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방 아이들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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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방 아이들의 꿈
  • 유은하
  • 승인 2010.09.28 23:49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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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유은하 / 강화 화도마리 공부방 · 사회복지사
10년 넘게 공부방에 있으면서 아이들에게 가장 해주고 싶었던 일은 그들이 꿈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어릴 때 어른들에게 많은 질문을 받았다. "너 이다음에 뭐할래?" 그럴 때마다 나는 주로 선생님, 신문기자, 요리사 등 마음에 울림도 없는 직업들을 앵무새처럼 읊어댔다. 되돌아온 답은 "계집애가 뭔 신문기자야? 시집이나 잘 가야지"였다.

어른이 된 지금 나도 아이들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


"너 뭐가 되고 싶니? 너 뭐 먹고 살래?" 아이들은 대체로 침묵한다. 그리곤 어른들의 요구나 희망사항인 소위 '-사' 자 들어간 직업을 들이댄다. 또는 그저 돈을 많이 벌겠다고 한다. 그것도 10억, 20억 그 가치를 가늠하지 않은 채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른다.
 
공부방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경제적 요구가 더 크다. 부모의 직업을 이어서 농부가 되겠다는 아이들은 하나도 없다.

 
대체로 꿈이 없다. 학교에선 아이들에게 죽어라 공부만 하라고 한다. 공부 못하면 좋은 직업 가질 수 없다고 협박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화가 난다. 자신들은 도대체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했단 말인가? 꿈이 교사였다면 교사가 된 후 자신들은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되묻고 싶다.


무릇 여기 강화도를 지키고 강화도를 가꾸어 갈 아이들은 어른들이 말하는 성적 좋은 아이들이 아니다. 그렇다면 명문대 나온 사람들은 모두 좋은 직업에다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지 묻고 싶다. 성적순대로만 이야기한다면 세계적인 대학을 들먹이고 싶을 때도 많다. 행복하게 살기 위한 과정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공부방 아이들 중에 민호를 소개하고 싶다.


민호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공부방에 다녔다. 부모님과 떨어져 할머니와 단 둘이 사는 아이다.  강화도는 행정구역이 인천시에 소속되어 있는데, 시골 화도면은 유명한 관광지 마니산과 동막을 끼고 있다. 면소재지에 하나뿐인 초등학교는 한 학년에 학급이 한 반이고 아이들 수도 15명에서 많아야 25명 정도이다. 때문에 학급의 모든 아이들 사정을 학교에서는 다 파악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도 민호는 조용하고 내성적인데다가 학교 성적도 하위권이어서 존재감이 없었다. 평범하게 학교생활을 하였고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특별한 변화를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민호가 변하기 시작하였다.

민호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커져가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스스로 학업에 대한 열의도 보였고 성적이 놀랄 정도로 향상되었다. 또한 자신이 커서 무엇이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진지했고, 세상을 깜짝 놀랄만한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자신만의 꿈을 꾸게 되었다. 지금 민호는 고등학교 1학년이다. 나는 민호가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그 아이에게 그러한 열정과 과정과 노력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민호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평생을 통해 하고 싶은 그 무엇이 꿈인데, 그것이 반드시 좋은(?) 직업만은 아니라고.


직업은 변할 수 있다. 뭐하면서 살 것인가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것이 함께 녹아 있는 것이 꿈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어떻게 살 건지 자신과 가족과 이웃과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인류가 궁극적으로 실현해야 할 가치와 민호가 가장 실현하고 싶은 가치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요즈음 공부방에서 인문학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오랜 기간 세상을 바꾸려는 시도가 많이 있었다. 그것을 정치로, 경제로 바꾸고자 하는 수많은 시도가 있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하지만 계층과 생산양식만 바뀌었을 뿐 인간과 인간이 더불어 살고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살려는 움직임은 크게 성공하지 못하였다. 경쟁을 통해 성공한 자만이 살아남는 지금의 사회 구조 안에서 공부방 아이들이 세상의 주인,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살기에는 그 환경이 공격적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바람직한 안목을 갖기 위해서 인문학적 시각이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나는 이제 세상은 정치와 경제로써가 아니라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우리가 지금 이 땅에 사는 까닭을 인문학을 통해 체득하고, 세상을 바꾸어나갈 선재(善才)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또 내가 살고 있는 한 이유가 아닌가.

한 번은 고전을 공부하고 있고, 한 번은 아이들이 현실적으로 고민하는 주제를 정해서 공부하고 있다. <논어>를 배울 때 아이들은 공자 왈 중얼중얼 하면서 강사를 따라 수업을 하고 있다. 반은 졸기도 하지만 수업이 끝난 후에 물어보면, 졸지만 다시 듣고 싶고 계속 참가할 생각이라며 학교수업하고 달라서 좋다고 한다. 지루한 듯 하지만 재미도 있고, 공자와 내가 무슨 상관이 있는지 고민하게 된다고 한다. 이런 말을 들으면 반은 성공했다는 느낌이 든다.

인문학 수업을 할 때마다 나는 가슴이 설렌다. 아이들보다 내가 배우는 것이 더 많을 뿐더러 무언가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선물을 하는 것 같아서이다. 공부방에는 민호뿐 아니라 자신의 꿈을 세워가는 아이들이 점차 늘고 있다. 재호같은 경우는 꿈이 너무 많아서 탈이다. 모쪼록 어느 직업을 선택할까에 대한 고민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더 고민해가는 아이들이 되길 바란다.

인문학 수업시간 중 선생님이 물었다.

"공자를 만나면 어떻게 할까요. 부처를 만나면 어떻게 할까요. 예수를 만나면 어떻게 할까요."

그랬더니 아이들이 뜬금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대답한다. "음 ~ 빌어요, 기도해요."

"푸하하"하는 웃음소리가 공부방 가득 울린다.

아 맞다. 우리 어른들이 그렇게 했고 그렇게 가르치고 있었다. 문득 '나는 정말 어른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른다운지 나도 세상 이치를 다 모르는데 아이들 앞에서 잘난 척하고 다그치고 센 척하고 있다.

영화 <베틀로얄>에서 물었다. "이제 어른들은 어떡하지? 어떻게 살아야 하지?"

어른들이 솔직해야 한다. 고백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이제 어른들도 꿈을 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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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젼 2010-09-27 14:43:59
아이들이 꿈을 이야기하는, 희망이 있는 공부방이 있어 행복하네요...

김수현 2010-09-27 14:33:48
꿈꾸지 않으면 이라는 노래에 '꿈꾸지 않으면 사는게 아니라고' 하는 가사가 있습니다.
글을 읽으며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지 되돌아 보게 되네요^^

이은령 2010-09-27 12:51:19
'어른들이 솔직해야 한다. 고백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이제 어른들도 꿈을 꾸어야 한다.' 라는 문구가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는군요.. 아이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긍적적인 지지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이찬영 2010-09-27 07:48:34
꿈을 꾼다는 것은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죠... 아이들의 꿈이야기 너무 소중합니다..

비로소 2010-10-11 11:52:49
아이들에게 항상 현실만을 얘기하고 엄마가 생각하는 것만을 요구하지 않았나.... 내가 못해 보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엄마가 원하는데로만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나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글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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