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인천종합일자리지원센터 새벽 인력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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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인천종합일자리지원센터 새벽 인력시장
  • 이병기
  • 승인 2010.01.20 00:01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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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거리는 없고…살기 너무 힘들어"


새벽인력시장에 모인 구직자들은 커피를 마시거나 TV를 보며 일자리가 생기기만을 기다린다.


 얼마 전, 아직 첫 차도 깨어나지 않은 이른 시각. 오전 5시부터 새벽인력시장이 열리는 인천종합일자리지원센터를 찾아가려고 택시를 잡아탔다.

 "출근하세요? 집에 들어가시는 건가?"

 택시기사 아저씨가 관심을 보인다. 취재를 위해 새벽인력시장에 간다고 하니 사연이 많은 듯 말문을 연다.

 "저도 2004년 12월부터 2005년 1월까지 두 달 동안 잡부일을 했어요. 그때 7만원 정도 받았는데 지금도 똑같아요. 노가다 일당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죠. 목수나 돼야 11만원 이상 받는데... 용역 사무실에서 10%를 제외하고 일당을 받았어요."

 이제는 고유명사로 변해버린 일본어 '노가다'가 공사현장 노동자를 뜻하는 것은 초등학생도 알고 있는 사실. '일용직 노동자', '건설현장 일꾼' 등 충분히 우리 말로 순화할 수 있음에도 버릇처럼 입에 배버린 단어가 씁쓸하다.

 "인천에도 전에는 새벽인력시장이 많이 있었는데 요즘은 뜸해요. 지금은 송림동 로타리 현대극장 근처나 청천동 영화다방에서 모이는 것 같더라구요. 한 20~30명 모이던데, 그 중에서 10명 정도, 많아야 20여명 일하는 것 같아요. 나머진 마누라 창피하니 바로 집에 들어갈 수는 없고 몇 명씩 모여서 술 한 잔 하고 들어가는 거죠."


 하루 20여명 새벽인력시장 찾아


 동인천에서 탄 택시가 어느덧 간석5거리에 도착했다. 새벽 5시에 맞춰 일자리지원센터에 도착했는데 이미 문은 열려 있었다. 새벽인력시장 매니저를 맡고 있는 천대연씨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도움을 구했다.

 "고정으로 나가는 인력을 포함해서 매일 30~40명이 일하러 갑니다. 날마다 새벽인력시장을 찾는 사람들은 20명 정도 되구요. 요즘에는 송도나 청라지구 쪽으로 많이 가요. 영종도도 들어가죠. 남자들 일당은 7만원, 아주머니들은 5만원이예요. 우리는 직접 연결하기 때문에 소개비는 따로 받지 않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현찰로 바로 지급하죠."

 뭔가 이상하다. 지원센터 관계자에게 듣기로는 "이곳은 일반 용역 소개소와는 달리 소개비를 받지 않고 업체에서 기한을 두고 직접 일당을 지급한다"고 했다. 때문에 한 달이나 그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용역 소개소는 '업체의 부도 위험을 감수하고 그날 바로 임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일정 금액을 제외'하지만, 지원센터는 '임금을 모두 전달하는 대신 날짜가 늦어지는 차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임금이 지급된 서류를 잠깐 들여다 보니 7만원이라고 쓰인 기록보다 6만5000원이라고 쓴 게 훨씬 많다. 5시 6분. 첫 번째 구직자가 들어와 의문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그가 들어와서 처음 한 일은 방명록 작성. 이곳의 출근부라고 할 수 있다. 이름과 연락처를 쓴 그는 매니저와 아는 사이인듯 간단한 인사를 나눈다. 쌀쌀한 새벽 날씨, 사무실에 마련된 따뜻한 자판기 커피 한 잔으로 추위를 녹인다.


 나이 든 사람 필요 없고 젊은 사람만 원해

 

새벽 5시에 찾아간 인천종합일자리지원센터의 새벽인력시장

 5시 10분이 되자 한 명이 더 찾아왔다. 조심스레 다가가 이야기를 들어본다.

