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주안8동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입점 예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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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주안8동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입점 예정지
  • 이병기
  • 승인 2010.01.18 0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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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M 가맹점 들어오면 "손 들고 나가야지"

8년째 한자리에서 슈퍼를 운영한 최씨 부부에게는 주민 대부분이 식구와 다름없다

"아줌마, 이거 얼마예요?"

"백원이야."

"이거는요?"

"백원."

"이건요?"

"그것도 백원이다. 뭐든지 다 물어봐라(호호)."

최관식(52)씨는 남구 주안8동에서 아내와 함께 슈퍼를 운영한다. 올해로 8년째 한 자리에서 장사를 하니 웬만한 동네 사람들과는 허물없이 지낸다. 또래는 친구고 애들은 자식이다. 동네 노인들은 부모와 마찬가지다.

"아저씨, 어제 귤은 맛이 별로 없던데."

한 아주머니가 귤이 맛이 별로라며 장난삼아 아저씨에게 투덜거린다.

"그거 내가 가격 빼준거야."

최씨도 원래 가격보다 싸게 준 거라며 생색을 낸다. 옆에서 들으니 말 속에 묻어나는 정에서 절로 웃음이 번진다. 어떤 이는 슈퍼에서 담배 한 보루를 사갔다가 최씨 선물이라며 다시 가져온 적도 있다고 한다.

요즘 최씨에겐 큰 걱정거리가 생겼다. 불과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입점한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상가 1층의 개별공간 6칸을 모두 사용할 예정이라는 홈플러스 가맹점은 크기 만큼이나 부담스럽다.

언제고 그 앞을 지나갈 때면 길가에 걸린 '편법적인 재벌슈퍼 SSM 체인화 결사 반대한다!'는 현수막과 건물을 번갈아 바라본다. '저 말처럼만 되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얼굴에 묻어난다. 하지만 지금은 별다른 도리가 없다. 한숨을 한 번 쉬고 다시 가던 길을 걷는다.

홈플러스 SSM 가맹점 입점 예정건물. 길가에는 입점 반대 현수막이 걸려 있다.

"내가 직접 현장 조사를 해봤어. SSM 가맹점을 중심으로 반경 700m 이내에 슈퍼랑 농산물 가게가 몇 군데 있는지 조사한 거지. 한 50군데 되더라고. 500m 이내는 20군데 빠지고 30곳 정도 있어. 근데 딴 사람들은 아직도 잘 모르나봐. 별로 신경을 많이 안 써."

실제로 주안 8동에서 SSM 가맹점 입주 반대 활동을 하는 사람은 최씨 혼자뿐이다. 얼마 전까지는 한 슈퍼 주인이 총무를 맡으며 함께 활동했지만 지금은 나오지 않는다. 그나마 언덕 넘어 찾아간 슈퍼에서 "일이 있으면 불러달라"는 대답을 듣고 조금 위안을 삼는다.

최씨의 가게 위편에 위치한 한신휴플러스는 작년 말부터 사람들이 입주하기 시작했다. 18개동 1509세대가 입주 예정인 한신휴플러스는 재건축 전보다 약 300세대가 증가했다. 지금은 600여 세대만이 입주한 상태. 최씨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늘지도 않았는데, 이것을 노리고 SSM 가맹점이 들어온다고 하니 얄미운 생각도 든다.

최씨의 슈퍼에는 없는 것 빼놓고 다 있다.

주민들은 조금 불편할지 몰라도 다행히 아파트 상가에는 슈퍼가 없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슈퍼가 아파트 정문 바로 앞에 있어 큰 불편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갈산동에서는 인근 아파트 부녀회에서 SSM 가맹점을 들어오게 해달라고 진정도 했나봐. 여기도 그럴지 모르지. 개인이 오는 건 어쩔 수 없지만, 회사가 들어오면 손 들고 나가는 게 나아. 그래도 버틸 때까지는 버텨 봐야지."

27평 남짓한 최씨의 슈퍼엔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다. 과일, 생선, 야채부터 아이들 간식거리, 휴지, 빗자루의 공산품까지 등 온갓 생필품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끝없는 물량공세로 동네 상권을 장악하는 SSM 가맹점이 들어오면 아무래도 최씨의 말처럼 '손 들고 나가야' 할 것 같다.

"슈퍼나 농산물 가게 뿐만 아니라 정육점이나 다른 가게들도 영향을 받을 텐데 잘 못 느껴서 안타까워. 나를 위해서도, 주위 상인들을 위해서라도 끝까지 해볼 거야."

가는 길, 추운 날씨에 커피나 하나 마시라며 온장고 안 음료수를 건네는 그의 손이 씁쓸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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