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시간과 함께 성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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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시간과 함께 성숙한다”
  • 한인경
  • 승인 2017.11.13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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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경의 시네 공간(16)] 다시 주목하는 영화 『이터널 션샤인 Eternal Sunshine 』

 

<한인경의 시네 공간>은 지난 1년간 독립영화 12편에 대한 연재를 마치고, 2017년 8월부터 ‘다시 주목하는 영화’라는 주제로 영화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영화는 일상의 피로를 풀어 주는 청량제이기도 하지만 사회인문학적으로 인간의 존재 이유와 그 밖의 다양한 존재의 진실에 대하여 사유하게 해준다. 영화 속 많은 삶의 양상을 공감할 수 있으며 감독과 배우들의 천착(穿鑿)한 철학적 외침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영원한 테마가 되기도 한다. 제한된 물리적 크기의 스크린이지만 우리는 무한대의 자유로운 공간을 만난다. 그 속에서 독특한 재미를 느끼고 힐링하고 비상한다.

 

 

“무의식 속에서의 사랑의 향연”

 

개 봉 : 2015. 11. 05. 재개봉 (2005. 11. 10. 개봉)(107분/미국)

감 독 : 미셸 공드리

출 연 : 짐 캐리, 케이트 윈슬렛, 커스틴 던스트, 톰 윌킨슨

등 급 : 15세 관람가

장 르 : 판타지 멜로 드라마

 

 

출처:영화『이터널 선샤인』

 

2017년 한 해의 종착점이 멀지 않았다. 어느새 입동이 지났다. 곧 눈발도 날리고 살을 에는 듯한 한파까지 본격적인 겨울을 상상해본다. 겨울은 사람들을 따뜻하게 이끄는 반전 매력이 있는 계절이다. 따뜻한 곳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따뜻하게 주변을 단장하고 따뜻한 음식을 찾는다. 영화도 역시 가슴 따뜻해지는 사랑 영화 두 편(11월, 12월)을 선정했다. 우리가 아름다움을 노래할 수 있는 것은 생명이 꿈틀대는 곳, 영원한 주인공인 사랑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11월, 다시 주목하는 영화는 미셸 공드리 감독의 최고의 한 편, 『이터널 선샤인』이다. 이 영화는 이별을 생각하고 있는 연인들, 안타깝게도 최근에 이별을 한 연인들, 사랑하는 사람과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연인들에게 특별히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작년에 개봉한 드니 빌뇌브 감독의 SF 영화『컨택트』에서 언어학자인 주인공 루이스 박사(에이미 아담스)는 미래를 읽게 된다. 물리학자인 동료 이안(제레미 레너)과 헤어지게 될 줄을 알면서도 결혼을 하며, 딸이 큰 병을 얻어 죽게 된다는 미래를 보면서도 딸을 출산하며 딸과의 시간을 감수한다. 인생이라는 여행이 어떻게 흘러갈지 알면서도 모든 걸 끌어안고 반기겠다는 결정이다. 영화 『인셉션』(2010)에선 표적 대상자의 생각을 훔치고 원하는 생각을 집어넣기까지 한다. 뇌의 기억이 조정 되는 SF 판타지 영화와는 반대로 현실에선 사람들은 치매라는 질병을 두려워하고 있다. 마치 기억이라는 전등이 끊어지는 듯 점차 소멸되어 가는 질병, 알츠하이머를 앓는 인물과 관련된 영화가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한다.

이미 영화는 인간의 기억력, 생각까지도 움직인다. 뇌, 생각의 저장고라는 속성을 건드리는 스토리가 어디까지 진화할지 끝을 알 수 없다. 이들 영화에 앞서 『이터널 선샤인』에서는 헤어진 연인들, 두 사람과 관련된 모든 기억을 삭제한다. 그래서 다 잊고 각자의 길을 가려 하는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이다. 덧붙여서 동화적이면서도 절절함이 묻어 나오는 판타지는 화면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제한된 특권이다. 무의식 가운데 찾아 가는 장면들은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 화면이 아니다. 미셸 공드리 감독이기에 가능했던 아날로그적 판타지 영상들을 맘껏 감상할 수 있다. 2005년 개봉 이후 꼭 10년 후인 2015년 재개봉된 영화로 마니아층이 두텁게 형성된 영화며 상업적으로도 성공했다.

 

영화『이터널 선샤인』

 

주인공 조엘(짐 캐리)과 클레멘타인(케이트 윌슨)의 기억에 대하여.

이 영화는 기억의 흔적을 더듬고, 기억 속에서 숨고 도망가는 등 객관적 시공을 뛰어넘는 시간 개념이다. 관객의 관점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는 이유이다. 수줍은 청년 조엘과 적극적이고 다소 충동적인 클렘은 첫 만남부터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사랑에 빠진다. 처음 만난 날에 클렘은 ‘당신이 맘에 들어요, 당신과 결혼할래요.’ 등 사랑의 화살을 마구 쏜다. 클렘의 성격을 알 수 있는 대사들이다. 그러나 불같던 사랑도 지쳤는지 두 사람은 어느새 서로를 지루해한다. 반응이 즉각적인 클렘은 기억을 삭제하는 회사인 라쿠나 회사에 조엘과 관련된 모든 기억을 지운다. 이 사실을 알고 조엘 역시 그녀와의 기억을 지우려 한다.

조엘은 무의식 속에서 예전 클렘과의 기억의 흔적들로 혼란스럽다. 오래된 시간으로 갈수록 조엘은 삭제에 본능적으로 저항한다. 결국은 삭제 과정을 멈춰 달라, 이 기억만큼은 남겨달라 등 간절히 요구하지만 현실에선 조엘은 깊은 수면 상태이다. 강하게 저항하는 조엘의 무의식은 라쿠나 회사의 기계를 급기야 멈추게 한다. 응급 처치를 받은 후 다시 삭제 과정이 계속되고 조엘은 다시 깊은 수면 상태로 떨어진다.

