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어스 - 전설로 남을 두 천재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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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어스 - 전설로 남을 두 천재의 만남
  • 한인경
  • 승인 2017.04.18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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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경의 시네공간](9) 지니어스 / 마이클 그랜디지 감독

‘한인경 시인의 시네 공간’은 남구의 예술영화관 ‘영화공간주안’과 한인경 시인의 협약하에 <인천in>에 리뷰하는 기획입니다. 한달에 1~2회씩 ‘영화공간주안’이 상영하는 예술영화의 예술적 가치 및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기회를 함께 나눕니다. 


영화 『지니어스, GENIUS』
 
“영원히 낯설지 않고 홀로 되지 않을 자 누구인가?”
 
 
개 봉 : 2017.04.13. 개봉 (104분/미국,영국)
등 급 : 12세 관람가
감 독 : 마이클 그랜디지
출 연 : 콜린 퍼스, 주드 로, 니콜 키드먼, 로라 리니
 
 

출처 : 영화『지니어스』
 

‘하나의 돌, 하나의 잎, 하나의 문에 관하여. 그리고 잊힌 모든 얼굴에 관하여. 영원히 억압되지 않을 자 누구인가? 영원히 낯설지 않고 홀로되지 않을 자 누구인가? 기억하리라 저 위대한 잊힌 언어들을. 천국으로 들어가는 저 잊힌 좁은 통로를. 돌 하나, 잎 하나, 미지의 문 하나.’
모든 출판사에서 퇴짜를 맞은 무명작가 토마스 울프(주드 로)의 원고는 이렇게 시작한다. 이 원고는 위대한 편집자 맥스 퍼킨스(콜린 퍼스)의 손에 오면서 <천사여, 고향을 보라, Look Homeward, Angel>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다. 출판과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되며 토마스 울프가 천재 작가로 알려지게 되는 신호탄이 된다.
 
 
4월 꽃소식 전하기에 분주한 계절이다.
이 봄. 영화가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들로 풍성하며 감동을 선사한다.
『지니어스』를 비롯하여『아뉴스 데이』,『랜드 오브 마인』,『댄서』,『나는 부정한다』등의 영화가 그것이다.
 
『지니어스』
A.스콧 버그의 원작 소설 <맥스 퍼킨스:천재의 편집자>에 근간을 두고 만든 작품이다.
‘맥스 퍼킨스’라는 이름이 일반 사람들에겐 익숙하지는 않다. 그러나 주로 유명 작가에게 조명되던 사회 흐름으로 볼 때 영화 『지니어스』는 신선하다.
1929년 뉴욕. 출판사 ‘스크라이브러너스’의 최고 편집자 맥스 퍼킨스(1884~1947)는 우연히 모든 출판사에서 퇴짜를 맞는 무명 작가 토마스 울프(1900~1938)의 원고를 읽게 된다. 퍼킨스가 작품의 가치를 발견하고 원고를 편집, 출판하게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어쩌면 문학이나 책과 거리가 먼 사람들에겐 다소 평면적인 스토리가 지루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실화라는 감동과 1930년대 뉴욕시의 고전적 분위기가 주는 미장센, 콜린 퍼스, 주드 로, 니콜 키드먼이라는 세계적 대배우들의 명품 연기, 미국 현대 문학의 정수를 이룬 작가들의 명문장들 체험, 두 천재 울프와 퍼킨스의 불꽃 튀는 대화 등이 강점인 영화다
 
문학에 관심 있는 분들은 물론 삶의 본질에 대하여 견지하며 천착(穿鑿)하고픈 분들에게 추천한다.
 
보너스,
미국 문학계의 거장 어네스트 헤밍웨이와 F. 스콧 피츠제럴드를 만날 수 있다. 그들의 문학성 짙은 대사도 볼거리다.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피츠제럴드의 전성기 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 『지니어스』에선 병중인 아내를 간호하며 전성기가 지난 작가로서 침체되어 있는 모습으로 나온다.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들이 자연스럽게 화면에 등장하니 이 또한 『지니어스』의 매력이다.
 


