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배로 갯벌의 죽음과 아버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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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배로 갯벌의 죽음과 아버지 (2)
  • 주성준
  • 승인 2017.11.09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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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주성준 / 화가ㆍ칼럼니스트ㆍ전 인천대 예술경영학 외래교수

저는 독배로(학익동)에서 30년을 넘게 살아온 화가 주성준입니다.

아버님은 이북에서 피난 오셔서 갖은 고생을 다 하셔서인지 평소에 기침과 천식이 심하셨습니다. 폐렴이 생겨 집에서 약초 등을 드시면서 자가 치유 되신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원인을 잘 몰랐었습니다.
그러다 목 혈관이 막혀 급성 치매가 오셔서 급히 수술을 하셨고, 요양원에 2년 정도 계시다가 다시 방광의 관이 막혀서 뚫어 주는 수술을 하고 또 다른 큰 혈관이 다시 막혀 혈관시술을 또 하시게 되었습니다.
70이 넘으신 나이에 체력도 다하시고, 수 년 전부터 증상이 조금씩 있었던 혈액암(백혈병)으로 결국 돌아가셨습니다.
그 원인이 같은 것인지는 몰라도 동양화학(OCI) 회장님도 지난달에 70대 연세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자연을 파괴하고 천막도 덮지 않은 폐석회 분진과 공장굴뚝 연기가 의학적 원인이든, 자연파괴에 대한 영적인 죄(카르마)의 원인이든, 두 분의 생명을 한국의 평균수명도 못사시고 돌아가시게 했습니다.

요즘 '기침천식이나 혈관 등이 막히는 원인은 물론 백혈병 등도 미세먼지 속 중금속이나, 공장굴뚝 공해 등이 주요 원인 중에 하나라고 과학적으로 입증되어있다'는 뉴스를 접해 알게 되었습니다.

동양화학 바로 옆에서 살면서 접한 굴뚝연기와 동양화학이 집 뒤 30여 만평 갯벌을 매립해서 만든 공장에서 수 십 년간 나온 포장도 덮지 않고 쌓아놓은 허연 폐석회 분진이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이제 와서 무슨 짓을 한들 이미 돌아가신 분이 돌아오시진 못합니다.

OCI를 키운 주역은 사실 갯벌 옆에 살던 주민들이라고 봅니다. 하늘이 준 자원인 갯벌을 개인기업에 헐값에 빼앗겼습니다.
몇 푼 안되는 보상을 받고 쫓겨날 수 밖에 없었는데도 동양화학 생산시설이 들어선다면 인천과 자신들의 삶이 더 나아질 거라 생각했겠죠.

동양화학이 공장을 이전하기까지 구민들에게는 수 십 년간 '공해와 죽음이라는 선물'을 강요하면서도 OCI 자신은 가장 많은 사업이득을 얻어왔습니다.
OCI는 이제 공장이 떠나간 자리와 그 주변에 18,000 세대 상가와 아파트를 지어 4조원을 벌게 되었습니다. 18,000세대 아파트와 상가를 지으면 30평짜리 아파트를 평당 800만원으로만 분양한다고 쳐도 4조 3천억이 넘고 분양가가 더 높은 3,000세대의 상가와 호텔 등을 생각하면 5조 이상이 넘는 매출을 달성할 수 있겠죠. 하지만 이렇게 자신들에게 천문학적인 돈을 벌게 해줄 남구 구민들에 대한 문화·예술시설에 대한 배려는 하나도 없습니다.

인천 남구 청소년들과 구민들이 언제든지 와서 남구의 문화예술가들과 소통하며 그 시설들을 저가(혹은 무료)에 이용할 수 있는 공익적인 체험학습공간들을 비롯해 여러 가지 문화수업을 받을 수 있는 남구만의 문화의 공간을 내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공익 프로젝트는 장차 남구에 입주할 18,000세대 주민들에게도 자식들과 자신들을 위한 소중한 문화공간으로 자리잡을 것입니다. 분양 홍보자료에 남구 구민들에게만 저렴하게 특화된 이 문화예술강좌 프로젝트를 싣는다면 분양이 최소한 몇%라도 더 될 것이며 OCI와 우리 구민들이 서로 윈윈하는 기획이기도 합니다.
100년 가까이 되는 OCI의 구건물과 옛 굴뚝들을 부수지 말고 보존처리하여 관광과 스토리가 살아 숨 쉬는 문화의 공간으로 배려하여 주는 것이 OCI의 아파트 분양에도 훨씬 도움이 되며 분양자들에게 인기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현대 미술관과 박물관들의 추세는 옛 향수가 담긴 공장들과 탄광들을 리모델링해서 세월의 흔적과 현대의 재료와 디자인 기술들을 접목하는 스토리텔링 문화가 주도하고 있습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여러나라에서 오래된 공장지대를 리모델링해서 만든 미술관과 박물관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기도 하고 국제적인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만약 갯벌이 그대로 있었다면 낙지, 조개, 물고기들이 잡히는, 인천시민들과 남구 주민들에게는 소래포구 이상의 관광휴양지로 자리 잡았을 것이고, 시민들에게는 400조원 이상의 가치가 있는 공유 바다이었을 곳입니다.
남구의 방광인 그 갯벌은 남구 사람들이 힘들 때 와서 조개나 낙지도 잡고 낚시도 하며, 육체적 정신적 힐링을 위해 하늘에서 설계되었던 곳입니다.
이곳을 매립해 공장굴뚝을 세워 인천의 경제는 다소 발전했겠지만 심신의 자연 치료 장소를 잃은 구민들은 자살률 등이 기하급수적으로 급증했습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이미 설계되었고 자연의 치유 혜택이 있는 곳은 함부로 난개발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갯벌매립과 공해의 직접적인 피해자들인 돌아가신 저희 아버님과 인근 남구 주민들을 위한 문화공간하나 달라는 게 그렇게 큰 요구입니까?

물속에 사는 물고기들은 물을 모르고 지옥에 사는 사람들은 그곳이 지옥인지를 잘 모릅니다. 삶의 방식에 인이 박혀 있어서이겠죠.
다른 곳의 문화를 접해 볼 시간과 경제적 능력, 그리고 지식적인 대항의 능력조차도 거의 없습니다.
한국 최고의 열악한 인천 남구의 환경 때문에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017년 9월에 인천 남구에서 일어난 일을 보면 남구가 왜 전국에서 꼴찌 도시란 불명예를 얻었는지 알게 됩니다. 자유한국당 구의회 의장과 그를 추종하는 의원들 몇몇이 남구의 유명한 축제인 미디어축제 폐막행사 중에 남구의 현실을 풍자하고 문화예술 정책을 강조하는 내용의 공연을 기획했던 예술감독을 불러내라고 공연 중에 관중들이 있는 앞에서 호통을 치고 갑질을 했습니다.
다음 해에는 축제자체를 없애버리겠다고 협박하면서 말입니다. 구의원들이 누구를 위해 그런 갑질을 해댔을까요? 남구가 왜 대한민국에서 제일 살기 힘든 곳인지 그 원인 중에 하나가 바로 이러한 무식한 구의원들이며 그들을 뽑아준 구민들에게도 있습니다.


<학익동 동양화학 옛터 ⓒ유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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