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도 휴식이고 힐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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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도 휴식이고 힐링이다
  • 안정환
  • 승인 2017.12.18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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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안정환 / 연세대학교 의공학부

늘 그래왔듯이 과자나 술안주를 사기 위해 편의점 문을 연다. 밤 11시. 이 시간쯤이면 항상 만나볼 수 있는 아르바이트생이 초점 없는 동공으로 나를 맞이한다. 늘 먹던 주전부리 몇 개와 사이다를 고르고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문득, 알바생의 핸드폰이 눈에 띈다. 화려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손가락 마디만한 캐릭터가 괴물에게 쫓기는, 화면이 터질세라 현란한 이펙트를 선보이며 작렬한다. 알바생의 초점은 어디에 맞춰져 있었던 것일까. 그의 얼굴을 쳐다보니 감정없는 초점은 조금 더 먼 허공에 가있다. 화면을 가득 채운 캐릭터의 스펙이 나름 게임좀 하는 것 같은데 그저 검지와 중지로 몇 번 톡톡거리거나 슥 훑어보며 무신경한 터치가 반복된다. 사실 이런 모습은 20대들에게 그리 어색한 장면은 아니다.

 

포털사이트를 들어가거나 TV를 켜면 눈에 확 들어오는 각종 핸드폰 게임 광고. 얼굴만 보면 알만한 예쁜 연예인들이 나와서 우리의 시선을 끈다. 신스틸적인 캐릭터와 각종 이펙트를 뽐내는 신작들과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명작 게임들의 귀환이 우리를 자극하고 유도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이끌려 게임을 시작해보면 게임 인터페이스나 시스템은 비슷하다. 자동으로 설정하면 자기가 알아서 사냥하고 성장한다. 편의점 알바생에게 게임이 재밌냐 물으니 재미는 모르겠고 일종의 휴식이란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일을 하면서 다른 한쪽 인지로는 게임을 하는 모습은 어른 세대 시선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듯하다. 휴식이란 몸과 마음이 가장 편안한 상태를 뜻함인데 시대의 흐름이 게임에 대한 패러다임도 바꾸어 가고 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게임을 좋아했다. 학업스트레스가 머리끝까지 차올랐을 때 어김없이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름 모를 누군가와, 어쩌면 나보다 실력자일 상대를 이기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대처하며 승리와 패배를 가르는 스릴을 즐겼다. 이때 게임은 일종의 유희였고 승부에 집중할 수 있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게임은 집중과 전략이 필요한 활동. 한 편으로 시대가 원하는 목표에 닿기 위해 많은 시간을 쏟는 우리. 그 속에서 게임은 경쟁과 좌절, 심리적 조바심에서 잠시 벗어나 무념무상으로 즐길 수 있는 휴식의 대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적어도 치열한 사회의 민낯에 노출되어 있는 젊은이들에게 ‘또 게임?’이라는 비난에 앞서 ‘어떻게 게임이 휴식이어야만 하는가’를 한번쯤 고민해 봐야 한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의 『피로사회』는 말한다. 스스로를 착취해가는 성과사회에서 긍정과 부정 모두를 녹여낸 ‘피로’라는 개념이 우리를 위로하고 휴식을 취하게 만들어 현대인들의 과열된 스트레스를 소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한병철 교수의 말대로 피로사회로 가고있는 지금 어쩌면 초점없이 두드리는 핸드폰 게임이야말로 이미 피로사회가 도래한 증거물일 수도 있다. 몇 인치 안 되는 작은 화면에서 터지는 화려한 이펙트가 하루 동안 받은 긍정과 부정의 고민들을 날려버리고 온전하게 휴식을 즐기는 방식으로 말이다.

 

어렸을 때 나는 게임은 나쁜 거라고 배웠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말랑한 사고를 비뚤게 이끌고 귀중한 시간을 앗아가며 심하면 중독에까지 빠질 수 있는 활동이라고 교육 받았다. 실제로 게임 때문에 나는 소중한 기회를 놓쳐버리거나 후회를 하게 되는 상황에 놓여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장점과 단점으로 구분한 단순한 교육법으로 이미 거대 산업이 된 게임을 정의해서는 안된다. 물론 학업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 너무 빠지는 것은 게임의 함정이지만 이미 휴식의 대안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게임은 다시 규정돼야 한다.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작은 즐거움이 자신의 하루를 충분히 위로해줄 수 있다면 기어이 도래할 피로사회를 맞이하는 나름의 방법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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