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서 전해오는 기이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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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서 전해오는 기이한 이야기
  • 학오름
  • 승인 2017.09.26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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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기 시인(황해섬네트워크 이사)
<인천이야기 1>


       <숱한 전설을 품고 있는 덕적군도의 선갑도, 각흘도, 선단여 전경.  사진=이세기>

섬에는 기이한 이야기가 많다. 각흘도 앞 선단여에는 ‘오누이 전설’이 전해온다. 오누이 전설은 덕적군도 인근 섬주민이라면 익히 들어온 전설이다. 선단여 근방 백아도에 어린 남매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홀로 외롭게 살고 있던 마귀할멈이 남매 중 어여쁜 어린 여동생을 납치하여 자기가 살고 있는 섬으로 데리고 갔다. 세월이 흘러 오빠는 어느덧 청년이 되었다. 하루는 고기잡이를 하다가 풍랑을 만나 외딴 섬으로 피신했는데, 그곳에서 어여쁜 처녀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연인이 된 처녀· 총각은 다름 아닌 헤어진 오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를 알고 하늘이 그만 노하여 오누이와 마귀할멈을 향해 천둥 벼락을 내리쳤는데, 그 자리에 세 개의 붉은 바위가 우뚝 솟아나 선단여가 되었다고 전해온다. 이 이야기는 고립된 섬에서 근친금혼을 경계하기 위해 이를 금기(禁忌) 전설로 만들어서 내려온 전설이라 할 수 있다.

각흘도 '오누이 전설'의 선단여, 장봉도 '인어이야기'

장봉도에는 ‘인어 이야기’가 전해온다. 장봉도 앞바다에 ‘날가지’라는 어장이 유명한데 어느 날 어부가 이곳에서 그물질을 하다가 인어를 건져 올렸다. 허리 윗부분은 사람 모양이요, 아랫부분은 고기 모양을 한 괴이한 물고기였다. 어부는 이 고기가 인어라는 것을 알고는 즉시 풀어줬는데 그후로 인어가 은혜를 갚은 것인지 어장에 물고기가 많이 잡혔다. 이 이야기는 장봉도 근해의 만도리어장과 관련이 깊다. 어부들 사이에 전해오는 ‘인어 이야기’는 풍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선단녀>                                                      <인어상>

선갑도에는 덕적군도 탄생 설화인 새우 신으로 추앙되고 있는 ‘망구할매 전설’이 내려온다. 옛적 한양 도읍지가 정해질 때 안산(案山)을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태산이 황해를 건너오다 이미 황해도 구월산에서 출발한 산이 먼저 당도하여 안산인 목멱산(木覓山)이 되었다는 소식에 노하여, 그만 폭발한 것이 46개의 아름다운 섬이 모인 덕적군도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덕적군도를 탄생시킨 망구할매는 새우와 풍요의 신이기도 하다. 망구할매의 증좌는 덕적군도의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망구할매가 소변을 보기 위해 봇돌로 사용했다는 선단여, 망구할매가 마실을 왔다는 할미염, 헤엄을 쳤다는 풍도골이 가까이에 있다. 궁궐을 짓기 위해 기둥으로 사용한 아흔 아홉 개의 기둥보와 골짜기가 선갑도에 전해 온다.

덕적군도를 탄생시킨 망구할매는 새우와 풍요의 신

각흘도에도 ‘산지꼴에 걸린 부부’ 이야기가 전해온다. 노부부가 병을 고치기 위해 각흘도로 들어가 살았다고 한다. 먹을 양식이 마땅히 없다보니 뱀을 잡아 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풍랑을 피해 들어간 뱃사람들에 의하면 노부부의 피부가 온통 뱀 껍질 마냥 변해있더란다. 때마침 가마솥을 여니 뱀을 끓이고 있었고, 우물에는 잡은 뱀들이 바글바글하더란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섬사람들은 이 노부부가 산에서 나온 짐승을 잡아먹어서 ‘산지꼴에 걸렸다’고 했다. 이 이야기는 섬사람들에게 산짐승을 함부로 해치거나 죽여서는 안 된다는 신앙 같은 믿음을 주었다.

문갑도에 있는 ‘할미염’은 바위섬인데, 마을에서 대동굿을 할 때 산기가 있는 아녀자가 있으면 ‘부정 탄다’라고 해서 이곳에 초막을 지어 보냈다. 여기서 태어난 아이를 ‘할미염네’라고 하는데, 지금도 문갑도에는 ‘할미염네’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다. 이와 함께 ‘천리마 말발자국’ 이야기도 전해오는데, 천리를 가는 백마가 문갑도, 굴업도를 딛고 황해를 건넜다는 것이다. 이를 증표라도 하듯 하루산에 ‘발바작’이라고 불리는 바위가 있다.


<망구할매 전설이 내려오는 선갑산. 사진=이세기>

덕적도에는 진시황제가 불로불사의 영약을 구하기 위해 서시(徐市)로 하여금 동남동녀(童男童女) 5천 명을 보내 국로(菊露)를 구했다는 ‘서시 전설’이 '인천부사(仁川府史)'에 실려 있다. 이들은 선단여와 굴업도를 거쳐서 덕적도 국수봉에 도착하여 천신제를 지내고, 마침내 불로초를 구해 돌아갔다는 이야기다.

덕적도에는 진시황제 불로초, 임경업 장군, 소정방 주둔군 등 이야기 즐비

이외에도 덕적도에는 당나라 장군 소정방이 나당연합 당시 덕적도에 주둔해 국수봉에 제천단을 쌓고 천신에게 제사를 지냈고 군사놀이를 했다는 이야기, 임경업 장군이 덕물도를 지나며 국수봉에 올라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덕적도가 지척인 소야도에는 소정방이 주둔하고 제를 지냈던 기단이 지금도 남아있다. 덕적도가 중국과 가깝고 예로부터 뱃길로 이어진 터라 이와 관련된 전설이 많다. 이는 곧 황해가 닫힌 바다가 아니라 열린 바다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섬에서 전해오는『산해경(山海經)』같은 이야기는 때때로 심심풀이로, 때때로 경계와 금기로 전해내려 오지만 그 안에는 섬사람들의 인생관, 세계관, 자연관 등이 아로새겨져 있다. 생명에 대한 존중, 형제간의 우애, 풍요에 대한 기원, 부정한 것에 대한 경계 등, 삶의 지혜와 섬사람들의 강인한 기질 등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갖가지 진기하고 기괴하며 신화적인 황당무계한 이야기에서 환상과 자유, 또다른 세계를 꿈꿀 수 있는 정신적 원천이 살아 숨 쉰다고 느낀다. 섬 기담을 통해서 갑갑한 세상을 풍자하고, 세상을 경계했을 것이다. 혹은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며 탄성을 발하지 않았을까?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섬 이야기의 밑바닥에는 외딴 섬에서 살아가는 변경의 아픔과 고통, 외로움이 묻어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척박한 섬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여기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고 외치는 소리가 금세라도 들려올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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