때려도 부서지는 것은 결국 파도다. 그러나 쓰나미는 다르다. 파장이 길다. 먼 바다에서 밀려오는 쓰나미는 비록 물보라를 뿌리며 호기를 부리지는 않지만 일단 닿으면 모든 것을 쓸어버린다.

 

촛불혁명은 파도일까 쓰나미일까

 

광화문 광장의 촛불집회로 일렁이며 이 나라를 뒤집어 놓는 것은 파도일까 쓰나미일까? 촛불혁명이 파도라면 깃털 몇 명 감옥에 들어가고 몸통은 그대로 버티고 있을 것이나 쓰나미라면 대통령도 그 자리에 버티고 있지 못한다. 그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내세웠던 적폐 세력들도 모조리 쓸려나고 만다.

 

과거 우리 역사에는 쓰나미가 되지 못하고 한 차례 파도로 끝난 미완의 혁명들이 있었다. 4.19 혁명은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이끌어냈지만 군대를 앞세운 쿠데타로 정권은 다시 적폐 세력들의 손에 들어갔다. 광주민중항쟁은 장렬했으나 고립된 상태로 고군분투하다가 안타깝게도 무력으로 진압되었다. 87년 항쟁은 광범위한 시민의 참여로 독재자 전두환을 굴복시키고 직선제를 비롯한 민주주의의 단초를 마련했으나 적폐 세력의 공작과 민주 진영의 내부 분열로 정권을 찾아오지 못하고 말았다.

 

청산하지 못한 적폐는 오늘에 이르러 안으로는 부정선거와 간첩조작, 세월호 참사, 개성공단 폐쇄, 국정농단으로 불거졌고 밖으로는 대일 굴욕 외교와 성노예 문제 합의, 대미 굴종 사드 배치, 대중 마찰 등으로 나타나 그야말로 안과 밖에서 문제가 곪아 터졌다. 오늘의 촛불혁명은 이토록 긴 적폐의 사슬 속에서 쌓인 한(恨)의 파장이 만들어낸 것으로서 그 폭발력도 그만큼 세고 오래 간다.

 

적폐 속에서 쌓인 한

 

진짜 몸통은 누구일까? 드러난 적폐 세력은 박근혜로 그 정점을 찍었다. 혁명이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배후조종 세력을 뿌리째 뽑지 않으면 또 미완의 혁명을 면치 못할 것이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보자.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해방을 맞이한 공간에서 정의가 바로 서려면 전범국인 일본이 독일처럼 분할돼야 마땅했다. 그러나 정작 분단된 것은 피해국인 한반도였다. 그것은 우리의 뜻이 아니었다. 친일부역자 세력을 그대로 끌어안고 이승만을 앞세워 반도 남쪽을 배후조종한 자가 누구인가. 오늘의 적폐는 그 때부터 쌓인 것이다. 불의가 나라를 지배했고 불통으로 입을 막았으며 폭압으로 억눌렀다. 그 아래서 민중의 한은 쌓이고 또 쌓였다.

 

빨갱이라는 누명을 씌운 양민 학살, 광주에서의 학살, 세월호 참사 등의 사건은 흔히 이야기되는 드러난 사례에 불과하다. 적폐 정권 하에서 희생자들은 목숨을 잃고 가족을 잃고 심신이 불구가 되고 가족 친지들은 진실을 알고도 숨죽여 살아야 했다. 그렇게 쌓여 온 한이 폭발한 것이 오늘의 촛불혁명이다.

 

민중의 최후 승리와 한풀이
 

맺힌 한은 풀어야 한다. 적폐 속에서 한이 쌓인다면 정의가 바로 서고 사랑이 넘치는 곳에서는 한이 풀린다. 세월호의 아픔 속에서 우리 민중은 ‘미안해’, ‘사랑해’라는 말을 나누며 서로 보듬고 사랑을 보여 주었다. 온갖 왜곡과 방해 속에서 민중은 정의를 외치며 함께 나서 주었다. 그것이 박근혜의 구속을 이끌어냈고 민중은 오랜만에 기대와 환호 속에 봄을 맞았다. 한이 풀리는 계절이다. 한풀이의 공간에는 웃음이 있지만 그것은 눈물이 함께 흐르는 웃음이다.

 

촛불혁명의 쓰나미가 최후 승리를 이룩하려면 적폐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 미국도 이 나라를 더 이상 뒤에서 조종하지 못 하도록 해야 한다. 마침 국제정세의 흐름도 봄을 향하고 있다. 미국은 오랜 적대 관계에 있던 쿠바와 외교 관계를 정상화했고, 이라크 다음으로 침략하려 했던 이란과도 핵협상을 이루었다. 모두 2015년의 일이다. 이제 남은 것은 북과의 평화협정이다. 겉으로는 아니 올 것 같은 꿈 같은 일이 한 번 더 우리 앞에 일어날 것이다.

 

그 때가 되면 분단을 핑계로 온갖 적폐를 일삼던 세력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게 될 것이다. 분단 현실에서는 어쩔 수 없다며 일부 권리를 포기하고 살아 온 이들도 더 이상 자유와 정의를 유보하지 않아도 된다. 촛불혁명은 바로 북-미 평화협정과 한반도 통일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다시는 이 땅에 적폐 세력이 서지 못 한다. 세계 앞에서 평화를 선언해야 민중의 한이 풀리고 민족의 한이 풀리고 나아가 세계의 한이 풀린다.

 

세월호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던 지난 3월 23일 하늘에 떠 있던 리본 구름마저도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우주가 우리를 도와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국내 정세가 무르익었고, 국제 정세가 평화를 부르고 있으며 우주도 우리를 돕고 있다. 쌓였던 한이 혁명의 쓰나미로 몰아쳐 해원(解寃)의 날을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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