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나 페이스북에 가입하지 않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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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나 페이스북에 가입하지 않는 까닭
  • 박병상
  • 승인 2010.09.27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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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 칼럼] 박병상 /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프로야구 정기리그가 잔여 일정을 마쳐가면서 지역 연고 팀의 성적이 실시간으로 궁금해진다. 막판까지 재미있게 꾸려가려는지 경기마다 엎치락뒤치락하는데, 저녁 무렵 집에 있다면 시청하며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지만 벗과 술잔을 기울일 때면 오리무중이다. 가끔 지하철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면 손안의 DMB로 시청하는 젊은이가 보인다. 다가가 물으면 일단 경계하다가 응원하는 팀이 같다는 걸 확인했는지 이내 웃으며 대답해준다. 이기고 있노라고.



지난 추석 연휴를 맞아 손안의 스마트폰이 길동무가 될 거라는 기사가 나왔다. 실시간으로 교통상황을 알려줄 뿐 아니라 고속도로변 휴게소와 식당의 별미도 소개해줄 테니 짜증내지 말고 다녀오라고 귀띔한다. 귀성할 일이 없으니 기사가 살갑게 다가오진 않았지만 그만큼 우리 사회에 스마트폰이 확산되었다는 뜻일 게다. 스마트폰의 유용성은 더 있을 것이다. 꽉 막힌 도로에서 별안간 아픈 이가 나와도 가까운 병원의 응급실로 안내해주니 안심해도 되거나, 연인과 잠시 떨어져 있더라도 고속버스 안에서 영상을 주고받으며 연인과 소곤댈 수 있겠지. 하지만 답답하다. 그 좁디좁은 화면에 눈과 귀를 고정할 뿐, 주위의 이웃과 소통을 한사코 거부하지 않던가. 그렇게 시간을 오래 보내면 눈은 괜찮을까. 귀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사회는 본디 어울려져야 자신도 이웃도 건강할 수 있는데.

어느새 핸드폰이 없으면 민폐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 인터넷 카페는 물론이고 세미나 참석 신청서를 제출하려 해도 핸드폰 번호가 없으면 안 되고, 택배도 대화도 불가능하다. 초등학생에서 은퇴한 노인까지, 이제 핸드폰이 없는 이와 함께 살아갈 수 없는 사회가 된 셈이다. 그뿐인가. 핸드폰이 시시때때로 요구하는 비밀번호는 한두 가지가 아닌데, 잊은 번호를 돌이키는 과정이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요즘 공기나 물처럼 필수재가 된 핸드폰, 사용료는 그에 상응하지 않을 만큼 아직 비싸다. 생존을 위해 손에 쥐어야한다면 핸드폰의 종류와 기능을 다양화해 가격 때문에 소외되는 이 없도록 배려해야 옳은 게 아닐까.

불행인가 다행인가, 요즘 유행하는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아직 모른다. 인터넷으로 사용할 수 있다지만 가입하지 않았다. 다양한 문자와 영상 소식을 개개인의 네트워크를 통하며 실시간으로 주고받는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아무래도 화면이 큰 스마트폰이라야 제격을 텐데, 아직 구입하지 않았다. 가입을 권유하는 다정한 친구는 많지만 아직 그럴 생각이 없다. 스마트폰도 구입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4년 넘게 탈 없이 사용하는 핸드폰이 있기 때문이지만 스마트폰의 필요성을 가슴으로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소식과 의견을 주고받자고 가입을 권했던 친구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의 유용성을 모르는 건 아니다. ‘4대강 사업’ 공사 현장에서 떼죽음한 민물고기를 공사업체가 은폐하려 할 때 실시간으로 그 현황을 알린 활동가는 퇴로를 막으며 취재를 방해하려는 공사업체의 압박까지 중계할 수 있었다. 4대강 사업 주체는 공사 중인 보 위에 올라 농성하던 활동가의 실시간 중계를 막으려 배터리 충전을 허용하지 않았다. 지역구 관리에 여념이 없는 정치인과 팬 관리에 신경써야하는 연예인은 물론이고 증권 시세에 민감한 투자가나 신속한 배송을 자랑하는 택배업자도 요긴할 것이다. 전교생에게 스마트폰을 나누어준 대학은 강의는 물론이고 교양의 폭을 넓히는데 사용할 거라 희망하고, 기업은 출장 중인 사원에게 긴급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알리고 화상회의를 소집할 것이다. 그렇듯 스마트폰은 사용자에게 도무지 쉴 틈을 주지 않을 모양이다.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여성의 얼굴만 보고 다짜고짜 만나자는 남성, 거북한 욕설을 보내며 반론을 펴는 행태는 당하는 이에게 어처구니없는 스트레스를 안기지만 약과에 불과하다. 별별 기능을 다 가진 손 안의 컴퓨터에 공개할 수 없는 정보가 많을 텐데, 해킹될 수 있다. 사적인 자료나 회사의 중요한 정보, 그리고 은행계좌들을 추적할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 자료를 복제해 빼돌리거나 왜곡할 수 있다. 지금도 핸드폰을 쥔 자의 위치를 엇비슷하게 추적하는 상황에서 스마트폰을 지리정보시스템(GPS)과 연계할 경우 의사와 아내는 환자와 남편의 위치와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겠지만, 그 정도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빅브라더는 예비 고객과 범죄자와 정적과 산업스파이와 빚쟁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손금 들여다보듯 점검하고 관리할 수 있다.