 이모(53)씨는 지난 7월부터 지원센터 새벽인력시장에 나왔다. 아스팔트를 교체하는 회사에서 일하던 그는 몸이 좋지 않아 해직됐다고 한다. 대학교 3학년과 중학교 1학년에 다니는 자녀가 있다. 집은 부평 3거리. 지나가다 지원센터 현수막을 보고 오게 됐다고 한다.

 "다른 일자리도 알아봤지요. 운전하는 곳이었는데 앞 차와의 감각을 느끼기가 힘들더라구요. 운전도 어렵고. 송도의 한 건설회사에도 들어갔었는데, 월급을 45일 후에나 준다는 거예요. 그 동안 빚내서 살아야 하는데 못하죠. 그래도 여기는 견딜만 해요. 애들도 있는데 힘들지만 어쩔 수 없죠."

 남동공단에서 일했던 주위 사람들의 "나이 든 사람들은 필요 없고, 젊은 사람만 원한다"는 말에 공단 일자리는 엄두도 못 냈던 이씨. 그와 아내가 함께 벌어 한 달 수입은 300만원 정도다. 아이들의 교육비와 생활비까지 생각하면 넉넉치 못한 살림살이다.  

 5시 23분. 어느새 사람들이 꽤 모였다. 10명 남짓 모인 구직자들은 커피를 마시거나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본다. 오자마자 한쪽 구석에 놓인 컴퓨터 앞에 앉는 사람도 눈에 띈다. 몇몇은 아는 사이인 듯 인사를 하고, 매니저가 호명하는 사람들은 앞에 나가 전날 일했던 임금을 받는다.


 사연 가득한 그들


 다른 이들은 관심을 두지 않던 신문을 한 구직자가 보고 있다. 말끔한 옷차림, 목도리와 뿔테 안경이 샐러리맨을 연상시킨다. 가끔씩 말소리가 들릴 때마다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 시선에서 이곳이 익숙한 곳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사연이 있겠다 싶어 다가가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이번엔 센터에 자주 나와서인지 매니저를 비롯해 다른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한 구직자에게 다가갔다. 김모(46)씨는 올해 2월부터 이곳을 찾았다. 집이 근처인 그는 앞서 이씨와 마찬가지로 새벽인력시장 현수막을 보고 이곳을 찾게 됐다. 

 "개인사업을 했어요. 건설 쪽이었는데 경기가 좋지 않아 접고 이 일을 하고 있죠. 전문대 졸업한 큰 애와 고2, 중3 아이가 있습니다. 운전하는 직장도 알아봤는데 나이에서 걸리더라구요. 정말 살기 힘들어요."

 5시 30분이 되자 20여명이 모였다. 얼추 사람들이 다 온 듯 보이자 매니저는 몇 명씩 조를 짜 근무지로 보낸다. 오늘은 일자리를 찾아서인지 호명된 이들의 얼굴엔 뿌듯함이 서려 있다. 한편에선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기만을 기다리며 매니저와 가까운 거리에서 눈길을 놓지 않는 사람도 보인다.

 때마침 아침 뉴스에서 4대강 사업과 관련된 소식이 전해진다. 이곳에서 뉴스를 보니 '환경파괴를 떠나 4대강 사업이 시작되면 일용직 건설 노동자들이 일자리가 없어 헛탕치고 집에 돌아가는 횟수가 줄어들겠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처음 오셨으면 방명록 쓰세요." 매니저의 목소리가 들린다. 처음 온 그 사람은 볼펜을 잡고 잠시 망설이더니 "에이! 안 쓸래" 하며 나가버린다. 잠시 적막이 흐르고, 아는 사이였던 한 남자는 "그 사람 글 잘 몰라요"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빠져나간 5시 47분. 7명이 남아 있다. 그 중 4명은 이미 일자리를 받아 놓은 상태. 지원센터를 찾는 사람들은 30대~60대까지 다양하지만, 40~50대가 대부분이다. 다른 새벽인력시장에 나간 구직자들이 길거리 추위 속에서 불안한 일자리를 기다리는 것에 비하면 이곳의 사람들은 조금이나마 편해 보인다. 매니저는 남아 있는 사람 수를 세며 일자리가 남았는지 계속 전화를 돌린다.  


