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만날 수 있는 '이주노동자 삶' 이야기책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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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만날 수 있는 '이주노동자 삶' 이야기책이기를
  • 최종규
  • 승인 2010.09.24 08: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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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이란주가 쓴 《아빠, 제발 잡히지 마》

― 아빠, 제발 잡히지 마 (이란주 씀, 삶이보이는창 펴냄, 2009.5.1./1만 원)

지난 2009년 5월 8일에 장만해서 이해 5월 21일에 다 읽은 《아빠, 제발 잡히지 마》인데, 한 해가 지나고 넉 달이 지나도록 이 책을 읽으며 무엇을 느끼고 생각했는가를 갈무리하지 못한다. 글쓴이 이란주 님 첫 책 《말해요 찬드라》 때문일까. 생각해 보면, 몇 해 앞서 《말해요 찬드라》 느낌글을 쓸 때에도 책을 다 읽고 곧바로 쓰지는 못했다. 한 번 쓴 느낌글을 나중에 크게 고쳐서 다시 썼다. 이 책을 놓고 나 스스로 삭이며 되뇔 대목이 많아 아직 느낌글 하나로 실타래를 풀기 어려울 수 있다. 아무래도 이주노동자 삶을 더 깊이 헤아리지 못하는 내 삶이기에 《아빠, 제발 잡히지 마》에 깃든 이야기를 섣불리 풀어내지 못한달 수 있다.

“인천 부천 사는 사람들은 늘 낡은 전철에, 늘 많은 사람에 시달려야 하니 도대체 무슨 죈지 모르겠다(183쪽).”는 대목에 밑줄을 긋고 한참 싱긋 웃으며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글을 쓰면서 푸념을 하는 글쟁이(또는 활동가)는 생각 밖에 꽤 드물다. 인천이나 부천에 제 삶터가 있어도 이렇게 못 쓸 뿐더러, 서울에 제 삶터가 있는 사람은 도무지 모르는 이야기이다. 서울이나 부산에 제 삶터가 있는 사람은 이런 대목을 어떻게 받아들이려나. 그래도 부천은 인천보다 훨씬 낫다. 부천은 인천보다 서울이 가까울 뿐더러 인천처럼 어마어마하게 크고 많은 공장들로 산업단지가 이루어져 있지 않다. 인천은 제국주의 일본이 이 나라를 다스릴 때부터 일본땅하고 경성에 물건을 올려바치는 공장터였다. 서울로 잇는 철길과 찻길을 가장 먼저 뚫은 데가 바로 인천인 까닭을 깊이 살피는 사람이란 아주 드물다. 강원도 산골짜기 군대에서 썩어 본 사람 가운데 몇몇은 알 텐데, 양구 산골짜기에서 휴가를 나오며 받는 ‘휴가비(그래 봤자 집으로 가는 데에 드는 버스삯일 뿐이지만)’는 인천보다 부천을 더 높게 쳐 주었다. 부천은 서울보다 가깝고 인천이 서울보다 먼 데에도 인천은 휴가급지가 서울과 같이 3급이었고 부천은 2급이었다. 부산이나 대구나 광주는 1급지였다. 1급지이면 휴가비가 3만 얼마였고 2급지이면 2만 얼마, 3급지이면 1만 얼마였다. 인천으로 가자면 서울로 기차나 버스를 타고 들어가서 전철로 갈아탄 다음 들어가야 하니까 부천보다 멀면 멀지 가까울 수 없다. 이를 놓고 따지니까 윗사람(소대장하고 중대장하고 행정보급관)이란 이들이 하는 말, “인천은 직할시이고 부천은 경기도잖아?”