 

영화『이터널 선샤인』

 

그들은 무의식 속에서 서로를 더욱 아쉬워하고 있다. 몬탁에서 다시 만나자는 환청 비슷한 클렘의 목소리가 최종 기억에 희미하게 남고 그 외 모든 클렘과의 기억은 삭제 완료다. 이후에 반전이 있다. 무의식에 자리 잡은 아슬아슬한 퍼즐 한 조각, ‘몬탁에서 만나자’는 기약은 서로를 모르는 상태로 다시 만나게 한다. 무의식의 주체는 그 두 사람이었고 두 사람의 간절한 욕망이 짙게 새겨져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첫 장면인 몬탁에서의 2월, 눈 내리는 바닷가는 그들이 헤어진 후 2년이 지난 시점이다. 조엘이 그냥 회사를 가지 않고 찾은 곳이었고 그곳에서 기억에서 지워진 여인 클레멘타인과 만나게 된다. 프롤로그 장면의 퍼즐은 영화 후반부에서 맞춰진다. 몬탁에서 만난 다음 날 우편물로 받은 녹음 테이프, 자신들의 과거의 상황, 즉 서로를 질려하면서 라쿠나 회사에서 녹음된 상대방의 험담을 듣게 되고 당황해한다. 그러나 오케이. 조엘과 클렘은 장황하게 이유를 대지 않는다. 그저 ‘오 케이’ 다시 시작하려 한다. 영화를 보는 이유 중의 하나는 즐거움이다.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잣대로 측정하여 더하고 빼기 하여 완성을 맛보는 즐거움과는 다르다. 그 즐거움 중 하나는 판타지를 현실로 끌어 올 수 있다는 점이다. 살다 보니 서로에게 모욕과 비난만 남기고 존재 자체를 지운 두 사람이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비난이 저장된 매체가 오작교가 된 셈이다.

 

영화『이터널 선샤인』

 

 

영화의제목인Eternelsunshine은영국의시인알렉산더포프(AlexanderPope,1688~1744)의 시 ‘Eloisa to Abelard’(1717)에서 따온 구절이다. 영화 속 라쿠나 회사의 직원인 매리(커스틴 던스트)를 통해서 소개된다. 시인의 한 사람으로서 여러 번 읽게 되는 구절이다.

 

The world forgetting, by the world forgot.

Eterne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Each pray'r accepted, and each wish resign'd.

 

얼굴을 접었다 폈다 하는 듯, 유난히 많이 드러나는 치아, 큰 키에 잘 웃기는 남자 짐 캐리는 잊자. 우수에 젖은 모습으로 말수는 적고 겨울 바다를 거닐며 스케치를 하기도, 핸들을 잡고 눈물 흘리는 ‘조엘’이다. 갖가지 색으로 머리카락 색을 바꾸며 매력을 발산하는 여인, 적극적인 대쉬를 하여 조엘의 마음을 사로잡은 ‘클레멘타인’ 역으로는 영화 『타이타닉』의 ‘로즈’ 역의 케이티 윈슬렛이 맡았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열연한 화가 ‘잭’과 세상 끝날까지 사랑한 연인 ‘로즈’. ‘잭과 로즈’의 사랑과 ‘조엘과 클렘’의 사랑은 시대를 넘어 색깔은 다르지만, 첫눈에 반하고 사랑에 빠져버린 두 청춘 남녀의 열정은 지금까지도 그래왔지만, 앞으로도 꽤 오래도록 스크린을 달굴 것 같다.

 

명장면

꽁꽁 언 챨스 호수를 베고 누운 두 사람이 밤하늘 별자리를 보는 모습은 몽환적인 아름다움까지 겹쳐 그림 같은 장면을 탄생시켰다. 지금 죽어도 좋다고, 이런 느낌 처음이라고, 비로소 내 자리를 찾았다고 행복의 절정에 빠져 있던 조엘과 클렘. 이러한 최고의 행복에 대한 흔적들은 화석처럼 굳어져 결국은 어떤 과학으로도 지우지 못했다.

 

영화『이터널 선샤인』

 

기억이라는 것,

뇌 과학, 호르몬의 작용, 좌뇌, 우뇌, 뇌 혁명, 기계 작동, 양극, 음극 등의 메커니즘적인 뇌 분석보다는 나 자신의 무의식의 향연으로 이해하고 싶다. 에피소드로 끝난 연인들은 기억에 흔적이 남지 않는다. 그러나 추억으로 무장된 연인들에겐 마치 샘 솟듯 기억들이 활성화되어 복원된다. 그 에너지가 애절한 울림이 되어 무의식에 새겨진 사랑의 마음을 깨우는 것이 아닐까.

 

어쩌다 보니 하필 연말에 연인과의 이별을 겪은 분들. 조엘이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새로이 누군가를 사귀었으면 좋겠는데 만날 기회가 희박한 분들, 다시 모르는 여자 또는 남자와 눈 마주치는 것이 겁나는 분들. 알렉산더 포프의 시구처럼 ‘티 없는 마음에 비치는 영원한 햇빛’, 이터널 선샤인처럼 아름다웠던 오래전, 또는 얼마 전의 기억 저장고를 열어보기를. 그래서 그 시간 속으로 그때 그 사람과 기억 속으로 도망쳐보기를. 마치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그들의 사랑이 삭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기억 깊숙한 곳으로 찾아다니며 자연스럽게 판타지를 만들어내듯이 말이다.

 

겨울

사랑하기 좋은 계절이다.


한인경/시인·인천in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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