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라는 삶의 현장을 기록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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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라는 삶의 현장을 기록한다는 것
  • 강영희
  • 승인 2017.12.28 0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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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사진으로 되돌아 본 2017년 배다리


@도원역 인근 배다리로 가는 철로변길 초입


오늘은 ‘상당히 춥다.’는 출근길에 햇살은 눈이 부셨고, 오랜만에 호호 손을 부비고 입김을 쐬며 사진을 찍었지만 걱정했던 것만큼 춥지는 않았다. 짧은 기간 불성실하게 사용했던 가습기 살균제 덕에 기도가 약해져서 담배연기 등에 민감해서 차가운 공기보다 어디로부터인가 달려드는 담배연기가 더 고통스러운데 인후염까지 겹쳐 더 힘들었다.

 

그래서인지 미세먼지 가득한 따뜻한 날보다는 차갑지만 맑은 공기가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날이기도 했다. 게다가 눈부신 겨울 햇살 덕에 선글라스까지 썼는데 한층 짙어진 그림자가 날카로운 공기 속에서 매혹적인 겨울 풍경을 만들어냈다. 눈으로 보는 만큼을 사진으로 담아내지 못하는 내가 그리고 내 사진기가 좀 아쉬웠을 뿐이다.

 

차가운 외부 날씨 덕에 사진관과 카페는 오히려 포근했다. 갤러리 등을 켜고, 스피커를 바깥으로 내놓고 음악을 틀고, 전기 포트에 물을 끓여 유리 주전자에 옮겨 담고 이웃 어르신이 나눠주신 작두콩 볶은 것을 몇 개 넣어 초를 켠 워머 위에 올려둔다. 차가운 날씨, 막 카페에 들어선 누군가에게 커피가 내려질 동안 가볍게 몸을 데워줄 작두콩차다. 남은 물로 커피를 내려 작업실 탁자에 앉는다.




@ 한점갤러리


@히말라야시타가 있는 철로변길
 


‘오늘은 ... ’ 이라고 쓰며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점검한다. 어제 처리한 정산은 문제가 없는지 문자를 보래놓고, 엄마는 병원을 다녀오셨는지 전화로 확인한다. 농성장에서 쓸 수 있는 MP3플레이어를 찾아 음악자료를 정리하면서 냉장고에 넣어둔 일주일쯤 된 도시락을 데워 먹으며 인터넷 브라우저를 열어 <인천in>에 접속. 휘리릭 어떤 기사들이 있는지 눈으로 훑어보고, 기사 등록 페이지를 연다.

 

그러고 보니 올해 마지막 <배다리통신>, 무슨 이야기로 마무리할까 되뇌다가 사진폴더를 연다. ‘2017 / 2017-01 / 2017-01-01-10’ 부터 열었다. 비슷한 사진 중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을 삭제하고, 올 한 해의 줄거리가 되어줄 사진을 한 장씩 골라 폴더로 옮기며 정리를 시작하기로 했는데 1월만 16장, 전체를 훑어보고 고르기로 한다.

 

언제나 첫 사진은 도원역에서 작업실로 가는 철로변길 초입.

 

건물과 길이 내려다보이고, 멀리 자유공원과 답동성당 종루, 그리고 눈에 익은 우주왕복선 같은 모양의 교회건물 외관이 눈에 들어와 정작 동인천역에서는 보지 못하는 스카이라인을 직접 감상할 수 있다. 정작 마을을 모두 보려면 육교를 건너는 입구로 가거나 문화극장이 있었던 문화빌딩 위로 올라가야 볼 수 있다.

 

우신양복점 앞에 아이들 사진. 어느 고등학교 3학년 친구들이 졸업을 앞두고 사진을 찍으러 왔다며 단체사진을 찍는데 애를 먹기에 사진을 찍어줬던 기억이 떠올랐다. 실내 작업 중인 금속공방 곳곳의 모습이 담겨있다. 지금과는 약간 다른 카페 ‘한점’ 내부, 동생 손을 꼭 잡고 엄마를 따라가는 파란 외투의 소년의 뒷모습도 인상적이다.
 


@ 8-90년대식 컨셉으로 졸업사진을 찍으러 온 고등학생들._2017. 1. 3.


‘히말라야 시타’라는 멋진 정원수가 심어진 철로변길, 겨울비 속에 주황색 몸 털을 가진 새 한 마리, 친구들과 바닷가에서 찍은 사진, 금창석유집 보일러를 덮은 천위에 있는 어린 고양이 한 마리, 겨울 햇살 속에 산비둘기, 그러다 친구들이 바닷가에서 서 있는 모습과 유한상사 강아지 ‘보리’, 배다리 안내소의 고양이 ‘반달이’, 하늘색 전화박스며 눈 덮인 마른 꽃, 그리고 첫째 조카의 결혼식 모습이 이어진다.

