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의 친밀한 접촉, 그리고 심리적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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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의 친밀한 접촉, 그리고 심리적 독립
  • 장재영
  • 승인 2017.08.15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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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독립한다는 것의 의미


“와후~ 인제 나도 서울사람이다!”

인천사람인 내가 서울에서 첫 직장과 첫 자취방을 얻었을 때의 일이다. 나랑 친구는 일주일간 발품을 팔아가며 건대입구역 앞 조그마한 방 두 칸짜리 반지하를 계약했다. 비록 방 크기가 아담하긴 했지만 접이식 라꾸라꾸 침대가 들어갈 정도는 되었으며 두 개의 방 옆에 작은 거실도 하나 딸려있어 친구와 함께 밥을 먹기에도 충분했다. 다만 화장실 천장이 낮다보니 샤워할 때마다 허리를 굽히고 매우 겸손한 자세를 취했던 것 빼고는 모든게 다 신이 났던 것 같다.

얼핏 본가에 있는 편안한 공간에 비해 불편할 수도 있던 상황인데 무엇이 그렇게 신이 났을까?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했던 나는 두 달간 인천에서 잠실까지 수도권에서 악명 높은 1,2호선 지옥철을 타고 출퇴근을 통틀어 총 3~4시간을 왕복하며 회사를 다녔었고 어쩌다가 야근이라도 한번 한다치면 막차가 끊겨 버리는 상황이라 친구네 집에서 신세를 지는 일도 많았기에 가까운 곳에서 회사를 다닐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었다.

또한, 사회인으로서의 첫 출사표를 던졌던 그 순간은 마치 막 태어난 갓난아이처럼 모든게 새롭고 신기했다. 더 이상 부모님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해나간다는 것에 대해 ‘혼자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도 있었지만 그런 불안감 이면에는 설레임을 동반하고 있었으며 부모님의 안전하고 아늑한 둥지를 떠나 황무지 벌판을 가로지를지언정 나만의 색깔을 찾아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더욱 컸던 것 같다.

이렇게 독립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단지 집을 나왔다는 물리적인 의미뿐만이 아니라 힘이 들더라도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선택을 직접 감당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정서적인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상담 현장의 여러 사례들을 보면 부모와의 정서적인 독립을 하지 못해 도움을 호소하는 내담자들이 많다. 그런데 이미 경제적으로 독립하여 결혼도 하고 아이를 나아 기르는 등 겉으로 보기에는 완전한 독립을 한 것 같아보이나 아직 원래의 가족에 대한 원망 및 여러 정서적인 부분에 얽매여있는 성인 내담자의 경우도 많이 있다. 이것은 결국 경제적, 물리적인 독립이 꼭 정서적인 독립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 같다.

정신역동적으로 정립된 체계적인 접근 방식으로 인간행동과 문제에 대해 포괄적인 견해를 갖는 보웬의 가족치료 이론에서는 부모와의 정서적 독립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또한, 자아분화라는 개념이 있는데 개인이 가족 구성원들로부터 심리적으로 독립된 정도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즉, 자아분화 수준이 낮은 경우 가족원들과 정서적으로 얽매이는 정도가 높고,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반응에 민감하고 의존적인 모습을 보이는 등 타인 중심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반면에, 자아분화 수준이 높아 가족과 심리적인 독립이 이루어진 경우에는 가족원들과 친밀한 정서적 접촉을 하면서도 확고한 자아정체감과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으며 자신과 타인의 신념과 가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정서적인 독립은 삶에 매우 큰 의미를 지니며 부모에게도 자녀에게도 정말 큰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정서적인 독립이 그렇게 쉽사리 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가족 안에서 서로 간의 독립된 삶의 방식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주기위한 노력이 꼭 필요하며 자녀가 심리적 독립을 위해 떠날 때가 되었다면 믿고 보내주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서로가 각자 독립된 한명의 개인으로 성장해 나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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