 소개비 받지 않는다던 지원센터, 용역회사 하청업체로 전락

새벽 6시가 넘자 구직자들은 대부분 일자리를 찾아 떠나고, 거리엔 차들이 많아졌다.

 아직도 일자리를 찾지 못한 한 구직자에게 말을 걸었다.

 "자주 나오세요?"

 "가끔 나와요. 원래는 팀으로 철근 관계된 일을 하는데 일거리가 없어 여기 와요."

 "시간이 늦었는데, 일을 찾지 못한 적도 있으세요?"

 "못하고 간 적도 있죠. 집에 가서 쉬고."

 고2와 중3 아들 두 명이 있다는 오모(52)씨. 일자리를 찾아 일반 회사에서 근무한 적도 있었지만 월급이 150만원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철근일을 할 때는 200만원에서 300만원까지 벌었다고 한다. 올해는 경기도 좋지 않고 일이 줄어들어 일용직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거 좋은 말만 해. 좋은 말만 써요! 안 그러면 다시는 취재도 못하게 할 테니까..."

 사람이 별로 없어 조곤조곤 얘기했더니 지원센터에 대해 좋지 않은 얘기를 한 것으로 들렸을까. 갑자기 언성이 높아진 매니저의 목소리가 들린다.

 앞서 잠시 의문을 묻어두었던 임금 지급 방식의 해답을 오씨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그도 매니저를 의식했음인지 사무실 밖에서 얘기를 이어갔다.

 "여기는 시에서 하는 게 아냐. 용역업체랑 똑같아. 용역회사에서 그쪽에 모인 사람들을 다 보내고 남는 자리 생기면 이쪽에 연락하는 거야. 일당에서 소개비 5천원을 빼고 남은 돈 주는 거지. 용역회사에서 일당을 지급하니 다음날 임금이 나오는거야. 시에서 운영해야 이런 일이 없는데... 다 똑같아."

 지원센터가 자랑하던 새벽일자리 무료 취업알선이 탁상행정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홈페이지에 따르면 '관내 건설 시공회사를 대상으로 직접 방문을 통한 구인개척 활동'이라고 소개됐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용역회사와 구직자들을 연결시켜주는 또 다른 용역 소개소였던 것이다. 물론 지원센터에서는 소개비를 따로 받진 않지만 노동자들의 임금이 줄어드는 것은 다른 곳과 차이가 없었다.

 오씨의 얼굴에서 씁쓸함이 묻어난다. 그는 오늘은 일자리를 찾기가 힘들었다고 생각했는지 잠시 후 사라졌다.

 6시 10분. 길거리에 차들이 제법 다닌다. 고정으로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왔다가 봉고차를 타고 곧 떠난다. 10분이 더 지났지만 아직도 3명이 일자리를 기다리고 있다.

 6시 37분. 취재를 마치고 돌아갈 시간이다. 지원센터에는 여전히 두 명의 구직자가 TV를 보며 일자리가 생기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일당을 벌어 집으로 돌아갔을까. 새벽 날씨가 쌀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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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호형님 2017-06-06 14:54:48
현장 위치가 어딘가요 인천쪽인가요

선호형님 2017-06-06 13:23:29
지금도 일자리 센터에 사람들이 마니 나오 나ㅛ

선호형님 2017-06-06 13:18:52
앞으로 날씨가 더 더워질텐데 하루인력나가면 멀리가나요 너무 멀리가지않고 가까운쪽으 가 면 안되나요 그리고 하 루 수당은 너무 적네요 왠만하면 조금더 올려서 10만원 올리면 사 람 들도 마니 올텐데요

선호형님 2017-06-06 13:10:04
일자리센터간판만 있고 전화번호가 왜 없는거지요

이성수 2009-11-26 10:22:45
찬바람 맞으며 고생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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