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살인사건과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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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살인사건과 일상
  • 이건우
  • 승인 2017.05.28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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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이건우/서울시립대 1학년

 한 사람이 죽었다. 여자라는 이유로 죽었다. 많은 여성들은 이 죽음을 추모하며 자신들도 ‘살아남았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사실 바뀐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 이어진 추모와 행동은 ‘여성혐오(misogyny)'를 이슈화시켰고 ’내 일상과는 동떨어진 일‘이라고 여긴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었다.
나 역시 그저 세상이 흉흉하다고만 생각하였고 내 일상과는 관련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한 논의와 죽음에 대한 추모가 이어지면서 지금까지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던 일들이 생각났다.

#1.
“□□□는 맨날 남자한테 빌붙고 고맙다는 말은 안 해.”
“걘 진짜 김치녀네”

“◇◇◇. 걔 원래는 예쁘장했는데 살찌고 나니까 못생겨지지 않았냐.”
“그러니까. 머리에 든 게 없으면 예쁘기라도 해야지.”
“그래도 살찌니까 애는 잘 낳을 것같이 보이네.”

사회학자 앨런 G.존슨은 여성혐오를 ‘여성을 여성이란 이유로 혐오하는 문화적 태도’이라고 정의했다.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여자들이 자신을 무시해서’라는 강남역 살인사건 범인의 살인 동기도 여성혐오라고 할 수 있다. 비록 범인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의 범행이 여성혐오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혐오는 흉악범의 전유물인가? 그렇지 않다. 여성혐오는 우리 삶에서 만연하다. 앞에서 인용한 두 대화가 그 예다. 저런 대화는 아직도 남자들끼리 으레 할 수 있는 음담패설로 여겨진다.
그러나 사회학자 우에노 치즈코는 여성혐오에 대한 존슨의 정의를 확장하여 여성혐오를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지 아니하는 여성의 타자화, 객체화’라고 이야기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여성의 외모를 품평하고 여성을 상대로 음담패설을 하는 것은 여성을 객체화하고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존재로 보지 않는 행동이다.


#2.
밤새 여자친구와 문자를 주고받은 적이 있었다.

‘너 우리 집 쪽으로 오는데 얼마나 걸려?’
‘버스타고는 10분이면 갈걸? 근데 왜?’
‘그렇게 멀었나? 아. 그냥. 편의점 갈 건데 같이 가자고 하려 했지.’
‘갈까?’
‘아냐. 버스도 끊겼는데. 그냥 나중에 가야겠다.’

작년 수험생활을 하면서 주말마다 새벽2-3시에 커피를 사러 편의점에 갔었다. 아무도 없는 새벽 거리를 걷는 느낌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항상 그때까지 공부를 하다가 커피를 산다는 구실로 편의점에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친구가 왜 새벽에 편의점에 가기 위해 날 불렀는지, 왜 혼자서는 가려고 하지 않았는지를 이제야 깨달았다. 남성에게는 새벽길이 위험하지 않지만 여성에게는 위험하기 때문이다.
2014년 대검찰청 강력부의 분석결과를 보면, ‘묻지마 범죄’ 109건 중 야간에 수도권 길거리에서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가 가장 많았다. 또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강력범죄의 가해자는 남성이 98%인 반면 피해자는 여성이 84%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여성은 밤길은 물론 일상 속에서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면서 살아가야 한다.
여성에게도 시원한 밤공기를 맡으며 밤길을 거닐 자유가 있다. 아무도 없는 새벽 거리를 걷는 느낌, 공용화장실에서 노래방에서는 무슨 곡을 부를지 생각할 시간, 심야 택시에서 꾸벅꾸벅 졸 수 있을 정도의 안심. 여성 또한 이 모든 것을 누릴 자유가 있다. 그러나 여성혐오가 만연한 이 사회는 여성으로부터 그 자유와 안전을 빼앗는다.

재작년 메갈리아가 생겨난 이후, 작년 강남역 살인사건이 발생한 이후, 여성혐오와 페미니즘 그리고 성평등은 온•오프라인 상에서 이슈가 되어왔다. 20대에게는 특히 더 그렇다. 이러한 논의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들은 ‘과한 주장이다.’ , ‘일부 남성의 문제를 남성 전체와 사회의 문제로 돌리지 말라.’ 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앞에서도 이야기하였듯이 남성이 장난이라고 해왔던 것들, 당연하게 누려왔던 것들은 여성을 배제하는 것들이었고 여성은 누리지 못 하는 것들이었다. 사회 전체의 문제가 아니라면 이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여성혐오를 여성혐오라고 인식할 수 있도록 남성이 쉬이 누릴 수 있었던 것들을 여성도 누릴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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