지금 열심히 복원 중인 남대문이 멀쩡했을 때였던가. 한 텔레비전 광고는 어처구니없었다. 남대문이 국보1호라는 버스 안내방송이 나오자 엄마 무릎에 앉은 꼬마가 “국보 2호가 뭐야?”하고 묻는 장면이 나왔는데, 그 순간 광고는 핸드폰 글자판을 얼른 두드려 국보2호를 알아내는 시민의 민첩한 모습을 보여주며 실시간 검색이 가능한 포털 사이트의 기능을 자랑하는 게 아닌가. 어떻게 겨우 말문이나 열 정도의 아이가 국보2호를 궁금해 할 수 있나. “국보가 뭐야?”하고 물어야 정상이 아닌가. 그건 그렇다 치고, 스마트폰은 국보2호 이상의 정보도 척척 제공한다고 자랑한다. 내장 카메라에 비치는 건물이나 거리를 전송하며 만날 장소를 확인할 뿐 아니라 상응하는 영어 단어를 말로 찾을 수 있단다. 모를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스마트폰의 그런 기능이 얼마나 필요할까. 더 좋은 스마트폰으로 바꾸기 전까지 과연 몇 번이나 사용할까.

신당동 맛집이 어디인지 친지나 선배에게 듣는 게 낫다. 내 입맛이 다른 이와 같지 않으므로 직접 찾아가 먹어보는 게 훨씬 확실하다. 스마트폰에 의존하는 분위기가 만연되면 텔레비전에 출연했다는 걸 대문마다 붙인 식당이 동네마다 수북한 것처럼 포털 사이트의 광고에 신경을 쓸 맛집이 늘어날 테고, 그만큼 맛도 특색을 잃을 것이다. 외국인에게 말하려 할 때 적당한 영어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스마트폰으로 단어를 묻는 자신이 더 초라하지 않을까. 능수능란한 외국어는 필요한 자가 스스로 노력해 연마해야 한다. 단어를 몰라 의사소통에 불편해도 일상에서 얼마든지 서로 친절할 수 있고 마음을 주고받으며 고마워할 수 있다. 실시간의 수많은 정보? 역시 거의 요긴하지 않다. 집에서 미리 책을 뒤지거나 인터넷을 살피면 대개 충분하다. 정보의 양보다 분석과 판단력이 더욱 중요하다. 오히려 쏟아지는 정보가 판단을 혼란스럽게 하지 않던가.

