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겨울이 왔으니…
상태바
이제 겨울이 왔으니…
  • 박흥렬
  • 승인 2009.12.22 16: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 사람이 강화로 간 까닭은?>①박흥렬 화백

  11월 중순이면 몸과 마음이 바쁘다. 

  밭에 심어놓은 배추, 무, 순무를 뽑아 다듬어 일 년 동안 먹어야 할 김장을 담가야 하며, 난방에 필요한 나무들도 때기 좋게 잘라야 하고, 사랑채에 쓸 연탄도 들여놓아야 한다. 콩을 불리고 삶아서 메주를 만드는 일도 빠뜨릴 수 없다. 올해는 배 수확이 적어서 일손이 줄긴 했지만 즙도 내리고 작년에 만든 식초, 효소도 걸러야 한다. 창고건물로 쓰는 비닐하우스, 개집도 더 추워지기 전에 손봐야 한다.   

  12월이 되면 살얼음이 얼기 시작한다. 

  길에 팬 웅덩이며, 개밥통의 물에도 죄다 살얼음이 낀다. 아침에 마당으로 나서면 밤사이 내린 서리가 발 밑에서 '사가락 사가락' 소리를 내며 부서진다. 이맘때면 바람도 겨울 냄새를 풍긴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때를 맞춰 철새들이 '끼루룩 끼룩' 열맞춰 지붕 위를 날아간다. 아침 밥을 먹고 설거지를 마칠 즈음이면 기러기, 청둥오리, 개리 따위가 북동쪽 봉천산과 별립산 사이 어름을 넘어와 바다가 있는 서쪽 망월벌판으로 날아간다. 

  그 중 일부는 집 앞의 하점 벌판에 내려앉아 쉬기도 하고 먹이를 구하기도 한다. 수천 마리의 새들이 논바닥에 몰려 있는 모습은 장관이다. 아내는 기러기떼를 보며 제것이라 할 수는 없지만 보는 사람이 주인이 되는 광경에 부자가 된 듯 풍요로움을 느낀다고 했다.  

  농로길을 걷다가 일부러 '훠이 훠이' 큰소리를 지르면 논 가장자리에 앉은 새들부터 '후드득' 떠오르다가 이내 모든 새들이 하늘로 오른다. 그리고 무리를 지어 공중을 두어 바퀴 선회하다가 다시 저 건너 논바닥으로 내려앉는다. 날이  저물 때면 반대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마치 일을 마치고 제 쉴 집을 찾아드는 사람처럼. 

 화목보일러에 나무를 넣고 불을 붙이면 연통으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벌판을 바라보며 담배 한 대 붙여 물고 오줌을 갈기고 몸을 부르르 떨고 나면 하루의 일이 끝난다. 잠자리에 들면 지나가는 바람에 창문이 덜컹거리는 소리가 이제 겨울이 곁에 왔다고 말하는 듯하다.

 겨울채비가 모두 끝나는 이맘때면 동네사람들은 하얀 백설기를 조금 찌고, 음식도 장만해서 장독대에 올려놓고 치성을 드린다. 올 한해 농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내년에도 무탈하게 농사를 짓게 해달라고 칠성님께 비는 것이다. 종교를 가진 이들은 교회나 성당에서, 절에서 추수감사를 바치기도 한다.

 어디서 누굴 대상으로 빌든  그 마음만큼은 깨끗이 빤 무명옷을 볼 때처럼 소박하고 따뜻하다. 문명이 발달하고 기계화니 과학영농 어쩌니 하지만 그래도 농사의 반은 하늘에서 짓는 일. 직접 땅을 밟고 기르고 가꾸면서 땅의 축복을 캐는 노동과 하늘의 축복을 비는 간절한 마음이 함께 이루어져야 가능한 일이 바로 농사인 것이다.

 수천마리의 새들이 논바닥에 몰려 있는 모습은 장관이다.

 여기 강화로 와서 터를 잡은 지 내년이면 꼭 10년이 된다. 

 '왜 강화로 왔는가'라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쉽지 않다. 물론 인천에 살던 때도 아내와 시골에 가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얘기하곤 했다. 아내는 생태적인 감수성이 예민한 편이다. 풀꽃이나 나무의 이름, 생태에 대해 다양한 지식을 갖고 있으며 경작하고 가꾸는 일에도 꽤 취미가 있다. 그래서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곤 했다.

 나 역시 딱히 매어진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시민사회운동을 통해 땅에 기대고 사는 삶도 나쁘지 않으리란 생각을 갖고 있던 터였다. 또한 원고료에 의지하는 불안정한 수입에 비해 정기적인 지출을 요구하는 도시의 생활패턴도 불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파트를 벗어나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다른 데 있었다.  

