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세상을 바꾸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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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세상을 바꾸는 힘
  • 박현주
  • 승인 2010.09.23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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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박현주 / 인천서구도서관 열람봉사과장

                                                       
중구 율목동에 소재했던 인천시립도서관이 유일한 공공도서관이었던 1970년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인근 신흥초등학교를 다녔었다. 집이 도서관 근처라서 처음 공공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는 행복한 경험을 누릴 수 있었다. 책을 읽거나 빌려 보는 곳으로서의 도서관이 아니라, 자기공부를 하는 열람실 이용이 고작이었고, 그조차 초등학생 시절이니 한 시간 넘겨 집중하여 자리보전하고 앉아 있기가 쉽지 않은 시절이었다. 방과 후 도서관에 다닌다는 기분을 내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지금도 가끔 찾아 오르는 율목동 언덕길을 지나다 보면 그 때 기억이 1년 전 기억만큼이나 생생하다.

그 시절 공공도서관은 모든 시민들이 이용하는 공간이라기보다는 학생도서관에 더 가까웠다. 인천에 공공도서관다운 공공도서관이 건립되기 시작한 때는 1983년도부터다. 부평도서관과 인천중앙도서관을 시작으로 인천 전 지역에 공공도서관이 건립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도서관 건립은 더딘 듯하면서도 꾸준히 추진되어 왔고, 근래에 들어서는 자치구들이 앞다투어 반가움에 앞서 우려를 할 만큼 도서관 건립추진을 빠른 속도로 진행하고 있다.


지난 6월 미추홀도서관에서 열린 '책, 가슴으로 읽고 그림으로 남다展'.

지난 지방선거에서 전국 각 시·군·구 자치단체장 중에는 선거 전략으로 공공도서관에 대한 공약을 한 입후보자들이 유난히 많았다. 이는 공공도서관에 대한 지역민들의 요구가 증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반증일 터이다. 그런데 인천의 시·군·구 도서관 건립계획을 들여다 보면 도서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반가움과 함께 걱정이 앞선다.

인천시에 따르면 2013년까지 공공도서관 60개, 작은도서관 60개 건립을 목표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렇게 단기간에  많은 수의 도서관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 게 사실이다. 물론 도시개발에 따른 기부채납 방식의 도서관 건립을 포함하여 시·군·구의 도서관 인프라 확충계획이 집중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도서관 인프라가 늘어나는 것은 시민들의 도서관 접근성이 그만큼 좋아진다는 측면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도서관의 생성과 성장에 필요한 요소들이 충분히 검토되지 않고 무조건 하드웨어 인프라 확충에 몰입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면밀한 준비가 안 된 채 계량적인 목표만을 가지고 시작해서 섣불리 잘못된 결과를 낸 사업의 예를 인천시민들은 얼마나 많이 경험했던가. 도서관 건립에 드는 예산의 규모만 하더라도 그렇다. 신중하고 치밀한 계획 하에 중장기적인 도서관 건립과 운영계획을 수립하여야 한다. 


서구도서관에서는 '9월 독서의 달'을 맞아 지난 14일 '작가와의 만남' 행사를 열었다.

지식과 정보, 문화와 학습의 평등권을 시민 모두가 균형 있게 누릴 수 있도록 도서관이 공급되어야 한다. 그러나 인천시민을 위한 도서관 확충 계획이 첫 단추를 잘못 끼울 경우 다른 정책보다도 그 불편과 문제점은 오롯이 시민들 몫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인천시나 자치구가 전국 최하위라는 오명을 씻기 위해 평가의 잣대 때문에 도서관 인프라를 늘리는 일이라면 더욱 경계해야 한다. 시민을 위한 올바른 원칙과 소신을 갖고 도서관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여야 한다. 이제 도서관 수가 아니라 도서관의 질을 고민하고 수준을 높여야 한다.

지난 주 '인천시의 수봉·영종도서관 시 직영으로의 전환- 비영리법인 운영'에 대한 언론보도를 접하면서 인천시가 공공도서관 운영주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고민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한 국가의 공공도서관 정책이 '공무원 정원 제도'에 발목을 잡혀 민간위탁, 산하기관 위탁, 비영리법인 위탁 등 파행적 운영이 불가피한 상황에 대해 심각히 고민해 볼 일이다. 국민을 위한 정부, 시민을 위한 시정부가 제도와 정책 개선의 필요성을 당연히 알면서도 그것을 불합리한 정책 결정의 이유로 내세울 수밖에 없다면, 시민들은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정답을 알면서 불가피해서 문화재단 위탁이라는 오답을 택했고, 이제 시직영 법인 형식이라는 유사답을 제시할 수밖에 없는 인천시의 고충을 모르는 바 아니다. 정답을 알면서도 시의 의지만으로 선택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제 공공도서관에 대한 논의 수준을 높여 할 필요성을 느낀다.

이렇게 많은 수의 도서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인천시에는 타 시·도에는 있는 '‘도서관정책팀'이 없다. 지난 번 조직개편에도 반영되지 않았다. 또한 향후 40여 개 이상의 도서관 건립이 예정된 가운데 그에 대한 운영비와 인력 확충 방안, 운영 방법 등은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지 않다. 운영에 관한 사항을 검토하여 문제가 있다면 건립 계획의 재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인천시가 공공도서관 직영에 대한 의지를 표명하였다. 인천시민을 위한 공공도서관 정책의 방향 모색을 위해 깊은 고민과 노력을 쏟고 있음과 여러 과제 해결을 위한 심층적이고 다각적인 접근과 연구를 시도하고 있음을 안다. 그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른 길을 지향해야 하며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의 강구가 전제되어야 함이다.

시장만능주의와 무분별한 개발주의에 따른 정신적 피로감과 경제적·사회적 문제들로 고통을 겪고 있는 인천시민들에게 도서관을 통한 삶의 위안과 치유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이제 더 이상 인천의 '랜드마크'는 고층빌딩이 아니라, 관광지가 아니라, 마을마다 있는 도서관이었으면 하는 기대를 한다. '도서관, 세상을 바꾸는 힘'은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이미 주변의 공기처럼 우리로 하여금 문화를 호흡하며 살 수 있게끔 하는 풍요로운 토대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7월 수봉도서관에서 여름방학을 맞아 열린 독서교실 '책 속에 지구촌이 있어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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