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수 있는 변화의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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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수 있는 변화의 시간들
  • 강영희
  • 승인 2017.09.21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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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 통신 9] 오래된 마을의 풍경 3


'배다리, 오래된 마을의 풍경'이라는 제목으로 세번째 꼭지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오래된 마을에 그저 십 수년 오고 간 기억속에서 추스려낸 기억들와 그간의 변화들을 스케치하고 있다. 

내가 살고있는 부평의 변화는 말할 수 없이 빨라 간단히 추스리기조차 쉽지 않다. 하지만 배다리 10여 년의 변화는 그럭저럭 그 공간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어낼 수 있다. 그리고 얼마든지 그 기록들을 계속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심지어 그 역사들은 계속 새로운 기억들과 만나 풍성해진다.

배다리뿐 아니라 송현동 송림동 등 동구는 인천의 오래된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빠르게 변하는 도시의 시간 가운데 이 오래된 마을은 그래도 그 기록을 차곡차곡 쌓아갈 만 하다. 그렇게 기억할 수 있는 변화의 속도를 가진 곳이 도시가 얼마나 될까? 

눈부신 가을 한가득 펼쳐시는 이야기를 계속 해보려 하는데 인천시며 동구 등 정치와 행정이 자꾸 일상을 헤집어놓고, 이웃들의 삶을 괴롭힌다.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는 행보를 하며 자신들을 믿으라니 참 답답할 뿐이다. 그런 이웃과 내 마음을 뚫어주는 건 이 녹음이 깊어진 마을 공원과 가을 하늘의 청명함 그리고 "힘내라!"는 지인들의 격려다. 



@2017년 9월 15일 배다리 생태공원과 텃밭이 있는 풍경. 코스모스와 해바라기, 그리고 주민들이 가꾼 꽃들이 가득하다.
 


@2009년 6월 24일 창영초교 정문 고갯길을 너머의 모습.



마을 골목길 이름들이 서해대로 **길로 바뀌었다.
 

창영초등학교 정문을 지나는 고갯길을 넘어가면 멀리 ‘수도국산 달동네’였던 언덕 위에 지금은 솔빛주공 아파트가 우뚝 서있다. 그 아래로 송림초등학교가 보이고, 학교 앞 송림로 주변 가게들이 보인다. 철책으로 막혔던 곳은 텃밭이 되어 구청에서 고구마를 심어 어려운 분들께 나누기도 했는데 이제는 모델하우스가 서 있다. 고갯길 아래로 몇 채의 집 끄트머리에 쌀집에 구멍가게를 하는 충인상회가 있다. 금곡안길이라 불렸던 길은 서해대로 O번길이되었다.

충인상회 옆에 3층짜리 집이 있었는데 이 자리에 새 집이 생겼다. 2006년 도원역 인근에 문화공간을 마련할 때부터 나무를 주문해 쓰면서 인연을 맺은 송림오거리 인근 동우목재를 운영하는 성룡형이 충인상회 옆에 터를 마련하고 낙타사막 홍희형에 도움을 받아 멋진 나무집을 지었다. 늦은 여름비로 두 번이나 이사를 미루고 난 뒤 8월 말에야 짐을 옮겨 자리를 잡았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골목에서 들려와 퍼뜩 놀라면서도 반가웠다.



@2017년 9월 13일. 새 집을 짓고, 새 이웃이 들어오고 있다. 자연스럽게 변한다는 건 그런 게 아닐지..

 

충인상회 벽화는 오래된 벽의 문제로 다시 벗겨지기 시작해 걱정스러웠는데 초록색 페인트로 대략 칠해놨지만 더 이상 오래 가기는 어려울 수 있다. 시간이라는 게 그렇지 싶기는 해도 마을을 풍성하게 하는 기분 좋은 그림이었기에 한 번 손상 되었을때 추가로 보수를 하고 새로 그렸지만 워낙 오래된 건물에 외벽수리에 한계가 있어 더이상 보수가 어려울 수 있다. 

 
@2014년 5월 26일



소녀는 엄마가 되어 이웃이 되었다
 

2005-6년에 당시 반지하가 아벨전시관이었던 지금의 스페이스 빔 2층에서 공부방 청소년 대상의 인문학 수업을 했고, 도원역 인근에 그 수업을 이어가는 공간을 만들어 때때로 그곳에서 활동했다. 그때 만났던 태권소녀 목화는 지난해 아이 하나를 데리고 가족들과 함께 창영동 골목길 안의 비밀화원 인근으로 이사 왔다. 태권도 3단인 그녀는 너무 낮은 보수 때문에 사범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돌보며 이런저런 알바를 하며 지냈는데 지난 달에 둘째를 낳아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몸조리 하려니 하고 들러보지 못하고 있는데 무척 궁금하다.
 

@2011년 5월 23일 도장에 걸어둘 사범 사진을 뽑아달라고 해서 가지고 온 사진.












@2016년 12월 29일 아이를 데리고 마을을 산책하고 있는 목화는 이제 두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이모네 주먹밥집'이 새로 자리 잡은 집 주인 할머니는 바지런히 텃밭을 오고 가신다. 지난해 가파른 계단에서 굴러 요양원에 계셨던 할아버지께서는 초여름 돌아가셨다는 소리를 들었다. 할머니의 그 작고 귀여운 손녀는 어느새 초등학생이다.