출처 : 영화『지니어스』
 
 
콜린 퍼스
『킹스맨』에서 말끔하게 슈트를 입은 콜린 퍼스의 이미지가 아직도 생생하다. 첨단 무기인 우산으로 수십 명 상대로 액션 씬을 보였던 콜린 퍼스는 잊어라. 『지니어스』에서는 사무실에서도 집에서도 중절모를 쓰고 사뭇 진지한 눈빛으로 관객을 맞는다. 적당한 톤의 음성으로 차분하며 지적인 분위기를 최고로 보여준다.
 
주드 로, 니콜 키드먼
토마스 울프 역의 주드 로와 그의 애인 엘린 역으로 니콜 키드먼이 출연한다. 두 사람은 이미 『콜드 마운틴』(2004)에서 비극적인 결말의 남녀 주인공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 영화의 감독인 마이클 그랜디지의 연극에도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들이다. 『지니어스』는 마이클 그랜디지 감독의 첫 작품으로도 관심을 끈다. 연극 연출가 출신답게 영화 곳곳에서 흔적이 보인다. 닫힌 공간에서 두 주인공의 긴장감 넘치면서도 밀착된 대화는 연극 무대여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출처 : 영화『지니어스』
 

흔히 사람들은 한 권의 책을 접하게 되면 작가가 누구인가를 먼저 보게 된다. 편집자는 작가의 유명세 뒤에 늘 가려져 있기 마련이다. 이 영화는 천재 작가 토마스 울프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닌 전설적인 편집자 맥스 퍼킨스에 중심을 둔 영화다.
 
‘천재’.
사전적으로 ‘선천적으로 보통 사람보다 아주 뛰어난 정신 능력이나 재주. 또는 그런 능력이나 재주를 가진 사람’을 말한다. 얼마 이상의 높은 I,Q라든지 세계가 인정한 대회에서 우승을 해야 하는 요즘의 잣대보다는 천재가 보여 주는 비상함, 완벽성 등에 초점을 맞춘 정도로 보고 싶다.
 
울프는 쉼 없이 글을 쏟아낸다. 5천 페이지에 달하는 원고가 책으로 빛을 보기까지 4년이라는 기간이 필요했다. 그 기간은 울프와 퍼킨스와 경계를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편집 과정이었다.
서로 다른 성향을 지닌 두 사람이다.
과묵하면서도 진지하며 냉철한 맥스 퍼킨스, 시적이며 다소 난해한 표현을 쓰면서 예리하고 감성적인 토마스 울프.
그들은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면서도 틈을 좁히려 노력하는 지식인들의 대화도 화려하게 들린다. 놓치지 말고 즐기자.
 
편집자 퍼킨스에 의해 통째로 페이지가 삭제되는 상황에선 울프는 울컥하기도 한다. 울프는 차츰 충동적이고 공격적인 성격으로 또 무례한 성향으로 변해간다. 퍼킨스는 그런 울프를 옆에서 지켜보며 인내하고 사려 깊게 다가간다. 편집이라는 현실을 두고 두 사람은 예술적인 공감대를 인정하게 되며 우정도 깊어간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갈등도 깊어진다. 애증의 관계라고 할까. 울프와 퍼킨스는 각자의 공간에서 질문을 한다. 울프는 어느 페이지에서는 붉은 색 연필로 여지없이 삭제되는 편집을 지켜보며 과연 이 책이 본인의 책인지 고민하게 된다. 또한 퍼킨스의 고뇌도 읽을 수 있다.
“늘 고민이 돼, 나는 작가의 글을 좋게 만들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냥 변형시키고 있는 걸까?”

