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음악의 영토에 대한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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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음악의 영토에 대한 상상
  • 이권형
  • 승인 2017.06.1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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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이권형 / 음악가
 

-한국대중음악 100대명반과 음악의 생명력

 

 지금은 사라진 네이버 '오늘의 뮤직’ 페이지를 매주 확인 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오늘의 뮤직에는 요일마다 다른 테마의 기획이 연재됐는데 그 중 내가 특히 즐겨 찾았던 두 꼭지가 있다. 하나는, 그 주 발매된 음반들에 전문가 평점을 매겨 최고점을 받은 음반을 한줄평과 리뷰를 더해 소개하는 '이주의 음반’. 최근까지도 이뤄지는 영화 전문가 평점 문화와 거의 흡사한 방식이다. 또 다른 하나는, 과거 한국의 대중음악사를 빛낸 명반을 꼽아 소개하는 꼭지로 역시 리뷰와 함께 소개되었다. 이름하여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이 그것이다. 100개의 음반과 100개의 리뷰가 연재된 대기획이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이주의 음반’과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을 함께 소개받을 수 있었다. ‘한국 대중음악’의 현재와 과거가 위도와 경도를 이루며 지도를 그려냈다. 나는 그 안에 새겨진 이름들을 게걸스럽게 섭렵하며 파고들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올해가 가슴네트워크 선정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이 발표된 지 10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그리고 플랫폼창동61에서 개관 1주년과 맞물려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발표된 지 10년이 지난 리스트를 토대로 전시가 이루어진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전시의 내용과 감흥은 전시장 밖의 현실에서 이야기 될 때 꾸준한 생명력을 얻는 법이다. 훌륭한 음악 작업의 최후가 단순히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려 소비되는 것이라면 그건 허무한 일일것이다. 하지만 진정 위대한 예술 작품은 다양한 층위에서 현재를 투영하며 생명을 얻는다. 그렇기 때문에 문서화 된 이름들에 주어진 권위는 (그 이름들을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도전 받고 재배치 되어야 마땅하다. 10년이 흘러 전시장으로 다시 불러들여진 이름들을 표본삼아 살아있는 영토를 구축하고 새롭게 배치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은 말하자면 내가 처음으로 펼친 지도였다. 그 영향이 컸던 탓에 자연스레 ‘한국 대중음악상’, '2000년대 베스트 앨범 100’ 등 한국 대중음악의 수 많은 비평의 지형도들을 이정표 삼아왔다. 그런데 계속 보다보니 의문이 생겼다. 그것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새로운 지도 그리기 작업은 이러한 질문에서부터 시작해야한다. 이를테면 유재하의 1집이 살아있다는 말은 그가 아무리 훌륭한 음악을 만들었다 한들 유재하음악경연대회를 통해 배출된 뮤지션들의 족적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힘을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음반사전심의 철폐의 상징이 된 정태춘의 7집 <아, 대한민국>이나 사전심의제도의 영향으로 서태지와 아이들 4집에 가사없이 실린 <시대유감>이 살아있는 의미로 다가올 수 있는 건 안타깝게도 여전히 예술인 블랙리스트가 실재하는 작금의 현실 때문일 것이다. 어떤 의도와 욕망에 의해 선별된 작업이 문서화 되어 보여질 때 그것이 현재의 우리에게 진정 생명력있는 의미를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야한다.
 

 

-인천 음악에 대한 단상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가령 '인천 음악’의 영토를 구축해 간다고 했을 때 그 일은 기존 지형도에 의미있는 질문을 던지는 일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인천 음악이라고 말했을 때 그것이 단순히 제도적인 구분의 의미 밖에 갖지 못하게 되는 것을 경계해야한다. 그러한 인위적인 구분은 그저 스스로를 제도의 틀 안에 가두고 의미 없는 혼란만을 불러올 뿐이다. 부평 미8군기지 문화라던가, 헤비메탈 씬에 대한 흔적을 더듬어가며 ‘음악도시 인천’을 외치지만 그 외침이 우리에게 아무런 살아있는 의미를 주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작년 십정동 열우물 토박이 싱어송라이터 강헌구가 (뉴스테이 재개발로) 언제 없어질 지 모를 열우물 마을을 기리며 '재개바라 콘서트’를 기획하고 아쉬움을 담아 부른 자신의 노래 <열우물길>과 가수 김광진이 자신의 고향을 떠올리며 만든 <배다리>를 두고 인천 음악의 영토에 함께 배치하는 것이 의미 있으려면 그 음악들을 인천 음악이라고 불렀을 때 그 작품들 간 역학관계를 투영하는 관점이 드러나야한다. 그러나 내 생각엔 이 두 작품을 인천 음악의 영토에 함께 배치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두 작품 간에는 별다른 역학관계가 읽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인천 음악의 지도를 그릴 때 중요한 것은 그 안에 포함된 작품들 간에 철학적, 미학적, 정치적 교류와 연대의식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러한 교류와 연대의식을 형성시켜주는가? 인천 음악이라는 지도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장소와 관계들을 떠올려 본다. 이를테면 34년간 신포동을 지키며 꾸준히 공연을 만들어온 클럽 ‘버텀라인'이나, 지금은 없지만 7년간 유수의 공연 기획을 이어가며 음악가들의 관계를 형성했던 '글래스톤베리 인천'의 커뮤니티, 그 밖에도 지역의 커뮤니티를 형성해 교류를 만들어 온 공간과 문화 같은 것들 말이다. 살아있는 인천 음악의 지도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 도시의 정체성과 연대의식을 형성시켜주는 인프라들이 바탕이 된다는 것을 상기해야하는 것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인천의 커뮤니티들과 연대의식을 가진 한명의 음악가로서 사라져가는 열우물 마을에서 당사자로서 공연을 기획해준 강헌구와 마땅히 연대하여 함께 노래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북성포구 매립이 논해지고, 115년의 역사를 품고 있던 근대건축물인 애경비누 공장이 주차장 부지가 되어 무너지고, 송림마을이 뉴스테이 재개발이 진행되어 공허하게 사라져가는 것을 남의 일처럼 생각할 수 없다. 인천 음악의 영토를 상상하고 그것이 기존 대중음악의 지도에 새로운 선을 그을 만한 미학적 성취와 흐름을 만들어내려면 그러한 정치적 연대의식을 기반으로 음악적 주체들의 커뮤니티가 형성되는 일이 선행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인천 음악의 영토를 상상하는 것이 구분 짓는 의미가 아닌 연대의식의 매개로서 생명력있게 작용했으면 하는 생각으로 적어본다.


<지난해 10월 신포동 재즈클럽 '버텀라인'에서 열린 '목포의 눈물' 이난영 탄생 100주년 기념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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