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팔지 않는 '요우깡'
상태바
지금은 팔지 않는 '요우깡'
  • 은옥주
  • 승인 2017.06.20 0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7) 추억의 기차여행 그리고 간식거리

오랜만에 기차로 고향을 다녀왔다.
KTX의 깨끗하고 편안한 좌석에 앉아 시원한 에어콘에 창밖으로 휙휙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들을 보자니 이 기차는 나에게 우주선만큼이나 신기하게 느껴졌다.
아침밥도 먹지 못하고 허둥지둥 왔기에 판매원에게 간단한 요깃거리를 고르며 옛날 어린시절의 칙칙푹푹 기차, 말하자면 보통열차가 생각이 났다.





어린시절 할아버지는 맥고모자(하얀 테가 있고 검정 띠를 두른 모자)를 쓰시고 빳빳하게 풀먹인 두루마기에 고동색 지팡이를 짚으시고 “주야~~ 가재이.” 하시며 자주 대구에 있는 엄마 집으로 나를 데려다 주셨다.

내 고향 청도(남성현)역에서 대구까지는 기차역을 4개나 지나야 되는데 남성현역을 지나자마자 십리굴이라는 긴 기차터널이 있었다. 그 터널을 지날 때면 갑자기 열차 안이 깜깜해지고 석탄을 떼는 열차 연기가 차안으로 다 들어와서 코 안이 맵고 눈물이 나서 다들 수건을 꺼내어 얼굴을 막고 한참을 ‘철거덕 철거덕’ 기차 바퀴 소리를 들으며 지나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는 다음역이 다 왔을 때는 ‘뚜우~ 뚜우’ 하며 힘차게 기적소리를 내곤 ‘슈~~우욱’ 하고 공기 빠지는 소리가 난 다음에 열차는 서서히 멈추는 것이었다.

‘칙칙푹푹 ~ 칙칙푹푹 ~ 칙칙푹푹’ 천천히 가다가 빨라지면 기차 바퀴에 달린 피스톤 같은 것도 속도따라 엄청 빨리 움직이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고 맨 앞 기차불통(머리)에서는 아저씨가 연신 삽으로 석탄을 집어넣고 열차는 머리 앞에 달린 굴뚝으로 시커먼 연기를 뿜으며 달리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열차 안에는 플라스틱 장바구니같이 생긴 바구니에 여러 가지 먹을거리를 가득 담아 어깨에 메고 제복에 노란 완장을 찬 아저씨가 큰소리로 “달걀 있어요.” “오징어 땅콩 있어요.” “사이다 있어요.” 하고 소리 지르며 사람들 틈을 헤집고 다녔다. 할아버지는 항상 사이다나 삶은계란, 캬라멜, 요우깡(연양갱)등을 사주시곤 하셨다.
사이다의 톡 쏘면서 달콤한 맛, 입에 사르르 녹는 눈깔사탕보다 더 달콤하고 말랑말랑한 캬라멜이 참 맛있었지만 특별히 요우깡(연양갱)은 얼마나 맛있던지! 팟이 군데군데 보석같이 박혀있고 한 입 베어물면 그 쫀득쫀득하고 달콤하고 신묘막측한 맛이란!

나는 엄마, 아빠를 만나는 것 보단 기차에서 먹을 간식거리 때문에 대구에 가는 것이 너무 기다려졌었다. 그때 우리 동네가게에는 눈깔사탕이나 뻥튀기, 센베이과자 외에는 그런 맛있는 과자를 파는 곳이 없었으니 그 즐거움이란 가히 신세계라 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4학년 때쯤 진학문제로 대구로 전학을 오게 되었는데 시골과 도시환경이 너무 다르고 학습 진도도 매우 달라서 내 딴에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 같은데, 그래도 주말에 고향갈 생각만 하며 머리맡에 보따리를 싸놓고 토요일 학교수업이 끝나자마자 냅다 고향가는 기차를 탔고 십리굴을 들어갈 때는 다음역이 고향역이라 가슴이 콩닥콩닥하고 심장이 터질 듯하여 기차 안에서 있지 못하고 기차연결 통로로 나와서 그 깜깜한 곳에서 연기를 고스란히 다 마시고 서 있어서 굴 밖으로 나오면 콧구멍이 새까맣게 된 적이 참 많았던 것 같다. 나에게 기차여행은 천국여행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가슴 설레던 추억이었는데 그 십리굴이 이제는 보통열차가 없어지고 나서 감 와인을 생산하는 장소로 유명해졌다.

그 후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마침내 자유인이 되었을 때부터 역마살이 있는 친구들과 자주 기차여행을 다녔었다. 제일 싼 기차가 통일호로, 비둘기호로 이름들이 여러번 바뀌었지만 좌석권이 없는 우리들은 화장실 옆 빈칸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트럼프 놀이도 하고 삶은 밤이나 계란을 까먹고 특히나 밤 열차를 타면 대전역에서 퉁퉁 불은 뜨끈뜨끈한 우동 한 그릇 먹으려고 전속력으로 달려가서 먹던 그 맛이란~! 이렇게 기차여행과 군것질은 참 많은 이야기의 추억을 선사하는 것 같다.

두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들이 두발로 걸을 수 있을 때부터 다시 내 기차여행은 시작되었다. 아이들이 자기 베낭을 하나씩 메고 나와 양손에 한 아이씩 붙잡고 기차를 타면 꼭 삶은 계란과 눌린 오징어, 연양갱은 우리들의 단골메뉴가 되었고 아이들도 여행가자고하면 입맛을 다시며 기차여행의 군것질거리 때문에 기차여행을 즐기게 되었던 것 같다.

KTX로 몇 년전 모처럼 가족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딸은 가족석을 예약했고 편안한 좌석에 마주앉아 사이다 대신 커피와 연양갱 대신 초코렛을 먹으며 그래도 이제는 팔지않는 연양갱이 그리웠었다. 아마 맛있는 과자가 너무 많은데 달기만한 연양갱이 인기가 없는 모양인데 우리 가족은 내심 섭섭했다. ‘아니, 그 맛있는 것을 안 팔다니!’
허긴 가게에는 연양갱이 수북수북 쌓였는데 절대 안 사먹다가 기차만 타면 생각나는 건 추억과 함께 먹고 싶은 마음 때문이리라.

이야기 심리학에서는 모든 동물 중에서 인간만이 유일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며 살아가는 ‘이야기하는 동물’이며 또 자기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동물이라고 했다. 나는 지난 세월 동안 참 많은 이야기를 하며 살아왔지만, 앞으로 남은 날 동안 어떤 이야기를 만들며 살아가고 싶은지 생각해보게 된다. 이제 손자가 걷기도 하고 제법 뛰게도 되었으니 내년부터는 돌돌이와 같이 기차여행을 하며 삶은 계란도 까먹고 맛있는 연양갱도 먹으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나갈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