 

출처 : 영화『지니어스』
 
 
퍼킨스는 단지 상업적인 성공에 관심을 두고 작가의 글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진지한 자세로 작품을 읽고 그 글에 대한 가치를 평가하는 편집자로서의 본분을 다하려 한다. 토마스 울프의 <천사여, 고향을 보라> 외에도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 <노인과 바다>,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와 같은 미국 문학사에 빛나는 대작들이 전설적인 편집자 퍼킨스의 손을 거쳤다.
비슷한 예로 하나의 곡이 완성품으로 대중에게 선을 보일 때 편곡의 영향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퍼킨스의 평가와 조언은 작가가 갇혀 있을 수 있는 한계를 건드리는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는 작가가 원래 붙이고 싶어 했던 제목은 <웨스트에그의 트리말키오>였다고 한다. ‘웨스트에그’는 소설 속 개츠비의 저택이 있던 마을명이고, ‘트리말키오’는 로마시대 소설 속 속물 부자 이름이다.
“당신이 가판대 앞에 서 있다고 상상해 봐. <위대한 개츠비>와 <웨스트에그의 트리말키오> 중 어떤 제목의 책을 고르겠어?”
퍼킨스는 피츠제럴드를 끝까지 설득하여 걸작 <위대한 개츠비> 제목으로 출판하게 된다.
 
비단 예술세계뿐만이 아닐 것이다. 대중들에게 칭송받는 무엇인가가 등장했을 경우 우리는 그 이면도 볼 수 있어야 한다. 가려진 조력자들의 숨은 노력이 빛나는 순간일 것이다.
퍼킨스는 원석을 알아보는 식견을 갖고 있었다. 그것을 깎고 다듬어서 반짝이는 보석으로 세상에 내놓게 되기까지 작가와의 소통을 통해 완성품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울프는 퍼킨스를 만나고 난 후 더욱 불 같은 창작을 하게 되며 내재해있던 작가로서의 잠재력이 화산처럼 폭발하게 된다.
 
두터워진 우정만큼이나 두 사람간의 균열도 깊어진다. 퍼킨스를 떠나 홀로 글을 쓰려했던 울프는 폐렴과 뇌종양으로 38세에 아깝게 생을 마감한다(1938). 울프는 퍼킨스를 향한 그리움과 진한 우정을 기억하며 병원 침대에서 사랑과 감사의 편지를 남긴다. 이 편지는 토마스 울프 사후에 퍼킨스에게 우편물로 전달되게 된다.

 

출처 : 영화『지니어스』
 

미국에서 두 천재가 우정과 창작과 출판을 두고 예술혼을 불사를 때 한국 문화계에서 또 한 사람의 천재가 있었다. 난해한 글, 기행,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 이상(李箱)이다. 특히 올해는 이상의 사후 80주기가 되는 해다. 토마스 울프가 생을 마감하기 1년 전 한국의 천재 작가 이상(1910~1937)이 폐렴으로 28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이상과 후견인인 화가 구본웅과의 우정은 각별했다. 구본웅은 이상의 소학교 시절부터 죽을 때까지 벗이자 후견인 역할을 마다치 않았다. 그들의 우정과 퍼킨스, 울프의 우정이 오버랩된다.
태평양 너머로 천재들의 인생과 시간의 강이 그렇게 흘러갔다.
 
언제나 빛날 것만 같던 별들도 해가 뜨면 보이질 않는다. 또 열정적이며 웅장한 태양도 하루를 마감할 줄 안다. 천재 역시 사람이고 사회 구성원이다. 그들도 신뢰를 알고 우정을 알고 외로움도 느끼고 관계를 알아간다.
 
『지니어스』
실존 인물들이었기에 더 감동적이다. 천재들의 사람 냄새가 물씬 난다.
 
배우들. 멋쟁이 펄린 코스의 지적인 연기에 흠뻑 빠질 수 있다
주드 로. 영화『콜드 마운틴』에서 사랑의 열병을 앓던 ‘인만’이 아니다. 광기 어린 천재 작가를 온몸으로 열연한다.
 
4월 영화가에선 전설로 남을 두 천재의 만남으로 봄이 무르익는다.
 
“영원히 낯설지 않고 홀로 되지 않을 자 누구인가?”
 
한인경 시인·인천in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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