세상에는 무시하고 싶은 상식이 있는가 하면 모를 권리가 있다. 자신의 사주팔자와 건강상태도 모르고 지나는 게 편할 때가 많지 않은가. 남의 가족사나 재산변동 내력이 내 믿음과 우정과 사랑을 방해할 수 있다. 애인이나 식구가 내 위치를 시시콜콜 아는 것이 피곤한 경우가 많지 않은가. 궁금한 마음에서 신비스러움이 샘솟고, 소통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우정도 사랑도 깊어진다. 시시콜콜 알면 재미가 반감된다. 특별한 예외가 아니라면 내 몸 상태를 실시간으로 꼭 점검해야 하는 건 아니다. 위중한 환자는 나들이를 삼가는 게 옳을 것이다. 꽉 막히는 귀성이나 귀경길은 스마트폰도 제대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 많은 이가 같은 교통 정보에 의존하다보면 엉뚱한 결과를 빚을 수 있다. 공연히 뚫린 길 찾다 낭패를 보기보다 그저 그 시간 마음 편히 즐기는 게 낫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책을 읽거나 한숨 자는 것도 좋겠지.


대학생에게 리포트 과제가 실시간으로 나가고 회사원에게 시시때때로 보고서 제출이 요구된다면 한시도 긴장을 풀 수 없는 인생들은 피로와 스트레스에 젖어 그만 창의력과 판단력이 흐려질 것이다. 쉴 시간을 빼앗기는 구성원은 결코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라고, 궁하면 통하는 방법이 있을지 모른다. 리포트를 요구하는 교수나 보고서를 독촉하는 상사도 쉬어야 할 때 쉬고 싶은 인생임에 틀림없다. 얼굴을 마주보지 않고 처리하는 일. 신뢰하기 어려운 가짜와 엉터리가 판칠 것이다. 하루 한두 차례 열어보는 이메일에 스팸이 가득하듯, 없어도 그만이거나 없는 게 더 나을 정보들이 눈과 귀를 더욱 성가시게 하는 세상이다. 실시간 영상이 무차별로 전송되면 어떤 세상이 연출될까. 어른과 이웃과 친구의 충고와 친절과 우정을 귀찮거나 불필요하게 만드는 가상공간에서 너나 할 것 없이 군중 속의 고독을 넘어 외톨이가 될까 두렵다.

모르는 이가 보내는 트위터나 페이스북의 무책임한 문자와 영상은 그냥 넘어간다고 치자. 잘 아는 이, 잘 아는 이와 아주 친하다는 이가 보낸다면 모른 체하기 어렵다. 시도 때도 없이 보챈다면 회의 중이든, 강의 중이든, 공연을 보는 중이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답을 했을 때 반론이 쏟아진다면 낭패다. 예를 들어 수돗물 불소화에 대한 토론이 벌어진다면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닐 것이다. 백자 남짓한 공간에 어떻게 수돗물 불소화가 위험한지 논리적으로 이야기할 것인가. 잘못된 상식이 뇌리를 지배하는 이웃을 짧은 글로 설득하기 어렵지 않은가. 4대강 사업이 후손에게 필연적으로 안길 재앙도, 유전자조작 농산물로 인한 생태적 위험성도 여러 사람에게 한두 마디로 선동하듯 이해시킬 수 없다. 질의마다 서툴게 문자를 두드리자니 피곤하다. 그러저러한 이유로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가입하지 않으니 다정한 친구와 선배와 후배들이 이해해주길 간곡히 바랄 따름이다. 얼굴 마주보며 대화하는 기쁨, 그를 위한 설렘을 놓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면 시대에 뒤쳐지는 걸까.

최근 정부에서 전자 주민등록증을 발급하겠다고 나섰다. 힘겨운 반대운동으로 힙겹게 백지화한 지 십 수 년 만이다. 어떤 언론은 정부의 말을 전폭 수용해 마치 개인정보를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정책인 듯 보도했지만, 그런가. 그 기자는 역사나 문화에 대한 소명의식이 없거나 권력에 아첨했을 가능성이 높겠다. 주민등록증 겉면 대신 내장 칩에 수록할 정보는 무엇일까. 주소와 이름뿐일까. 십 수 년 전, 시민의 편의를 내세우며 인감정보, 보험과 은행 거래 정보들을 담으려 했다. 행정전산망과 연결한다면 전과도 조회할 수 있을 텐데 그런 정보들은 오직 빅브라더나 그의 허락을 받은 자만이 열람, 분류할 수 있으니 무시무시한 감시사회를 상상하게 만든다. 은밀한 정보가 다양하게 가진 스마트폰 역시 빅브라더만 접근하는 중앙컴퓨터의 지배를 받는다. 그러므로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가입하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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