地水火風으로 돌아가신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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地水火風으로 돌아가신 어머니
  • 최일화
  • 승인 2017.11.03 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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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시단> 육신 / 최일화

육신

                          최일화
 

어머니의 육신은
이제 다 썩었을 거야.

내가 먹고 자란 어머니의 젖
그 젖무덤도
이제 다 썩어서 흙이 되었을 거야.

사시사철 밥상 차려주던
어머니의 손
그 따뜻하던 손도
이제 다 썩어서 아무런 흔적도 없을 거야.

어머니의 육신은
이제 다 썩어서
바람이 되고 물이 되었을 거야.
저 강산 저 들판 햇살이 되었을 거야.





<시감상>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도 벌써 20여년이 지났다. 어머니를 생각할 때 마다 나는 안타깝다. 그 시절 우리의 어머니들의 삶이 모두 다 곤궁하고 배운 것 없고 가부장제 하에서 권리를 포기하고 살았다고는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회한은 깊어져 간다. 왜 용돈을 좀 더 드리지 못했는지 어머니 모시고 공원이나 바닷가 나들이 한 번 못했는지 아무리 핑계거리를 찾고 구실을 붙여도 소용이 없다. 무릎이 아파 그 고생을 하셨는데 왜 큰 병원엘 한번 모시고 가지 못했는지 좋은 음식점으로 모시고 가 왜 함께 식사를 하지 못했는지 후회스러운 마음뿐이다.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은 여전하다.

어머니는 자식만 믿고 평생을 청상과부처럼 한 세상을 사셨다. 그런 어머니가 돌아가실 줄은 나는 꿈에도 몰랐다. 건강하시던 어머니가 몸살을 앓는 것처럼 고열이 났다가 오한이 나면서 추어서 떨고 식음을 전폐하다가 입원 50여일 만에 돌아가셨으니 갑자기 당한 일에 나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는 돌아가시기 전날 까지만 해도 어머니는 회복되실 줄 알았다. 의사의 말로는 십이지장에 궤양이 있다. 신장에 염증이 있다고 해서 그런 줄로만 알고 식사를 못하시는 어머니가 안타깝기만 했을 뿐 그렇게 위독한 상태인 줄은 몰랐다. 돌아가시고 한 참 후에야 어머니의 증세가 전형적인 패혈증인 걸 알았다. 어머니가 없는 삶은 생각해보지도 않다가 갑자기 어머니를 잃고 난 얼떨결에 고아가 된 기분이었다. 하루하루 힘든 시간을 보내며 어머니가 없는 세상을 적응해가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20여 년 지금도 어머니가 살아계신 것 같은 착각이 들 때마저 가끔 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 모두 죽을 운명을 타고난 것이다. 요 근래 와서야 죽음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방비 상태로 있다가 맞이하는 죽음만큼 무모하고 황당한 것도 없을 것이다. 조병화 시인의 모친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살은 죽으면 썩는 것이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래 시인의 고향 난실리에 산장을 하나 지으며 오석에다가 어머니의 말씀을 써서 산장을 지을 집터 밑에 넣었다고 한다. 그리고 시인은 후에 자신의 묘에 다음과 같은 묘비를 세웠다고 한다.

“나는 어머님의 심부름으로 이 세상 나왔다가
이제 어머님 심부름 다 마치고
어머님께 돌아왔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그리움이고 사랑이 아닐 수 없다. 천주교의 묵상기도 방법 중에 시체에 대한 공상을 해보는 방법이 있다. 내가 죽어 시체로 누워있다고 생각하고 그 시체가 어떻게 썩어 소멸하는지를 마음속으로 상상을 해보는 방법이다. 9단계가 있는데 소개하겠다. 각 단계에서 1.2분 정도 멈춰서 자기의 시체의 변화를 상상하는 것이다.

1. 시체가 차가워지고 뻣뻣해집니다.
2. 푸른색으로 변합니다.
3. 몸에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4. 어느 부분이 부패하기 시작합니다.
5. 온 몸이 온통 부패되었습니다.
6. 이제 해골이 드러나기 시작하며 군데군데 살점이 붙어 있습니다.
7. 이제 당신은 뼈대만 남아 있고 살은 모두 없어졌습니다.
8.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한 줌의 뼈뿐입니다.
9. 이제 뼈도 다 사라지고 한 줌 먼지만 남았습니다.

