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사 드레스를 좋아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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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사 드레스를 좋아하는 아이
  • 장현정
  • 승인 2017.11.0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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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장현정 / 공감미술치료센터 상담팀장


디즈니 만화 ‘겨울왕국’ 속의 엘사는 모든 아이들이 한 번씩 거쳐 가는 감기 같은 존재라고 한다. 아직도 여름이면 엘사 드레스를 입고 다니는 아이들이 종종 눈에 띈다. 우연히 겨울왕국 뮤직비디오를 본 아들도 엘사에 빠지고 말았다.
 
아들은 드레스를 입고 싶다고 했다. 여자 친구들이 어린이집에 드레스를 입고 오는 것을 보고 꽤 부러웠던 모양이었다. 나는 짐시 고민에 빠졌다. 만일 드레스를 사주었다가 드레스를 입고 어린이집게 가겠다고 하면 어찌지? 지나가는 어른들이 못마땅해 하거나 아이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하지는 않을까? 아이가 창피를 당하면 어쩌지? 계속해서 생각해보니 엘사 드레스를 망설이는 이유는 오직 ‘남자아이’라는 것이었다.
 
어느새 나는 동화책을 읽을 때도 토끼가 나오면 여자 목소리로, 사자가 나오면 남자 목소리로 읽고 있었다. 아들이 읽는 많은 동화책에 남자 의사선생님과 집에서 요리하는 엄마가 나온다. 남아의 옷은 파란계열, 여아의 옷은 분홍계열로 거의 정해져 있는 듯하다. 남자아이가 분홍색을 좋아한다고 하면 ‘남자가..’하는 편견이 아직도 어른들의 입에서 만연하다. 주황색을 그렇게 좋아하던 아이 스스로도 어디서 들었는지 ‘나는 남자니까 파란색이 좋아’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성별에 대한 선입견은 우리도 자신도 모르게 일상 속에서 많은 인식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 ‘여자가 축구해?’라는 말을 듣고 ‘아, 여자는 축구를 하면 안되는 건가보다’라고 생각했다는 지인의 말처럼 성별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이 때때로는 한계가 되고 제한이 되기도 한다. 내가 국민학교에 다녔을 때만 해도 여자아이들이 원하는 직업은 선생님이나 간호사 였고 남자아이들은 의사, 경찰, 소방관, 군인이었다. 요즘 TV만 틀면 나오는 남자 요리사나 디자이너를 상상하지 못했던 때였다. 남자가 화장을 하거나 귀를 뚫는 것, 심지어 파마를 하는 것도 낯설었던 시대였다.
 
고민하던 나는 결국 쌈직한 엘사 드레스를 하나 사기로 하고 아들과 함께 골랐다. 고작 네 살짜리인데도 자신이 입고 싶어 하는 디자인이 분명했다. 목과 팔이 망사로 되어 있는 눈꽃무늬 치마여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드레스가 도착한 뒤 아들은 빨리 입고 싶어 빨래하는 내내 안달복달이었다. 드레스를 입고 덤으로 받은 왕관까지 쓴 아들의 입이 씰룩거리는 모습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났다.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
 
요즘도 매일 아침저녁으로 드레스를 입었다 벗었다 하며 엘사를 꿈꾸고 있다. 어린이집에 입고 가겠다는 아이에게 차마 ‘남자니까’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체육도 하고 놀이터도 가야하기 때문에 어린이집에 갈 때는 편한 옷을 입는 거야’라고 설명해 주었지만 여자 친구들이 드레스를 입고 올 때마다 자신의 드레스도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결국 아들은 자신을 ‘신데렐라 공주’라고 불렀는데 다른 옷을 입고 있다가도 집에 오면 드레스로 옷이 바뀌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야기를 만들어 자기 자신을 납득시키는 놀라운 모습을 보였다.
 
우리 아들이 속한 ‘네 살’, 이 4세경부터 7세까지의 시기는 가장 창의성이 폭발하는 시기이다. 아이들은 놀라운 상상들을 표현하며 세상 속에 자신의 고유한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미운 네 살’이라고 불리듯 자기주장도 강해지고 떼도 많이 쓰지만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빛나는 시기임에는 틀림없다.
 
나는 지금부터 아이에게 ‘남자가, 여자가’하는 도식을 만들어 주고 싶지 않다. 네 살 짜리에게 남자라서, 여자라서 무언가를 할 수 없다고 느끼게 하지 않겠다. 지금은 그저 자신의 고유함을 더 펼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 7,8세 무렵이 되면 아마 남자라고 파란색만 좋아하고 여자들은 적이라고 위세를 떨 것이다. 그것도 이 사회 속에서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지금은 아이가 현재를 즐기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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