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볼록 엠보싱, 석남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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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볼록 엠보싱, 석남동
  • 유광식
  • 승인 2017.12.21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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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유광식 / 사진작가
▲ 유광식_율도 입구 삼거리의 네개동 보도육교(경인고속도로 구간에 일정 간격으로 이 같은 육교가 있다.)_2017


작년 봄, 서구 석남동으로 자의반 타의반 이사를 오게 되었다. 당시엔 유흥가 뒤쪽의 주택가에 자리 잡았다가, 채 1년도 안되어 원적산 기슭으로 다시 집을 옮기게 되었다. 많은 서민들이 이사를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할 만큼 도시의 주말 그림자는 짙다. 인구 50만의 서구에서 청라쪽 18만, 검단 15만을 빼고 나머지 18만 중 1/3인 5.5만이 석남동에 거주한다. 남북으로 뻗은 원적산을 사이로 서구와 부평구가 자리하고 있으며, 바다 쪽에는 인천화력(가스)발전소와 SK석유화학공장의 큰 굴뚝이 솟아있어 석남동의 풍경을 채운다. 이사한 후에 이곳의 공기가 나쁘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얼마간은 미세먼지 농도 등을 확인하며 대기상태를 살피곤 했다. 하지만 대기는 오히려 컨테이너 트럭이 많이 다니는 동구와 중구 항만 지역이 더 나빴다. '그럴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 유광식_빨간 닭의 해, 정유년이 저물고 있다. 꼭끼오!(신동아A 상가의 실외기 진열대)_2017

▲ 유광식_어느 상가 앞 주차구역 알박기(번뜩이는 아이디어!)_2017


석남동은 성인나이트클럽 체인인 ‘국빈관’의 존재로만 알았지, 나의 거주지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생소한 마음에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거닐다 보니 인식은 조금씩 달라졌다. 동인천역이 그랬듯이 석남고가사거리(국빈관 사거리)도 교통이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평, 동암, 주안, 동인천으로의 이동이 편리할 뿐만 아니라, 서울로 오고가는 광역(삼화)버스도 있고, 공항철도 이용도 가깝다. 원적산 터널만 지나면 바로 산곡동과 부평구청에 다다르지만, 안타깝게도 걸어서는 통과를 못해서 버스를 자주 이용하게 된다. 서구는 원적산을 경계로 동쪽의 부평과는 분리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중교통은 모두 석남동에서 꺾어 부평으로 향하는 큰 흐름이 존재했다. 오히려 동암, 주안, 동인천은 구노선이 되었고 부평이 신노선격으로 더욱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이는 터널 덕이기도 하겠고 이후 개통될 7호선 연장으로 더할 것임은 틀림없다. 작년 8월부터는 인천지하철 2호선이 개통되면서 인천을 남북으로 잇는 더욱 핫한 곳이 되었는데, 때를 놓칠까 싶었는지 7호선 연장공사와 더불어 동네 곳곳의 기존건물이 헐리고는 10층 이상의 도심형아파트가 죽순 자라듯 공사다망했다. 주거지를 경인고속도로가 동서를 가르고 있는 원적산 아래쪽으로 다시 옮긴 후로는 의외로 조용하고 차분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경인고속도로는 12월부터 일반도로 전환과정으로 통행속도를 제한하고 있다. 여전히 자동차와 바람의 쌩쌩 경주는 지속되고 있지만 말이다.



▲ 유광식_맑고 청명한 날! 검정 콧구멍 같은 원적산 서측 터널입구_2017

▲ 유광식_석남제1고가교에서 바라 본 경인고속도로(서울방향)와 7호선 연장 환승역 공사현장 크레인.(일반화도로 사업으로 차후에 방음벽이 제거될 예정이다.)_2017


