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편해도 안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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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편해도 안좋아
  • 장재영
  • 승인 2017.11.21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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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장재영 / 공감미술치료센터 기획팀장


요즘 세상 사는게 참 편리해졌구나 싶다. 파릇파릇한 30대 중반의 청년이 아직 할 소리는 아니지만 지금의 청소년들을 바라보며 인생 선배님들의 말을 빌려 숟가락 좀 얹어보자면 사실 내 입장에서도 정말 그렇다.

나의 10대는 20세기, 20대는 21세기와 함께 보냈다. 그리고 30대인 지금에 와서는 4차 산업혁명의 문턱에 다다른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초등학교라는 말이 아직도 가끔 어색할 만큼 국민학교를 나온 거의 마지막 세대로 대학입시가 학력고사에서 수능시험으로 넘어간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고등학교를 다녔다.

내가 다녔던 학교는 작은 동산만한 언덕을 거쳐 올라가면 본격적으로 산에 올라가기 직전에 위치해 있는 학교로 맑은 공기와 45도 경사의 등반 코스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땐 지금처럼 급식이 보편화되지 않았었고 사물함도 비치되어있지 않다보니 한손에는 도시락, 한손에는 실내화주머니를 들고 늘 만삭이 다 되어있는 가방을 메고 매일같이 등교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다리가 튼튼해지고 몸은 건강해지는 웰빙 효과를 기대해볼 수 있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지금의 체력은 그때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듯하다.



<출처:http://blog.naver.com/ribal01/220591517902>


겨울철에 주번이 되면 알루미늄 연통을 들어날라 난로 설치하는 일을 돕곤했다. 각각의 연통들이 이어져 설치된 난로는 좋은 좌석의 구분을 만들어주었는데 당연히 난로에서 멀지않은 자리가 명당이었다.
이따금씩 고구마를 호일에 싸서 몰래 구워먹기도 했는데 적당히 익었다싶으면 아직 익지도 않은 고구마를 호호불며 친구들과 나눠먹던 기억이 난다.

눈이 오던 날이면 45도 경사의 언덕에서 종이박스를 깔고 썰매를 탔다. 물론 학교에서는 위험하다고 못 타게 했었지만 몰래 슬쩍 타고 내려오는 재미도 나름 쏠쏠했던 것 같다. 
이렇게 고등학교 시절을 회상하며 떠오르는 감성들은 생활 전반에 걸쳐 뭔가 분주하고 활동적인 느낌이 든다.

그리고 대학시절을 회상하면서 느껴지는 감성들은 또 다른 느낌이다. 삐삐를 사용하다가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핸드폰이 생겼고 당시 흑백 폰이긴 했으나 집전화가 아닌 다른 전화기를 들고 다닌다는 것은 그 당시 참으로 신선한 자극이었다. 당연히 주력 통신매체가 바뀌자 문화는 자연스럽게 변화되었다. 삐삐에 음성을 남기거나 ‘8282’ ‘7942’ ‘486’ 등의 특정번호를 찍어 소통하던 시절에서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하고 싶은 말을 좀 더 자세히 할 수 있었고 엄지로 모든 것이 소통이 가능하다는 뜻의 ‘엄지족’ 이란 단어도 등장하였다.
핸드폰의 디자인은 유행을 타고 플립, 슬라이드에 이어 폴더로 바뀌었고, 크기가 점점 작아졌다가 성능 좋은 카메라가 장착되면서 다시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20년이라는 시간동안 엄청난 변화를 경험해왔다. 

지금은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다량의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으며
마음만 먹으면 궁금해하던 어떤 물건을 먼저 살펴볼 수 있고 아직 가보지 못한 세상 끝자락 어딘가의 곳곳을 미리 체험해볼 수 있다. 또한, 직접 도서관에 가지않아도 인터넷으로 간단히 논문 검색이 가능하니 연구를 하는 입장에서도 훨씬 수월해진 것 같아 편리하다.
가끔은 “이야~ 정말 이런 세상도 오는구나!” 하고 감탄을 금치 못할 때가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에 비해 직접 몸으로 부딪히는 일들이 귀찮아지고 너무 빠르고 편한 것에 길들여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몸으로 직접 하지않아도 시스템적으로 해결이 되니 단계를 하나 건너뛴 느낌으로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되는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소통하던 문화인 것 같다.
상황에 따라서는 억지로라도 사람들과 함께 도움을 주고받으며 함께 공존했던 것들이 기계로 대치 되면서 굳이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지 않아도 기기에 답만 물어보면 바로 답을 알려주는 식의 단답적인 문화가 형성되고 사회 다방면에서의 소통은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출처: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말려' 중에서>


스마트폰이 생기고 언젠가부터 지하철 및 대중교통 안의 풍경은 확연하게 바뀌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거의 모두가 스마트폰을 들고 한 두 정거장의 짧은 찰나에도 뭔가를 하고 있는 모습이 일상화 되었다.
네비게이션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운전하던 도중 차량의 유리창을 내리고 운전자들끼리 도와가며 길을 물어보는 일은 드문 경우이며 거리에서 지나가던 누군가에게 길을 물어보는 일도 좀 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어쩌면 물어보는 것보다 지도검색을 하는 것이 더 빠르고 정확하기 때문이겠으나 점점 사람들 사이에 대화를 나눌 명분이 줄어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겸사겸사 별거 아닌 인사치례를 건내면서도 얼굴을 부대끼던 문화는 점점 그럴 필요 없는 문화로 변해가고 있으며 누군가가 곁에 없어도 핸드폰만 있으면 혼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혼자라도 굳이 사람을 찾지 않게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혼자 뭐든 할 수 있는 혼밥 혼술의 문화도 자연스레 탄생하게 되었다.

사실 이런 문화의 흐름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누군가와 꼭 함께하지 않아도 혼자서 뭐든 할 수 있다는 입장에서 좀 더 독립적이고 주도성을 갖춘 사람들의 사회가 왔다는 것은 두 팔 벌려 환영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뭔가 사람들 사이에 허물 수 없는 두꺼운 벽이 존재하는 것만 같은
쓸쓸한 느낌도 배제할 수 없는 것 같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날은 점점 싸늘해지니 훈훈하고 뜨끈한 정이 무척이나 그리워진다.

빠르고 편한 것도 무척이나 좋지만,
너무 편해도 안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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