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스트레스'가 만드는 소비 트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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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스트레스'가 만드는 소비 트렌드
  • 안정환
  • 승인 2017.08.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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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안정환 / 연세대학교 의공학부
 

 전역 두 달이 넘어갈 즈음, 친구들과 카톡을 하다가 여행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는 제주도 2박3일 여행 계획을 두고 주먹구구식으로 토론을 벌였다. 그러다 한 녀석이 요즘 여친과 싸워서 ‘시발비용’이 들었다며 여행은 힘들다고 난감해 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비용’이라는 단어에 욕을 앞에 붙인 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다른 뜻이 있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면 안 썼을 충동적 비용’.


충동구매와 뜻이 비슷해 보이지만 젊은이들의 새로운 삶의 형태인 ‘YOLO(You Only Live once)’와 상반되어 보이기도 한다. 빠르게 변하는 세태에 발맞춰 뜻도 모호하고 의미도 헷갈리는 신조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다. 이에 질세라 젊은이들의 소비문화 또한 여러 형태로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최근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카카오톡에 올린 지인들의 일상을 보면 자신을 위해, 혹은 이런저런 이유로 자신만의 독특한 제품들을 구입하고 그것을 sns상에 게시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힘들어도 자신만의 것을 갖는데 과감한 소비를 하는 것은 뭐라할 수 없지만 한편으로는 혼자를 강요당하는 사회에서 어쩌면 스스로 존재감을 증명하는 수단일 수도 있으리라.


그들은 보통 두 분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트렌드에 민감한 몇몇 청년들이 YOLO를 지향하며 자신을 위하거나 보다 실용적인 부분을 위해 큰맘 먹고 지르는 소비. 다른 하나는 실용성이나 필요성을 따지지 않고 단순히 현재의 쾌락과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내지르는 소비다. 이제는 물질만능주의를 넘어(어쩌면 물질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일 수도 있지만) 개인의 행복 또한 중시하는 시대이기에 어느 쪽에 옳고 그름의 잣대를 세울 순 없겠지만 두 소비 트렌드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스트레스가 만들어 낸 새로운 소비 트렌드라는 것이다.


물론 과거에도 지금까지 이어온 이와 비슷한 스트레스로 인한 소비는 계속되어 왔다. 흔히 군 입대 전 청년들이 다시는 사회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에 자신과 지인을 위해 아낌없이 돈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한 때일 뿐 이를 두고 풍조나 경향이란 단어를 붙이진 않는다. 그러나, 친구가 들인 ‘시발비용’이나 ‘탕진잼(소소하게 낭비하는 재미)’은 복잡한 사회구조가 만들어 낸 스트레스 비용으로 길게 앞날을 내다볼 수 없게 만든 구조적 박탈감이 먼저 다가온다. 단순한 개인의 문제 범위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젊은이들의 새로운 소비 형태를 만들어내지는 않기 때문이다. 어떤 스트레스가 우리의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만든 걸까.


먼저 우리가 받는 스트레스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대표적으로 학업·가족·취업·연애·돈에 대한 고민이 있다. 그리고 비극적이게도 이들의 바탕에는 모두 좌절과 포기와 절망이 어느 정도 내포되어 있다. 통계청 고용지표 통계자료에 따르면 전체 실업률 4.2%중에서 청년 실업률이 11.2%로 심각한 수준이며 전년대비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취업이나 내 집 마련, 학자금 대출 상환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현실은 미래를 포기하고 현재의 쾌락에 집중하게 만든다. 개인의 힘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사회의 흐름이 우리를 미래보다 당장의 쾌락으로 이끄는 것이다. 따라서 암울한 미래를 잊고 절망감에 현실기피를 하고자 생긴 ‘시발비용’, ‘탕진잼’같은 소비풍조는 단순한 소비 트렌드로 인식할 문제가 아니라 그 이면의 정신적인 부분과 현실을 타개할 대안에 중점을 두고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스펙을 쌓아도 취업은 안 되고 돈을 모아도 내 집은커녕 대출도 갚기 버거운 요즘 청춘들의 숨 가쁜 현실. 높은 사회 진출의 벽에 절망해 자조 섞인 자위로 행해지는 충동적 시발소비. 지구촌 경제 협력을 이끄는 OECD 국가인데다 당당한 G20의 일원인 대한민국을 앞으로 이끌어 갈 청년들의 서글픈 현실은 시발비용만큼 모순적이다. 지난 20일 대국민 국정 보고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청년 일자리를 반드시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 100일 동안 보여준 모습처럼 행동하는 양심으로 밝은 내일을 약속해줄 개혁안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적어도 공통의 스트레스로 하나의 트렌드가 만들어지는 웃픈 상황이 연출되지 않기를, 그래도 꿈꿀 수 있어 좋은 청춘임을 자각하는 그런 날들이 오기를 새로운 대한민국에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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