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자유. 사랑의 판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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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자유. 사랑의 판타지 ”
  • 한인경
  • 승인 2017.06.05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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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경의 시네 공간 ⑪ ]『로스트 인 파리, Lost in Paris』

‘한인경 시인의 시네 공간’은 남구의 예술영화관 ‘영화공간주안’과 한인경 시인의 협약하에 <인천in>에 리뷰하는 기획입니다. 한달에 1~2회씩 ‘영화공간주안’이 상영하는 예술영화의 예술적 가치 및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기회를 함께 나눕니다. 

 

어른을 위한 그림동화책

영화 『로스트 인 파리, Lost in Paris』
 

개 봉 : 2017.05.18. 개봉 (83분/프랑스,벨기에)
감 독 : 도미니크 아벨, 피오나 고든
출 연 : 도미니크 아벨, 피오나 고든
등 급 : 12세 관람가
장 르 : 멜로/로맨스, 모험, 코미디
 
 

출처 : 영화『로스트 인 파리』
 
 
스크린을 보고 있으면 동시에 재미있는 그림 동화책이 한 장, 한 장 넘어간다. 원색의 마술사 마티스의 손끝이 닿아있는 듯 강렬한 이미지의 색감이 동반된다. 주인공들의 과장된 움직임과 상상력이 빚어낸 판타지는 역시 호흡이 잘 맞는 부부 감독의 작품답다는 인정을 하게 된다. 관객은 편안한 시선으로 탱고의 리듬에 몸을 맡긴다. 앞서 선보였던 파리를 빛낸 많은 영화들은 센 강 위의 정돈된 아름다운 장면들을 기억시킨다. 그러나 도미니크, 피오나 부부 감독은 센 강 아래의 다소 소외된 삶에서 풍요를 끄집어낸다.
 
지난 5월 도미니크 아벨과 피오나 고든 감독은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 공식 초청을 받고 첫 내한 무대인사를 하였다. 이후에도 몇몇 『로스트 인 파리』 상영관에서 무대인사와 GV 시간도 갖은 바 있다.
 
안타까운 소식부터. 이모 마르타로 나오는 프랑스의 독보적인 배우 엠마누엘 리바가 금년 1월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 작품이 유작이 된 셈이다. 한국에서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아무르’(2012)로 많은 사랑을 받은 배우다. 정신 혼미와 신체 마비 증세의 노인 역할이다. 고령 남편의 간호 그리고 깊어지는 병마로 결국엔 남편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되는 안타깝고 우울한 영화의 주인공이다. 사랑과 현실 그리고 병마를 목전에 두고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갈등하게 하는 영화였다.

 

출처 : 영화『로스트 인 파리』
 
 
다시 『로스트 인 파리』
줄거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캐나다에 사는 피오나는 파리의 이모로부터 SOS 편지를 받는다. 평소 파리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갖고 있던 피오나는 기회다 싶어 파리로 떠난다. 도착 첫날부터 모든 소지품이 들어있는 배낭을 센 강에 빠트리며 피오나의 파리에서의 힘겨운 출발을 알린다. 만나러 온 이모 마르타는 행방이 묘연하다. 치매 증상이 있는 마르타가 요양원에 보내지게 된 상황. 댄서 출신인 이모 마르타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무의식 속에 꿈틀대는 낭만적인 감성의 시간이 갖고 싶다. 집을 몰래 빠져나간 마르타는 쓰레기통을 뒤져 음식을 먹기도 하며, 피오나에게 쓴 편지는 우체통이 아닌 바로 옆 쓰레기통에 넣어 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나다에 사는 피오나에게 편지가 배달되는 동화적 상상력 스토리. 우여곡절 끝에 피오나의 잃어버렸던 휴대폰을 이모가 줍게 되고 피오나와 연락이 닿게 된다. 피오나의 배낭을 우연히 습득한 사람은 센 강 한쪽 구석에서 기거하는 노숙인 ‘돔’. 배낭 속을 뒤져 피오나의 노란색 스웨터를 입고 역시 피오나의 지갑에서 자기 돈처럼 써댄다. 우연히 만나게 된 두 사람은 기막히게 반복되는 우연으로 사랑에 빠지게 된다. 피오나는 캐나다로 돌아가지 않고 사랑하는 돔이 있는 나라 프랑스에 있기로 한다는 줄거리다.
 
 
몇 가지 감상 포인트들
 
슬랩 스틱
부부인 도미니크 아벨, 피오나 고든이 감독과 주연을 모두 맡았고 극중 이름도 본명을 그대로 사용한다. 두 사람은 함께 서커스 시절부터 연극 무대까지 내공을 쌓아 온 실력자들이다. 배낭의 등받이 철재에 밀착된 듯한, 절대 구부러지지 않는 피오나의 바른 자세도 무척 인상적이다. 젓가락처럼 곧게 뻗고 마른 몸매의 피오나가 배낭이 출입구에 걸려서 빠져나오지 못해 당황하는 장면이나 배낭의 무게에 뒤로 넘어가 센 강에 빠지는 등 슬랩 스틱 요소들을 곳곳에 포진시켰다.
 