이 묵상 방법은 불교의 본체(本體)에 대한 묵상방법에서 빌려왔다고 하는데 이 기도 방법이 낯설고 생경하긴 해도 독자에게 평화와 기쁨을 주기 위한 묵상 방법이니 이해를 바란다는 첨언이 붙어 있다. 실제로 나는 백년 이백년 된 조상의 묘를 모두 파묘하고 화장하여 열여덟 분의 조상의 몸 상태를 확인 한 바 있다. 납골당을 만들기 위해 나의 위로 6대조 까지의 묘를 파헤치고 그 뼈의 상태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놀랍게도 몇 분 조상의 묘에서는 단 한 조각의 뼈도 발견할 수 없었다. 실로 육신이란 그냥 사라져 없어질 물질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확인했다.

조장(혹은 천장)의 현장을 동영상 화면을 통해 본 적이 있는데 시체의 팔과 발을 뒤로 묶어 조장 터에 엎어 올려놓고 독수리들이 뜯어먹기 쉽도록 일일이 날카로운 칼로 온몸을 그어 너덜너덜하게 만들어 놓던 장면을 목격한 적 있다. 실로 육신이란 아무것도 아니구나, 영혼이 야말로 생명의 본체라는 것을 깨달은 바가 있다. 어디 그뿐인가. 인도 여행 중에 나는 가장 인도적이라는 바라나시라는 도시에 일주일가량 머물며 갠지스강가에서 행해지는 장례식 장면을 여러 차례 지켜본 적이 있다.

시체 운반꾼들이 커다란 구호를 외치며 시체를 담은 들것을 들고 골목길을 달려 와서는 높게 쌓아놓은 장작더미 위에 시체를 올려놓는다. 그리고는 장작더미 밑에다 불을 지르는데 이때 유가족들이 아무런 표정도 없이 모두 덤덤하게 지켜보는 것이었다. 시체는 불더미 속에서 두세 시간을 타게 되는데 도중에 머리통이 밖으로 밀려나오면 커다란 대나무 장대로 머리를 장작더미 속으로 밀어 넣기도 하고 다리 한 짝이 밖으로 툭 불거져 나오면 다시 장대로 불더미 속으로 밀어 넣는 동작을 반복하는 것이다. 제일 나중에 조그만 덩어리 같은 게 남는데 그냥 갠지스 강 속으로 던져버리는데 그 바로 옆에선 아이들이 수영을 하고 세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부유한 사람이 죽으면 장작을 많이 구하기도 하지만 가난한 사람일 경우는 장작을 많이 구하지 못해 시체를 제대로 태우지 못한다는 설명이었다. 화장은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밤새도록 진행되는데 약간 시간의 빈틈이라도 있으면 소, 개, 양 등 동물들이 화장장으로 들어와 시체를 덮고 왔던 꽃다발 등 화장장 바닥에 떨어진 것을 모두 집어먹는 광경도 목격했다. 어디 그뿐인가. 아이들이 몰려들어 타고남은 장작의 조각들을 모두 주워가는데 그것을 숯처럼 땔감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란다.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육신이란 참으로 허망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실로 육신이란 정신을 감싸고 있을 때만 소중하고 정신이 떠난 육신은 아무런 값어치 없는 껍데기이며 한 개의 물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모든 것을 간파한 것인가. 우리나라의 한 노(老)기자는 자신이 5대 독자인데 생각한 바 있어 부모님, 조부모님, 증조부모님 산소를 모두 파묘하여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 근처 숲에 수목장으로 다시 모시고 아우와 아들들에게 굳이 조상님을 찾아뵙고 싶을 때는 잠깐 다녀가도 좋겠지만 추석이나 설날에 굳이 올 필요는 없다고 당부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도 죽으면 이 곳 조상님 묻힌 나무 밑에 뼛가루를 묻어달라고 부탁을 했다는 것이다. 우리에겐 왜 주은래나 등소평 같은 지도자가 없느냐고 반문하면서 주은래는 자신의 뼛가루를 전 국토에 뿌려달라고 하며 그 골분을 비행기를 타고 국토에 뿌렸고 등소평은 각막을 비롯하여 모든 장기를 기증하고 자신의 시신은 의학연구용으로 기부한 다음 나중엔 화장하여 꽃가루와 함께 바다에 뿌려졌다는 내용을 소개하며 우리 지도자들이 호화 분묘를 만드는 관행을 비판하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실로 죽은 다음에 우리 몸뚱어리는 그저 썩어 없어질 물질에 지나지 않고 호화 분묘는 가문의 영구 번영을 바라는 매우 이기적인 욕심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한다. 장차 우리의 장례문화는 어떻게 진행되어 나갈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다른 나라의 모범적인 사례를 참고하고 우리 스스로 우리 실정에 맞는 방식을 개발하여 허례허식에 치우치지 않는 검소하고 자녀들에게도 형식이 아니라 실질적인 효 문화를 확산시키는 장묘문화가 정착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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