 어느 초여름 날이었다.

 오후 6시쯤 되었을까. 시내에서 볼일을 보고 돌아왔는데 아파트 단지 안에서 묘한 광경을 본 것이다. 1층의 어느 집을 보니 우리 집과 똑같은 풍경이 연출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한쪽 벽면에 위치한 텔레비전에서는 만화영화가 상영되고 있었고, 반대쪽 벽면에는 소파 위에 아이들이 앉아서 보고 있는 익숙한 모습. 그것은 늘 보아오던 우리 집 풍경이었던 것이다.

 놀라운 것은 그 집의 옆집, 그 옆의 옆집, 모두 똑같았다. 마치 한 집을 복제하여 늘어놓은 것처럼 같은 모습이었다. 놀랍고 충격적이었다. '아, 우리의 아이들이 이렇게 획일화한 공간과 시간의 울타리에 갇혀 있구나' 하는 것을 알았을 때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몰개성적인 그 모습을 보면서 이곳을 벗어나자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2001년 봄 살던 아파트를 팔고 인근의 시골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당시 모 지방신문의 만평을 그리고 있었기에 가까운 검단, 김포, 하성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공장지대로 둘러싸인 주변환경에 실망한 나머지 결국 강화까지 온 것이다. 전셋집을 구하고 인천의 살림을 정리하고 이사오는데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시골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는데, 의도하지 않았던 변화가 우리에게 일어났다. 

 그것은 우리가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변화이며, 이곳으로 오지 않았다면 우리의 삶이 어떤 모습이었을까 궁금해지기 까지 하는 그런 변화였다. 아이들의 모습, 아내, 가족과의 관계, 나의 관계 맺기에 대한 성찰, 동네 주민들과의 교류, 그리고 자연의 순환을 감지하고, 그것을 드러내고 표현할 수 있는 재능에 대한 고마움 등등 나와 가족의 삶이 이전보다 많이 풍요로워진 것이다.

 특히 성장과정의 아이들에게 강화로의 이주가 얼마나 도움을 주었는지 나중에 따로 서술하도록 하겠다. 큰아이가 강화에 오지 않았다면 나는 그냥 평범한 아이가 되었을거라고, 자기는 특별한 아이라고 스스로에 대해 자부심을 드러내는 모습은 우리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무엇을 잘한다는 조건이나 경쟁에서의 우위로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치있고 소중한 존재라는 당당한 자기인식이 고마웠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개구쟁이들의 장난처럼 재미있고도 모험적인(?) 시간이었다. 땅을 구하고 아무 기술도 없이 덜컥 집을 짓겠다고 나설 때조차 두렵기보다 재미있었다. 여름밤이면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밤새 술을 마실 때도, 동네 어른들의 퉁박을 들어가며 밭을 갈때도 마치 놀이처럼, 나의 본래적인 삶은 따로 있고 이곳은 먼 여행지에 와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냈다. 

 이러한 들뜬 기분을 가라앉히고 이 곳의 삶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이곳에서 지내면서 마음 한구석에는 불편함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름대로 20여년 넘게 시민사회운동을 해오면서 공공선을 실현하는 데 힘을 보태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 믿었기에, 그 현장에서 비껴 서 있다는 사실이 때로는 나를 우울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내가 터를 잡은 이 곳의 소소한 일상이 회피나 물러섬이 아니라 세상과 관계 맺는 또 다른 방식이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이해시키고 싶었으나 쉽지 않았다. 그래서 지인들이 "왜 강화로 들어갔느냐?"라고 물을 때 나를 비난하는 듯한 질문으로 곡해하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만족할 만한 명확한 답변을 찾지 못해 얼버무리곤 했다. 

 그러나 밭일을 하다가도, 동네 어른들과 모여 술추렴을 할 때도, 그림을 그릴 때도 문득 문득 스스로에게 묻는다.'네가 이 곳에 사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라고. 도시에 있었다면 결코 이런 질문을 나에게 하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이 곳에서는 이런 질문을 때때로 던진다. 왜 일까? 그 답은 아직 잘 모르겠다.
  
 앞으로 몇 번에 걸쳐 강화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쓰면서 그 답을 찾았으면 좋겠다. 어쨌든 이 글은 철저히 주관적이고 넋두리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아, 이렇게 생각하고 사는 사람도 있구나'라는 너그러운 시선으로 봐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박흥렬은 누구?  

강화군 하점면 이강리 하점들판 가운데에 집을 짓고 산다. 배나무를 기르고 있으며 식구들 먹을거리는 자급자족한다. 오전에는 농사를 포함한 바깥일을 주로 하고 오후, 저녁시간에 주로 만화를 그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