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학러’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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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학러’의 삶
  • 이건우
  • 승인 2017.04.10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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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이건우/서울시립대 1학년

<인천in>이 지난 2월 부터 [청년컬럼]을 매주 연재하고 있습니다. 1월에 공개모집한 20대 청년 7명이 참여합니다. ‘청년실업’으로 대표되는 요즈음, 20대들이 바라보고, 겪고있는 우리 사회의 실상에 대해 함께 이해하고 소통하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이 시대 우리나라의 청년들, 인천의 청년들이 갖고있는 비전, 그들이 부딪치고 있는 다양한 문제, 그들의 문화, 희망과 좌절·고민, 지역의 이슈는 무엇인지 공유하고 공론화합니다.





“선배, 저는 이만 가볼게요.” 라는 말을 건네고 짐을 주섬주섬 들고 일어난다. 불안한 마음에 막차시간표와 손목시계를 번갈아보면서 역으로 뛰어간다. 다행히 막차를 놓치진 않았다. 이젠 꾸벅꾸벅 졸면서 인천으로 갈 일만 남았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다시 반복. 자취방을 알아보겠다는 어머니의 말씀에 인천에서 사는 게 더 좋으니 괜찮다고 한 게 후회되는 요즘이다.

대학을 서울로 다니고 난 뒤로 내 삶은 조각났다. 공부는 서울에서 하고 잠은 인천에서 자는 생활, 낮에는 서울에서 밤에는 인천에서, 평일에는 서울에서 주말에는 인천에서 지내는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인천으로 뭉쳐져 있었던 삶터와 배움터 그리고 놀이터가 제각각 분리된 것이다.

나와 같은 인천에 살고 있는 수많은 ‘통학러(통학+사람접미사-er)’들은 이와 같은 ‘생활권의 분리’를 겪는다. 또한 생활권의 분리는 통학러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천에 거주하는 직장인들도 마찬가지다. 이들도 서울로 출퇴근을 하며 생활권의 분리를 겪고 있다.

생활권의 분리가 우리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면 크게 문제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사례와 같은 불편함뿐만 아니라 삶과 공동체의 소진을 야기한다. 조각난 생활권 간 긴 거리와 이동시간이 하루하루를 소진시키는 것은 당연하다. 조각난 생활권을 넘나들면서 하루를 온전히 사용하지 못 하는 것이다. 특히 통학러와 장거리 통근 직장인들에게 등하교, 출퇴근 시간대인 아침과 늦은 저녁은 사용할 수 없는 시간이다. 이들은 그 시간에 다른 생활권으로 이동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쌓이는 스트레스와 피로는 덤이다.

생활권이 쪼개지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더 많아지고 다양해진다. 하지만 생활권의 분리와 함께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시공간도 조각난다. 따라서 다른 이들과 깊은 관계를 맺기 힘들어지고 공동체 역시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많은 통학러들이 짧아진 하루를 바쁘게 살아가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도 공허함을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은 분리된 삶터, 배움터, 일터 등의 생활권을 합치는 것이다. 그래서 상당수의 대학생들이 통학이 가능한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자취와 기숙사를 선택한다. 하지만 이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먼저 자취는 월세와 생활비 부담이 만만찮다. 게다가 대학이 몰려 있는 지역의 경우 그 부담은 더 커지게 된다. 기숙사 입사도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기숙사는 애초에 들어가기가 힘들다. 대학교육연구소에 따르면 수도권 대학의 기숙사 수용률은 국공립 대학 15.2%, 사립대학 14.9%에 불과하다.

자취와 기숙사 입사가 용이해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궁극적인 해결책인지는 의문이다. 애초에 생활권 분리의 원인은 과도하게 서울로 집중된 배움터와 일터, 놀이터였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원래 살고 있었던 지역에 계속 살고 싶어도, 통학, 통근이 쉽지 않은 일임을 어렴풋이 앎에도 불구하고 서울에 있는 대학과 직장을 선택한 것이다.

따라서 생활권의 분리 문제를 근본적으로, 사회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애초에 생활권이 분리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에도 양질의 배움터, 일터, 놀이터를 만들어야 한다. 자신의 원래 삶터에서 생활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선을 앞두고 자치입법권, 자주재정권 등 개헌을 통한 지방분권의 목소리가 높다. 지방분권이 당장 생활권까지 ‘분권화’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대대적인 지방분권과 함께 지역에서는 지방거점국립대 강화를, 지역 청년 일자리, 지역 문화 조성을 위한 지원 사업을 논의한다면 어떨까. 머지않아 분권화된 생활권에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번 대선에서의 지방분권 논의가 생활권의 분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폭제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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