“중동이니 상동이니 하는, 같은 부천에 있는 거대한 아파트 단지에는 흔하디흔한 것이 공원이요 분수다. 그러나 중동과 상동에서 별로 멀지도 않은 낡은 동네 도당동에는 쉼터 한 자락 없이 빽빽하여 도무지 숨 돌릴 자리가 없다(108쪽).”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글쟁이(또는 활동가)는 몇 사람 꼽을 수 있을까. 모두들 경부운하나 4대강에 푹 빠져 있는 터에, 내 살림터나 내 고향동네에 깃든 말썽거리와 고름을 들여다보며 땀흘리는 글쟁이(또는 활동가)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서울에서 큼지막하게 촛불집회를 한다고 외치며 서울로 모이기만 하면 일이 잘 풀릴까. 서울에서 꼭 큼지막하게 뭔가를 해야 하는가. 서울에서 뭔가를 큼지막하게 할 터이니 다들 모이라 한다면 사람들이 서울로 오는 데에 드는 찻삯은 누가 댈까. 더구나 사람들이 서울로 모일 때에 걸어서 오겠는가. 하나같이 버스나 기차나 자가용을 탄다. 경부운하이든 4대강이든, 또 국가보안법이든 한미자유무역협정이든, 이밖에 숱한 골칫거리이든, 이런저런 아픔과 생채기를 풀자고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4대강 사업을 막자는 뜻은 무엇일까.

지난 2009년 5월 21일에 《아빠, 제발 잡히지 마》를 다 읽으며 책에 몇 가지 이야기를 끄적였다. 먼저 책 속종이에는 ‘땀으로 쓴 책은 다르다. 온몸 부대끼며 오래도록 껴안고 땀으로 쓴 책은 다르다. 땀없는 사람을 탓하거나 나무랄 까닭이 있겠나. 낮거나 얕은 그릇이라면, 그러려니 하거나 해야지.’ 하고 끄적였다. 책 안쪽에는 5월 13일에 끄적인 이야기가 하나 보인다. ‘땅에 뿌리박은 사람, 땅을 보살피는 사람, 땀흘려 일하는 사람, 사랑으로 손잡는 사람, 믿고 어깨동무하는 사람, 모두모두 한국땅에서는 바보.’

이란주 님이 할 일은 무척 많고 몹시 바쁜 줄 안다. 이런 가운데 바지런히 글을 써서 이주노동자 삶을 두루 알리거나 나눈다. 가만히 보면 나도 내 삶이 참 빠듯하고 바쁘다. 아이 하나랑 아픈 살붙이 하나랑 복닥이며 보내는 삶이란 얼마나 빠듯하고 바쁜지. 마감에 쫓겨 얼른 보내 주어야 하는 글이 아니라면, 이제는 아이가 깨어 있는 동안에는 글을 쓸 겨를을 내지 못한다(제대로 말하자면 아이가 깨어 있는 동안에는 책을 읽을 틈조차 낼 수 없다). 집식구 모두 잠든 깊은 새벽에 홀로 부시시 일어나 신나게 한꺼번에 몰아서 쓸 뿐이다(제대로 말하자면 밤에는 건넌방에서 불을 켜며 책을 읽기도 어렵다). 여느 때에는 ‘잘 하지 못하며 잘 다스리지도 못하는’ 집안일을 붙잡느라 코가 빠진다. 아이 하나일 때에 이런데 아이가 둘이 되면 어떻게 바뀔까. 형과 나를 키운 어머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아이 셋이나 너덧이나 대여섯이나 ……를 키웠거나 키우는 수많은 어머님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까, 어디 먼 나라 이야기를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나 스스로 내 삶을 들여다보기만 하여도 이주노동자로 이 땅에 들어온 사람들 삶을 읽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살아가려는 이 땅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내 삶과 내 어머니 삶과 내 어버이 삶과 내 이웃 삶을 곰곰이 돌아볼 사람은 어느 만큼 될까.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고, 집에서 가르치지 못하니, 따로 배우지 않아도 좋은 우리 삶인가. 학교에서 가르치는 대로 배우고, 집에서 이르는 대로 받아들이며, 딱히 돌아보지 않아도 괜찮은 우리 삶인가.

얼마 앞서 장정일 님 독서일기 한 권이 새로 나왔다. 1994년부터 장정일 님 독서일기가 띄엄띄엄 나오지 않았느냐 싶은데, 이란주 님이 쓰는 ‘이주노동자 삶’ 이야기 또한 띄엄띄엄일지라도 더 자주 나올 수 있으면 좋겠다. 바란다면 해마다 한 권씩 이주노동자 삶 이야기책이 우리 누리에 나온다면 기쁘겠다. 2003년에는 찬드라한테 말하라 했고 2009년에는 어린 친구 샤프라를 만났으니, 2010년에는 또다른 누군가와 사귄 삶을 풀어낼 수 있으면 반갑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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