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꽃은 사랑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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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은 사랑이었네
  • 은옥주
  • 승인 2017.05.23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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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어머니와 아들

이른 아침 산책길.
풀잎 속에 제비꽃 한 송이가 피어있다.
온통 초록빛 풀밭, 별처럼 빛나는 보랏빛의 눈이 반짝 떠진다.
그 위로 떠오르는 또 하나의 환하고 천진한 얼굴.





아들은 학교갔다 돌아올 때면 아파트 풀숲에서 찾아낸 제비꽃 한 송이를 늘 따다주었다.
등에는 가방을 메고 양손에는 신발주머니, 준비물 주머니를 잔뜩 매달고
보석 같은 꽃 한 송이를 내밀었다.
“엄마 예쁘지? 예쁘지?”
그러곤 부엌으로 가서 유리컵을 꺼내어 물을 가득 담고
그 속에 제비꽃을 퐁당 떨어뜨려 넣고는 부엌 창가에 놓았다가 식탁에 놓았다가 하였다.

“엄마 여기 놓을까? 여기가 좋아?”
나는 창 밖에서 비치는 눈부신 햇빛을 받아 영롱한 보랏빛으로 빛나는 제비꽃이
보석보다 더 귀하고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참 마음이 따뜻해졌었다.
그때 나는 허리가 아프고 몸이 많이 약해져서 집에 머물러 있는 일이 많았다.
가만히 집에 있으면 내가 참 가치없이 느껴지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좌절감에 우울하기도
했었는데 한 송이 아들의 선물이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던 것 같다.
아마 자주 아프고 힘들어 하는 엄마를 아들은 어떻게든지 웃게 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아들의 사랑이 나에게 큰 힘을 주었던 것일까? 나는 다시 일어나 여기까지 왔다.

'제비꽃은 나에게는 사랑이었네'
그런데 신가하게도 꽃말을 뒤져보니 제비꽃의 꽃말이 바로 '순진무구한 사랑'이 아닌가!





그 시절 아들은 성격 괴팍한 담임선생님을 만나 호된 학교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선생님은 자주 야단을 치고 벌을 세워서 아들이 순진한 얼굴로 그런 이야기를 할 때면 나는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하고 당장 달려가서 따져묻고 싶어질때도 있었지만 역효과가 날까 염려도 있어서 꾹 참고 “선생님이 너를 사랑하셔서 그러실거야.” 하고 적극적으로 아이 편을 들지않고 무마를 하였다.

어느 날 학교 갔다온 아이의 뺨에 긁힌 자국이 선명하게있어 “왜 얼굴이 이렇게 됐어?”
하고 놀라서 물었더니 선생님이 뺨을 때렸다고 한다.
나도 순간적으로 너무 화가나서 아이를 끌어안고 “아니 선생님이 너를 이렇게 때렸어?”
“선생님 너무하셨네. 어떻게 뺨을 이렇게 때릴 수가 있어?”하고 분한 마음을 드러내보였다. 아이는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엄마가 비로소 나를 사랑하는 걸 알겠다.”고 하였다. 나는 ‘쿵’ 가슴이 내려앉았다.
아이는 선생님이 자기를 괴롭히는데도 자기편을 들어주지도 않고 선생님을 미워하지도 않는 엄마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꼈던 것 같다.
아이는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엄마의 마음을 어떻게든지 돌려보고 싶었을까?
매일 매일 제비꽃을 따서 부엌 창가에 놓아주고 엄마를 사랑한다고 몸으로 마음으로 호소하고 또 호소했을까?
나는 아직도 “엄마가 비로소 나를 사랑하는 걸 알겠다.”는 문장이 가슴에 박힌 채로 남아있다. 엄마의 서툰 사랑이 얼마나 아이에게 상처가 되고 섭섭함이 되었을지...
아이가 엄마를 사랑하는 사랑의 크기가 엄마의 아이 사랑보다 훨씬 순수하고 큰 것 같다.
아이의 순수하고 진실한 사랑을 받은 엄마는 비로소 엄마로서의 역할을 배우고
사랑을 배우게 되는 것 같다.
엄마가 된다는 것, 사랑을 한다는 것은 참 신비하고 아름다운 비밀을 간직하는 것이고
그런 비밀을 공유하면서 가족은 끈끈하게 끈끈하게 대를 이어 가는 것 같다.

나는 아침 산책길.
한 송이 제비꽃에서 다시 한번 아들의 사랑을 되새기고
그리고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나는 사랑하고 있는가!
그리고 사랑받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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