이 공간은 떡볶기 집이었다가 선물가게로 바뀌었다가 동네책방으로 다시 예술가의 창작공간이었다가, 에어컨 설비업자의 사무실이었다가 주먹밥집이 되는 등 부침이 많은 공간이기도 하다.

 
@2011년 1월 21일. 동네책방 <사각공간>이 있던 자리는 이모네주먹밥이 이사왔다.



요즘은 헌 집이 새 집이 되어도 그 멋을 담아낼 줄 안다

1950년에 문을 열었다는 ‘이십세기약방’은 도매약방으로 꽤 유명했다고 한다. 지난 해까지 2층과 안채는 비어있었고, 1층에 '사루비아'라는 금속공방이 있었는데 계약기간이 남았는데도 나가라고 해서 비어버렸다. 혹시 헐어버리는 게 아닌가?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주인이기도한 이십세기약방 장남이 직접 이 공간을 리모델링해서 ‘초록한의원’을 열었다. 기존에 은은한 민트(연청록)색의 타일이 인상 깊었고, 안채 쪽으로 붉은 벽돌건물이 꽤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원래의 창살, 벽돌, 문이며 건물골조와 틀도 살릴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살려서 멋지게 살려냈다. 괜히 내 어깨가 펴질 정도로 멋지다.


  








@2017년 5월 26일








 
 @2017년 5월 26일 _ 붉은 벽돌 2층집은 사라지고 주차장이 생겼는데 그 뒤로도 멋진 옛집이 드러났다.
 @맛있는 점심식사를 준비해주던 초록집은 문을 닫았다.
 @다소 엉망으로 관리되지 않던 초록집 옆 낡고 오래된 옛집이 새 단장을 하고 골동품점을 열꺼라고 했다.





금곡동 쪽엔 큰 변화는 없다. 다만 동구청 가는 길에 두부요리 전문점 초록집이 문을 닫게 됐는데 이유는 들은 바 없어 아쉽다. 좋은 친구와의 추억이 있어서 더욱 아쉽다. 초록집 옆 오래된 낡은 가게와 집이 고쳐지고 있었는데 골동품점을 열거라고 했다. 그 집 주인 아주머니는 부평시장 로터리지하상가에서 30여년 가까이 상점을 하셨는데 빈 점포를 청년창업공간으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추진한 분이라고 하시며 동구에서도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싶다는 마음을 펼치시기도 하셨다. 

1926년 11월부터 90년간 자리를 지켰던 우체국은 이용자가 줄었다는 이유로 폐쇄된 것이 벌써 1년 5개월이 지났다. 아직 빈 건물로 남아있는데 꽤 여러 사람이 작지만 단단한 우체국 건물을 탐을 냈던지 팔지 않는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우체국이 사라지고 얼마 되지 않아 중앙시장 입구쪽 국민은행 ATM도 철수하는 바람에 노인들이 어려움을 격지만 국민은행도 우체국도 설치할 생각이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삶이 먼저, 사람이 먼저!!

오래된 집이 있으면 새집도 있다. 오래된 길이 있으면 새 길도 있다. 오래된 도시도 있고 새 도시도 있다. 하지만 그것의 근본은 사람이다. 사람이 어울려 사는 공동체다. 그런 삶을 함께 가는 것이 집이고, 길이고 도시다.




지난 주 수요일(9/13)부터 송림로에 이어진 송현터널 예정지 입구에서 천막농성이 시작되었다. 동구관통 산업도로 1-2구간 개통을 반대하는 시위와 농성이 이어지고 있다. 제2외곽순환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애초의 의미도 사라진 도로를 월미은하레일처럼 예산을 썼으니 완성해야한다는 논리로 다시 개통하려고 해 주민들이 다시 도로를 막겠다며 결집하고 있는 상황이다. 잘못을 인정하면 안되서 만드는 길이라니...  

신흥동에서 동국제강까지 지상에서 지하로 다시 지상으로 터널로 다시 고가도로까지 이어지는 직선 거리가 2Km도 안되는 길을 만들겠다고 하는 건 도로를 만드는 전문가도, 그곳에 살아가는 주민들로서도 이해할 수 없다. 거기에 말도 안되는 돈이 들어갔다고 하니 그 조차도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왜 기어이 그 길을 내어야 하는 걸까? 


오래된 미래를 여는 지혜를 

인천시 도로과에 의하면 어떤 도로를 낸다고 해도 그 주변 주민들은 모두 반대라고 한다. 도로가 나면 마을의 경제가 발전한다는 것은 옛말이라는 걸 스스로 인정한 셈인데도, 잘 모르는 어른들에게 마을의 경제가 발전한다느니 집값이 올라간다느니 하며 주민을 갈라놓고 있다.

오히려 소음, 분진, 교통체증, 송림초교 아이들의 등하교길이며 노년층이 많은 지역의 통행의 어려움과 위험성, 무엇보다 이 마을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도로는 이 오래된 마을 한 가운데를 가르고, 몇 개의 공동체를 갈라놓는 일이다.

잘못을 할 수 있다. 반성하고 다시 그런 잘못이 반복되지 않게 하는 노력이 있으면 된다. 제대로 반성하지 않으면 같은 잘못은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사건사고를 통해 알고 있다. 100년의 역사가 있는 마을을 파괴하면 100년이 지나야 그런 마을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지난 9월 13일부터 송현터널입구에서 송림동과 금곡동 주민들이 집회와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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