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제대로 지불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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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제대로 지불하고 있나요?
  • 박주현
  • 승인 2017.08.21 1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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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박주현 / 대만 중국문화대학교 교환학생



2014년. 열정페이라는 말은 빠르게 번졌습니다. 청년들뿐만 아니라 부모님 세대에서도 ‘열정 페이’는 큰 공감을 얻었고, 지금은 아주 자연스럽게. 그리고 당연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갑의 횡포를 ‘풍자’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 갑의 횡포를 ‘설명’하는데 쓰이고 있습니다.
누가 처음으로 ‘열정페이’라는 말을 꺼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단어는 빠르게 퍼지고,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노동의 가치가 폄하되는 것을 공감하고, 분해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 S군을 알게 되었습니다. S군은 찻그릇과 도자기, 다구에 빠져있는 청년입니다. 제가 차(茶)에 빠져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저희는 ‘차’라는 공통 관심사와 각자 좋아하는 것에 대한 열정 덕분에 금방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S군은 자신이 찻그릇에 매료된 것이 초등학생 때부터였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학원 다니기 급급할 때 그는 전국을 돌아다녔습니다. 많은 작가님을 만나고, 요장과 흙을 보았습니다. 새벽 기차에 몸을 싣고, 장작 가마에 불을 때는 것을 돕기도 했습니다. 성인 남성도 하기 힘든 일을 묵묵히 했습니다. 그가 그것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S군은 여전히 찻그릇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는 찻그릇 이야기를 할 때면 가끔 체념한 듯한 표정을 짓곤 합니다. 그는 찻그릇을 정말 좋아하기에, 다른 이들보다 가깝게 그 세계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S가 봤던 것은 재능 있는 젊은 작가들이 뒤틀린 권위에 의해 착취당하고, 싹을 밟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광경은 말을 아주 조심스럽게 하는 S조차 ‘환멸스럽다’ 라고 표현할만한 것이었습니다.
 
저희 둘은 서로에게 물었습니다. 어째서 자신의 분야를 사랑하는 재능 있고, 열정 있는 이들이 억압받고, 착취당해야 하는가를요. 원인은 참 많았습니다. ‘갑’의 기득권 유지, 취업 절벽과 값싸고 부리기 쉬운 노동력에 대한 요구, 잘 되게 해준다는 달콤한 말 등. 원인은 참 많은데, 해결책은 많지 않았습니다. 해결책을 만든다면, 그것은 그 이상의 열정이 또다시 요구되는 해결책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새로운 판로의 개척이었습니다. 기존의 시장이 이름이나 브랜드 중심의 ‘고인 물’이라고 한다면, 물꼬를 다른 곳에서 트자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습니다. 그것이 해결 된다면 그다음으로는 서로의 역할을 나누자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차도, 도자기도 역할 분담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 홍보와 판매까지 하려다 보니 작품의 질은 낮아지고, 기존 시스템에 묶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판매를 하는 사람이 물건을 선별하다 보니 제품의 질과는 상관없이 많은 이익이 남는 물건을 고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작품을 만드는 사람은 좋은 작품을 만드는데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작품을 고르는 사람은 제대로 된 물건을 정당한 값으로 선별하며, 소비자에게 작품을 파는 사람은 홍보하고 판매하는데 매진할 수 있는 역할 분담을 하자고 말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이 시장구조를 위해, 열정페이를 정당한 임금으로 만들기 위해, 저희는 저희의 열정을 지불하기로 했습니다.
 
열정(熱情). 어떤 일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
부정적인 이미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이 단어가 어느샌가 ‘바보 같은’, ‘이용하기 쉬운’, ‘값을 덜 줘도 되는’이라는 이미지를 내포하게 되었습니다. 안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열정에 대한 정당한 페이가 지불되는 세상을 위해, 저희는 저희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해보려고 합니다. 저희 뒷 세대에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하고, 우리는 아직,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시기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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