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침의 광장, 부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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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침의 광장, 부평동
  • 유광식
  • 승인 2017.09.08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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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유광식 / 사진작가

▲ 유광식_부평지하상가 주 통로구간 보수공사, 시민들이 먼지통로를 지나고 있다._2017


서울 영등포에서 부천을 지나고 부평을 거쳐 계양까지 가는 88번 버스가 있다. 이 버스의 내력은 부평에 사는 사람이라면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잘 알 것이다. 하루 승차인원이 4만 명이 넘을 정도로 전국 노선 중 최대다. 88번 버스는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고단한 사람들을 싣고 북쪽으로 오른다. 사실 오른다고 하는 것보다는 철마산이 남쪽에 위치하니 내려간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부평동으로 내려가 보았다. 누구나 부평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부평역 지하개찰구 분수대 앞에서 만난 적이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부평의 시작점은 바로 이곳에서 시작되어 지상으로 오르는 것이다. 오른다는 표현이 여기서는 성립된다. 전국 최대상점을 자랑하는 부평지하상가지구는 어두운 미로와 같아서 지도에 강한 나로서도 친구를 이끌고 걸어가기엔 지도력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오히려 부평출신, 활동자만이 자랑인 마냥 이리저리 공간을 휘저을 수 있다. 수십 개의 출입구를 알고 나면 멀미부터 앞선다. 최근 구간공사가 한창인데, 추석 전 재개장을 통해 땅 속의 진주마냥 반짝반짝 할 것이다. 



▲ 유광식_초봄,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시민들_2016


지상 또한 어지러운 형국이 아닐 수 없다. 고층빌딩숲 사이로 젊은 사람들의 행적이 많고, 길들은 방사형으로 뻗어 어디가 어딘지 모를 일이긴 하다. 그래도 사람 사는 공간에 질서는 그어져 있기에 반복적인 숙지만이 살 길이다. 젊은 계층이 많은 부평이다. 그만큼 움직임이 활발하고 북적북적하다. 많은 학원들이 눈에 띄고, 시장도 많고, 학생도 많고, 또한 두통도 많다. 그 사이사이 오래된 가게들은 내 이목을 집중시키지만, 오래된 서점(부평문고, 씽크빅문고 등)의 참고서 위주로 놓인 서가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구)한겨레문고를 추억하는 이들도 있다. 혼란스러움 가운데 부평구청까지 쭉 뻗은 부평대로와 장제로는 부평의 두 동맥이고, 가운데 시장들은 심장과도 같다. 주변으로 학교와 주택가들이 혈관을 이루어 부평의 실체를 구성하며 그 움직임을 만들고 있다. 작년, 서구에는 지하철이 개통되어 이동이 편리해졌지만, 원적산에 가로막힌 부평에는 잘 방문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도 부평을 주안보다도 자주 들락거리는 것을 보면 부평으로의 교통집중도가 크긴 한가보다. 부평역은 서울에서 인천으로 진입하는 첫 관문이기도 하니 말이다. 얼마 전 급행열차로도 모자라 초급행열차까지 편성되면서 부평역은 생활을 중대히 직조하듯이 이전보다 짜임새가 두터워졌다. 



▲ 유광식_부평역 주변 빠라~바라~밤! ‘별이 빛나는 부평의 밤에 고기를 잡아bar!'라며 시각은 상당히 말초적이다._2017



▲ 유광식_부평문화의거리 내 어느 상점 옆 흡연포인트?_2017


부평동이 중앙의 시각적인 인상이 강한 것도 있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이곳에 억압과 역경의 시간들도 켜켜이 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인천은 서쪽부근의 부평동아아파트 너머로 부평미군기지 터의 반환을 기다리고 있다. 그에 앞서 세월만큼의 환경오염을 잘 해결해야 할 것이다. 이곳은 일제강점과 미군기지의 세월이 혼재되어 있다. 한편 굴포천의 원류 중의 하나인 원통천은 복개구간을 걷어내는 작업을 기다리고 있다. 작은 물줄기라도 소중한데, 더럽히지 말며 가재가 살만한 환경이 되었으면 한다. 환경과 더불어 반환부지이용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다. 미군의 문화가 큰 영향이었을 음악산업이 다시 돌아오는 그 땅 위에서 꽃핀다는 게 적지 않은 의미가 될 것 같다. 아무쪼록 모방을 앞세우기보다 창작의 성격이었으면 좋겠단 생각이다. 


▲ 유광식_부평동아아파트 앞 복개천도로(백화점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_2016


▲ 유광식_한가한 풍경의 대로 안쪽 주택가_2017


한편 일본 옛)미쓰비시 회사에 강제징용을 당한 노동자들의 삶터 또한 부평의 아픈 역사 내에  있다. 마을도 ‘삼릉’이라는 이름하에 허름해진 줄사택에서 줄줄이 아픔을 껴안고 사라지고 있다. 지난 달 14일, 이를 기록하고 기억하고자 부평공원 내 강제징용노동자상을 시민의 성금으로 제막하기도 했다. 그 옆에는 위안부 강제동원을 규탄하는 인천 평화의 소녀상이 나란히 자리한다. 또한 부평구청 옆 신트리공원에 가면 노동자 시인이었던 고 ‘박영근’ 시인의 비도 있다. 우리에게는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라는 노래가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부평이 음악, 노동, 경제 등으로 오늘을 살고 있음은 퍽 복잡할 것도 같다. 



▲ 유광식_부평공원 내 강제징용노동자상(2017.8)과 인천 평화의소녀상(2016.10). 의미는 두말할 나위 없지만 단의 높이나 두 조각상의 간격 등 배려되지 않은 조화는 다소 불편하다._2017


▲ 유광식_부평동 삼릉, 줄사택 골목 내 어느 차단펜스. 재개발공식?_2017


부평동은 처음 ‘에잇! 모르겠다.’라지만 알면 알수록 리듬감이 풍부하다. 그러한 흥은 과거 농경사회의 대잔치였던 풍물에서도 찾을 수 있다. 올해 21회를 맞는 부평풍물대축제가 “얼쑤! 흥해라! 인천, 부평!”이라는 주제로 이번 달 열린다. 대기와 토양에 감사하고 협동하는 사람들의 안녕과 평온을 위했던 풍물놀이가 전국단위 행사가 된 것은 고층의 빌딩숲이 전부가 아니라는 반증이다. 대로에 털썩 주저앉아 잔치를 나누는 사람들의 뜨거운 활기가 과거 오욕의 시간들을 위로하고 현재의 삶을 긍정으로 견인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 믿는다. 인적이 드문 부평역 계단참에서 학생시절 3천원을 뺏긴 어떤 사람조차도 결국엔 아낄 수밖에 없는 부평이다. 나침의 광장, 부평동! 나침은 이 가을 또 어디를 향할까?



▲ 유광식_6월민주항쟁 30주년 인천시민대회(행진) 모습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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