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조 -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그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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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조 -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그 무엇
  • 김대환
  • 승인 2010.09.24 1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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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이야기] 김대환 / 인천야생조류연구회 회장

전화가 왔다. 아직도 그 녀석이 그곳에서 배회를 하고 있다는 전화다.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을 했다. 하늘도 보고 컴퓨터를 틀어서 날씨를 확인했다. 확신이 서질 않는다.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가 전화를 걸었다.

“어이 김 선생, 김 선생이 먼저 내려가 봐. 그리고 상황 좀 알려줘” “그래, 대충 어딘지는 알지?” “그래, 그 녀석이 상당히 신중해서 좀처럼 나오질 않는데….” “응” “그렇지. 그러니까 확실하게 잠복을 하라고…. 위장도 하고”

누가 이런 전화 통화 내용을 들으면 우리들을 형사로 알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형사가 아닙니다. 우리도 체포라는 용어를 쓰지만 그 대상은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새를 보는 사람들입니다.

2005년 겨울, 군산에서 엄청난 소식이 올라왔습니다. 흰눈썹뜸부기가 나타난 것입니다. 군산에 있는 회원과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회원이 정확한 장소를 알려왔습니다. 또 그 녀석의 세밀한 행동과 특이 사항까지 확인했습니다. 다시 서산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서산에 있는 회원과 함께 가기 위해서입니다. 전화로 시간을 정하고 차에 올라 탔습니다. 지금부터 달리면 군산까지 2시간30분이면 들어갑니다. 그때쯤이면 물때가 적당할 것입니다. 날씨도 좋고 시간에 따른 태양의 위치도 좋았습니다. 자, 그럼 출발이다.

중간에 휴게소가 6개나 있지만 어느 곳도 들리지 않고 바로 군산으로 달려갔습니다. 가르쳐준 장소로 조심스럽게 접근을 했습니다. 전화로 많은 내용을 들었지만 현장에서의 감각이 매우 중요합니다.

주변의 소음, 도로의 위치, 농경지, 하천, 갈대밭, 산의 위치를 면밀히 살피고 도감을 뒤져 이 녀석의 생태적 특성을 주의 깊게 읽어보았습니다.

‘그래 이 녀석은 갈대를 좋아하는 녀석인 게야. 갈대가 어디 있지? 음, 저기구만. 먹이는 뭘 먹나? 오라. 갯지렁이구만. 그렇다면 물이 차 있는 지금은 갈대 밖으로 나오지 않겠군! 아직 조금 더 기다려야겠군. 시간이 있으니 그 동안 정확한 촬영 위치를 정해야겠구나. 어디가 좋을까? 그래 태양의 위치로 봐서 해가 저쪽으로 넘어가니까 난 여기쯤 있는 것이 좋을 게야. 시간이 지나 해가 더 진다 하더라도 결국 이 위치라면 난 언제나 해를 등지고 있는 것이지. 푸헐헐. 넌 오늘 딱 걸렸어.’
 
이런 야무진 상상을 하면서 장비를 설치하고 잠복에 들어갔습니다.

[흰눈썹뜸부기]

잠복한지 30분쯤, 너무 추웠습니다. 손가락이 얼고 얼굴에 감각이 없었습니다. 태양의 위치로는 최적의 장소였지만 바람을 정면으로 받는 위치이고 현재 기온이 영하 10도에 육박했습니다. 이 정도 온도라면 현재 상황에서 체감온도는 영하 20도 이상일 것입니다.

어떻게 하지? 뭔가 방법이 없을까? 고민을 하다가 차에 올라서 촬영할 위치에 주차를 했습니다. 트렁크를 열고 트렁크 안에 있는 물건을 모두 뒷좌석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트렁크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삼각대를 조정하여 카메라의 높이를 높이고 트렁크 안에 들어가 있으니 그래도 아까보다는 좀 나아졌습니다. 그렇다고 시동을 킬 수도 없었습니다. 그 소리에 놀라 이 녀석이 나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기다린지 1시간이 넘었습니다. 언제나 나올까? 기다림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새 -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미치게 하는가?]

고정된 자세로 좁은 트렁크 안에 있으려니 다리에 쥐가 났습니다. 그렇다고 다리를 펼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참지 못하고 차에서 내리려는 순간 갈대밭 밑으로 난생 처음 보는 새가 한 마리 살금살금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동작 그만! 아주 천천히 다시 자리를 잡고 카메라에 손이 갔습니다. 서서히 카메라를 돌려 파인더에서 녀석을 찾았습니다. 살며시 반셧터를 누르고 핀이 맞는 순간 심장이 멈추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바로 너구나. 그래 너였구나’ 그리곤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그 느낌이란.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낚시에서 대어를 낚을 때의 느낌이 이와 비슷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녀석은 몇 번을 갈대밭과 갯벌을 들락거리면서 나에게 기회를 주었습니다.

얼마 후 서산에서 동료가 왔습니다. 설명할 시간도 없이 다시 나타난 녀석으로 인해 둘은 무아지경에 빠지게 되었고 충분한 사진을 찍은 후 조용히 그곳을 빠져나왔습니다. 추위로 인해 완전히 상기되어 있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손바닥을 마주쳤습니다.

[탐조 - 경험해 보지 않고는 그 놀라움을 알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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