개펄 밭이 공장 밭이 되어 많은 사람들의 생계를 이어 준 석남동. 이곳에는 거북탕(용궁)에서 사우나를 하고 나와 주전부리하는 거북시장(뭍)이 있다. 이름도 이름이지만 이면도로를 점유해 생성된, 외국인노동자도 많이 이용하는 재미난 노상의 시장이다. 서북쪽으로는 강남시장이 있다. 한편, 서구사람만 아는 것이지만 경인고속도로 탓에 동네에는 육교가 상당히 많다. 육교는 사람 뿐 아니라 자전거, 오토바이, 야쿠르트 이동차가 골고루 섞여 동서의 주민들을 이어주고 있다. 동인천 시절엔 지하도를 많이 드나들었는데, 여기는 육교 없이는 다니지 못하는 곳이라는 사실에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지하라고 하면 깊게 파인 2호선 라인이 경인고속도로 아래로 위치한다. 어디든 그랬지만 산기슭과 경인고속도로를 따라서 '가좌동-석남동-가정동'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많은 집들이 오밀조밀 위치해 있다는 것에 놀랐다. 참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그야말로 주전(宙田)을 꿰차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동인천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학생들의 출현도 많아 활기도 있고 말이다. 걷다가 신기했던 것은 동서로 혹은 남북으로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는 리듬의 발견이었다. 그렇게 조금 빠르게 걸으며 마치 잔잔한 파도를 맞듯이 이곳이 바다가 아닐까하는 마음에 젖어들었다. 그러면서 과거 TV에서 획기적인 화장지라고 선전하던 엠보싱화장지 '뽀삐'가 떠올랐다. 이 일로 인해 석남동에 대한 마음이 삭막함에서 다정함으로 바뀐 것 같다. 어디든 일말의 이유는 있을 터다.



▲ 유광식_거북시장 입구의 거북탕 상가(다양한 국적의 사람 드나듬을 엿볼 수 있다.)_2016

▲ 유광식_여름, 석남체육공원에서 경인고속도로 위의 어느 육교를 오르는 어르신_2017


석남동도 현재 대다수의 거주구역이 주택재개발지역이라는 팻말을 달고 있다. 그렇지만 이곳은 송림동과 십정동, 용현동 등 옛 구도심격의 산동네가 아닌, 산업화시대로 말미암아 몰려든 노동력의 거주밀집지로 온도를 높여 둔 특성 있는 인천의 장소다. 그리고 검단까지 포함한 서구의 중심 노릇을 한다는 생각이다. 또한 만 명이 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세계 각국에서 바다를 통해 들어 온 거북이마냥 끈질기게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거북시장 부근엔 노동자 전출입으로 말미암은 중고물품 판매점포가 많다. 길을 걷다 보면 장바구니를 들고 걸어가거나, 친한 지인들과 마주치며 인사를 나누는 외국인들의 모습이 익숙하게 보인다. 다변화된 생활구석이 시큼하지 않고 무심히 느껴지는 이유는 내가 미처 알지 못한 그만한 시간층이 존재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달이 새는 세(임차료)로 말미암아 이곳에 오래 있을 것이란 염두는 두지 못한다. 다만 사는 동안만큼은 장소를 아끼며 엠보싱 화장지 감촉처럼 지내자는 마음이다. 석남동은 바다 끝 원적산이 보듬고 있는 서해 뻘 동네로, 해질녘 볕이 은은하게 달아오르는 곳이다. 청소년과 젊은 층은 이곳을 발판삼아 살고는 있지만, 되도록 이곳에서 빨리 탈출하고자 할 것이다. 그렇지만 언젠가 그 시절 석양의 온기를 추억하게 될 것임을 나는 안다. 


▲ 유광식_문화빌라 옆 아름다운 연출?(정말 아름다운 건물로 지어 주시길)_2017

▲ 유광식_낙원C! 오란씨? 낙원연립.(곳곳에 저층 주거 연립주택이 즐비해 있다.)_2017


동네를 산책하는 동안 길가의 전봇대 주변으로 고양이의 먹이와 물을 공급하는 분들을 종종 보았다. 추운 겨울이 되자 그분들의 활동은 오히려 더욱 세심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서로가 자신이 아닌 또 다른 개체의 존재를 의식하고 보듬는 모습에 마음이 뜨끈해졌다. 한편, 가까운 지인이 사는 청라의 한 아파트에는 최근 단지 내 재롱둥이가 된 고양이 가족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전단지가 엘리베이터에 나붙었다. 추운 겨울이다. 누군가는 자신들만을 감싸 안을 그 모진 추위에도, 삶의 질긴 연대는 이어지고 지속된다. 복잡한 도로와 집들 사이로 내일을 꿈꾸며 오늘을 걸어가는 많은 존재들이 있다. 육교 계단을 오르는 노인도, 버스를 기다리는 학생도,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귀가하는 노동자도 모두 석남동이 품고 있는 풍경이다.



▲ 유광식_초여름 밤, 경인고속도로 옆 별장여관(네온사인조차 시대성을 띈다.)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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