감각적인 색채의 유혹
4번째 작품인 『로스트 인 파리』에서도 역시 도미니크 아벨과 피오나 고든 감독, 그들의 독창적인 작품의 세계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환상적인 스토리, 독특한 유머 감각, 강렬한 색감 설정, 춤과 음악 등 그들만의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영화다.
포스터부터 강렬하다. 도미니크, 피오나 감독의 전작 3편의 영화(비상, 룸바, 페어리)도 포스터만 보아도 감독이 누군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개성 강한 디자인을 하고 있다. 붉은 배낭, 노란 스웨터, 초록색 상의 등 원색의 행진이다. 눈에 띄고 기발한 상상의 세계에서 나래를 펴고 신나게 즐긴다. 희미한 것은 프랜치 감성 파리와 어울리지 않는다. 선한 눈빛의 노숙자 돔은 어디서도 기죽지 않는다. 화장실 옆의 자리에서 식사 하면서도 음악을 즐기고 춤을 즐길 줄 아는 파리지앵이다. 그린, 레드, 옐로, 블루로 색을 입힌 예쁜 그림이 계속 나오는 마치 재미있는 동화책을 읽고 있는 기분이 든다.

 

출처 : 영화『로스트 인 파리』
 
 
파리 여행
그간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온 파리 명물 중심보다는 좀 더 다양한 장소를 카메라는 담고 있다. 세트가 아닌 실제 존재하는 장소들이어서 후일 다시 한번 영화의 감동에 젖어 볼 수 있겠다. 파리 깊이 들어와 파리지앵들의 실생활이 그려진다. 파리의 빨래방, 지하철역, 선상 카페, 사진관, 빠씨 묘지라는 파리의 공동묘지, 센 강의 유람선, 마르타가 살고 있는 평범하고 서민적인 방, 파리의 골목까지. 에펠탑의 장관에 앵글을 맞추기보다는 그 주변의 모습들과 어우러진 미장센을 감각적으로 보여 준다.
엔딩 장면의 작은 섬은 시뉴섬으로 백조의 섬으로 불리는 인공섬이다. 이곳에는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과 꼭 같은 모양이면서 크기는 작은 자유의 여신상이 있다. 프랑스가 미국에 선물했던 자유의 여신상에 대한 미국의 답례라고 한다. 바토 막심 선상 레스토랑은 도미니크 아벨과 피오나 고든 감독의 탱고를 감상할 수 있었던 곳이다. 고탄 프로젝트 그룹의 ‘탱고의 복수(Chunga's Revenge)’ 리듬을 기억하면서 파리의 낭만이 듬뿍 묻어 나오는 영화 속 그들의 탱고 장면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감독 부부의 시선이 따뜻하다.
파리 예술을 쥐락펴락하는 유명인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화려한 의상, 고급 주택, 고딕, 르네상스 양식의 웅장하고 거대한 건물보다는 좀 더 서민과 가까운 곳에 부부 감독은 시선을 둔다. 에펠탑은 보이나 그 한쪽에 사는 노숙인이 주인공이다. 상상할 수 있는 재력가 노부부의 로맨틱 노년은 보이지 않는다. 치매에 걸린 두 노인 이모 마르타와 마르타의 옛 친구, 환자복을 입은 노르망이 등장한다. 이들은 화려하고 웅장한 무대가 아니 동네 공원 벤치에서 낡은 신발과 흙 묻은 양말을 신고 발로 박자를 맞추는 일명 ‘발 댄스’를 보인다. 화면은 두 노인의 발을 클로즈 업 시킨다. 너무도 귀엽고 앙증맞게 두 노인의 발들이 춤을 춘다. 역시 음악과 춤은 이들 부부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다.
 

출처 : 영화『로스트 인 파리』
 
 
물에 빠지고, 넘어지고, 비 맞고, 쪼그리고 잠을 청하고, 울고…… 순탄치 않았던 여정 끝에 만나게 된 세 사람. 에펠탑 철재에 걸터앉은 세 사람. 여명이 밝아오는 파리를 배경으로 서로 손을 꼭 잡은 세 사람. 도미니크 아벨과 피오나 고든 감독 그리고 엠마누엘 리바는 불후의 명장면을 탄생시킨다. 노련한 배우 88세 고령의 엠마누엘 리바의 표정이 어쩐지 달라보이는 이유는 뭘까.
 

출처 : 영화『로스트 인 파리』
 
 
기분이 좋아지고 사랑스럽기까지 한 영화다.
특히 연인과 볼만한 영화로 추천한다.
 
소설과 영화로도 만들어진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알렉시스 조르바는 창백한 지식인보다는 현실에 충실하고 역동적으로 살아갈 것을 호탕하게 역설한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딩 선생은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며 자유정신을 강조한다. 파리의 낭만이 만들어낸 러브 판타지 영화로 현실적인 신분을 넘어 사랑을 택한 피오나의 결정은 더 사랑스럽게 다가온다.
 
혹자는 가벼운 영화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다른 표현으로 진지하거나 어두운 영화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감독의 철학이 부재한 영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도미니크 아벨과 피오나 고든 감독의 선(善)에 근거한 자유주의 정신은 소외된 것에 활력을 주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의미를 부여한다. 심지어는 강렬한 판타지로 재탄생시킨다.
 
사랑에 목마르고 판타지까지 갖춘 분이라면, 우선 영화『로스트 인 파리』의 피오나 여정을 참고하며 파리로 떠날 마음의 준비를 권해본다. 
 한인경/시인·인천in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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