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 위에서 자신을 드러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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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 위에서 자신을 드러내라”
  • 이권형
  • 승인 2017.08.07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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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이권형 / 음악가

<간석오거리역 고가다리_2013_유광식>


2013년 대학을 그만두고 한창 한가한 시기였다. '간석오거리 현피영상’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발견했다. 나는 상인천 중학교 출신으로 간석오거리는 내 등하굣길이었고 영상은 내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두 남자가 등장했는데 시비가 붙어 실제 만나 싸우는 소위 ‘현피’를 뜨는 중이라는 것이다. 이는 알고 보니 엄태화 감독 연출의 영화 ‘잉투기’의 홍보 영상이었다. 2011년에 실제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격투 갤러리(*디시인사이드 내에 주제별 게시판이 분화되어 있음)에서 개최된 격투기 대회 ‘잉투기'(잉여들의 격투기라는 뜻이다.)와 갤러리 내에서 서로 도발을 일삼으며 일종의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던 닉네임 ‘칡콩팥’과 ‘젖존슨’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은 영화다.

2008년을 돌이켜보자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그 해. 음악을 결산하는 대중음악 비평 지면에는 검정치마, 국카스텐, 브로콜리 너마저, 언니네 이발관 등의 이름이 한자리에 있었다. 홍대 인디에 대한 매체의 관심이 크게 늘었다. 특히 온라인에서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EBS스페이스 공감’ 라이브 영상이 폭발적으로 화제가 됐다. 그 배경에는 디시인사이드의 짤방(짤림 방지 - 게시물이 운영진에게 임의로 삭제되지 않도록 게시물에 함께 첨부하는 컨텐츠라는 뜻에서 유래) 문화가 있었다. 인디밴드 갤러리에서 처음 공유된 장기하 짤방이 디시인사이드 커뮤니티에 확산된 것이다.

2008년은 디시인사이드 인디밴드 갤러리가 개설된 해이다. 그때가 중학교 2학년이었으니 내가 인디밴드 갤러리 내에서 최연소가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지금 떠올리면 이불을 걷어차게 되지만 당시 나에게 인디밴드 갤러리는 일종의 해방구였다. 인천 사는 중학생에게 일상은 지루함과 막연함의 연속이었고 음악 얘기할 사람은 필요했기 때문이다. 버스 창밖으로 간석오거리 굴다리에 설치되어가는 둥근 조형물들을 보며 그 곳에서 공연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 음악가를 동경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우습게도 그 기억 한 켠에 디시인사이드와 간석동의 조합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잉투기를 볼 때마다 디시인사이드와 간석오거리와 나 사이의 절묘함에 대해 생각하고는 했다. 이 데칼코마니 같은 절묘함.

인천은 수많은 영화의 배경이지만 그 안에 인천의 지명은 지워져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드시 인천에서 찍어야만 했기 때문에 인천이 등장하는 장면은 얼마 되지 않는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천은 대게 서울에서 촬영하기 어려운 장면을 찍기 위해 선택된 배경일 뿐이다. 간석오거리는 실제 칡콩팥과 젖존슨이 현피 장소로 언급하던 장소이다. 실화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서 잉투기에 등장하는 간석오거리 장면들은 그곳에서 찍어야만 했던 것이다. 잉투기는 그래서 간석동을 살았던 나에게 특별한 영화로 느껴진다.

인천의 풍경이 배경화되는 경향은 도시의 정체성이 부재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배경화 된 이미지 속에 산다는 것의 결과는 주체성의 상실이다. 송월동 동화마을이나 신포동 러시아거리 등을 볼 때 화려한 이미지들로 정체성의 부재를 포장하려는 인천이라는 도시의 열등감이 느껴진다. 인천을 살아가는 이들은 그러한 도시의 이미지와 열등감을 그대로 체화한다. 이때 필요한 것은 열등감의 표출이다. 해방구가 필요한 것이다.

2008년, 음악 얘기할 곳을 찾아 디시인사이드를 하다가 음악을 시작했다. 잉투기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보자. 영화감독 박찬욱은 이 장면을 데이빗 핀처 감독의 영화 '파이트 클럽’에 비견했다. 간석오거리 굴다리 밑에서 벌어지는 파이트 클럽이 통쾌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이 남의 일 같지 않은 탓일 것이다. “키보드 뒤에 숨어서 서로 상처 주지 말고 링 위에서 자신을 드러내라” 영화에 나오는 잉투기의 개최 취지이다. 우리의 링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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