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 조선, 그 속에 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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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 조선, 그 속에 사는 사람들
  • 박주현
  • 승인 2017.12.11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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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박주현 / 대만 중국문화대학교 교환학생

 
 
모두가 외투를 여미고 있었다. 낯선 광경이었다. 공항에 도착하기 전부터 비행기 안은 분주했다. 여기저기서 안전벤트를 푸는 소리가 들렸다. 한국에 돌아왔다는 감회보다 뒤처지면 출국이 한참 늦어지겠다는 걱정이 먼저 들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짐을 찾아 도망치듯 게이트를 빠져나왔다. 나도 모르는 사이 캐리어를 끄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드르륵 드르륵 소리가 뒤에서 따라붙는 것 같았다. 모두가 그런 캐리어를 끌고 움직이고 있었다. 한국에 돌아왔다는 실감이 났다. 가족을 볼 생각에 기쁘기는 했지만, 날은 추웠고, 공기는 건조했고, 바람은 매서웠다. 솔직히 말하자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대만이라는 나라에 1여 년간 머물렀다. 타이베이에 머무른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았고, 비교적 시골인 대만 중부 자이시(嘉義市)에 살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나는 이 작은 섬나라를 좋아하게 되었다. 가장 큰 이유는 물론 차(茶)였지만, 그 외에도 내 마음을 움직이는 여러 원인이 있었다. 따듯한 날씨, 친절한 사람들, 싸고 맛있는 음식과 과일, 그리고 여유. 차밭에서 농사를 지으며 사는 상상도 꽤 여러 번 했던 것 같다. 대만에서 짝을 찾아 정착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이 꽉 들어찬 지하철에 오르자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열차 문이 열리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들어왔다. 찬 공기가 훅 하고 함께 들어왔다. 퇴근 시간, 많은 이들이 피로해보였다. 찬 공기가 아닌 무언가 다른 기류가 사람들 사이에 흐르고 있었다. 헬조선. 들여다 본 휴대폰 속에는 그런 단어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헬조선. 내가 느낀 그 이상한 기류는 헬조선이라는 용어와 절묘하게 맞물려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피곤에 찌든 사람들. 취업, 결혼 등을 걱정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흐르는 그 분위기. 헬조선이라는 용어가 등장한지는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지금은 너무 자연스레 쓰인다. 큰 공감을 얻으며 쓰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국을 지옥이라고 부르는데 더 이상 이질감을 느끼지 않는다. 한참 뒷북일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이야기를 해 보고 싶다. 우리들의 헬 조선에 대해서 말이다.
 
인터넷은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며, 전화 한 통이면 어떤 음식이든 문 앞까지 가져다주는 나라. 모든 것을 스마트폰 하나로 해결 가능하고, 밤새도록 휘황찬란한 불빛 아래 술을 마실 수 있는 나라. 세상 천지에 이렇게 편리하고, 많은 것이 갖추어진 나라가 몇이나 될까.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지옥이라 불린다. 나는 사람들이 스스로 고통을 만들어내고 있는 부분도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너무 많은 것이 ‘갖추어져’있다. 우리는 좋은 것, 편한 것을 너무 많이 알아버렸다.

조금 불경하지만, 부처님을 예로 들고 싶다. 부처님, 고타마 싯다르타는 카필라국의 왕자로 태어났다. 그가 성인이 되기까지 살았던 성문 안의 세계는 모든 것이 아름다웠고,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었다. 그랬기에, 그가 성문 밖에서 마주하게 된 것들이 그에게 ‘고통’이었던 것이다. 병자와 노인, 그리고 죽음. ‘성 밖’에서 살던 사람들에게 그것은 이미 삶의 일부였다. 당연한 것이고,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갖추어진 세계에서 살던 부처님에게는 달랐다. 더 아름답고, 건강한 것을 수 없이 보아왔으니까 말이다.
 
지금까지 한국에 살던 사람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보다 빠른 인터넷을 알기 때문에. 보다 편하게 주문할 수 있는 방법을 알기 때문에. 보다 아름다운 것, 보다 편안하고 안락한 것, 보다 재미있는 것, 보다 자극적인 것을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마음대로, 자유롭게 영위할 수 없는 것이 고통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헬조선에선 먹고 살기 힘들고,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고, 끝없이 경쟁하고 노력해야한다고 말한다. 그래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눈을 조금만 낮추면 되지 않느냐는 목소리도 있다.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를 살펴보면 그네들의 삶은 우리 입장에서는 그다지 풍족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진부한 말이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을 조금만 덜 의식하고, 더 좋은 것에 대한 마음을 조금 내려놓으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지옥에 가보지 않아 지옥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지옥을 생각하면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이 먼저 떠오른다. 어쩌면 그 고통은 본인 스스로가, 혹은 함께 살고 있는 ‘우리’가 만들어 낸 환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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