 

텃밭에 박힌 <경작금지> 현수막, 구청 건물로 들어서는 텃밭 주민들, ‘맞다. 올 한해 구청과의 갈등은 저걸로 시작됐지.’ 그리고 라틴계 외국인 청년과 낯선 그리고 곧 이웃이 된 조은숙씨가 어제(12/26) 군대에 간 둘째 아들과 함께 한점갤러리에서 찍은 단체사진. ‘엘 살바도르 데이!, 그랬지 그때, 내년 2월에도 한 번 할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인천in 관련기사 참고)

 

창영초교 3.1절 행사 무대와 회색 플라스틱 의자가 운동장을 채우고, 중간중간 비워진 의자가 눈에 들어왔다. “송림 뉴스테이 지역 사람들이 안와서 빈 자리”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났다. 무대 앞자리에 한 보라색 앙고라 스웨터에 하얀 털모자를 쓰고 태극기를 들고 있는 할머니, 하얀 저고리, 검정 치마를 입은 앳된 소녀들. 태극기를 들고 앉아있는 동구 주민들. 유정복 인천시장과 이흥수 동구청장이 검은 두루마기를 입고 태극기를 들고 시가행진 퍼포먼스를 한다. 사물놀이패를 앞세운 행렬이 배다리전통시장 거리로 들어가는 모습까지 찍혀있다. (인천in 관련기사 참고)

 

그리고 이어진 사진 멀리 수도국산 언덕 위 솔빛아파트까지 뻥 뚫렸던 공터를 막고 갑자기 왠 건물을 세우기 시작한 것. ‘갇히네, 막히네.’ 하며 답답해했던 그때의 느낌과 함께 ‘이런 배다리라면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던 기억도 함께 떠올랐다.



   


높은 곳에서 찍은 눈 쌓인 배다리와 송림로, 수도국산 주변, 철길이 다니는 배다리 헌책방거리도 보인다. 금곡로와 송림로 사이에 만들어진 모델하우스 앞에서 집회, 동인천역 북광장에서의 촛불집회, 제2 외곽순환고속도로 진출입로 집회, 시청 계단 앞에서의 기자회견, ‘전면이주’ 손 현수막을 든 어르신들 모습은 삼두아파트 시위, 산업도로공터-지금은 텃밭정원이라 부른다-에서 주민들과 공무원들이 함께 있는 사진 여러 장에는 다양한 표정과 장면들이 이어진다.

 

그 사이에 아벨전시관 시다락방, 유동현씨와 배성수씨, 출판기념회 현수막 사진. 더 클래식 김광진의 ‘배다리’ 노랫말이 적힌 종이가 사진관 유리창에 붙어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집회와 기자회견, 시위 사진들 .. 벌써 몇 시간째인데 겨우 4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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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0일 송림로 옆 송현터널 입구, 중동구 관통도로 전면폐기 현수막과 함께 100일이 된 천막농성장 하얀 칠판, 바느질과 뜨개로 만든 현수막이 걸린 사진이다.

 

헌책방거리는 지중화사업으로 파헤쳐지고 묻고 덮기를 반복하고 있고, 인천양조장 대문 옆으로는 기와를 얹은 건물이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개코막걸리는 셔터가 내려진 지 어느새 두 달이 넘었고, 아벨전시관에는 마지막 시낭송회 현수막과 고여 우문국 선생의 ‘50년 예술세계’가 그림과 함께 전시되고 있다.

 

비가 많이 내렸던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배다리 요일가게에서 ‘쓸친소’라는 파티가 있었다. 배다리 주민들과 배다리 또는 ‘달이네’와 인연을 맺은 지인들이 음식과 음료를 나누며 소회를 푸는 자리로 벌써 4년째를 맞았다. 몇몇 지인들로 시작한 모임은 요일가게를 가득 채우는 연회가 되었다.

 

그렇게 안팎으로 배다리과 그 주변의 여러 가지 일들을 사람들과 공유하며 지내온 시간이 담긴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긴 시간 다양한 활동을 통해 배다리를 알리고 살찌워온 모습이기도 하다.




 


일상에 문화예술과 사람을 더하는 일이었다. 공터와 텃밭을 가꾸고, 밥을 나눠먹고, 가게를 여는 일, 그러면서 이웃과 공동체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 일이 마을을 지키는 일이고, 그 모든 일이 일어나는 곳이 곧 ‘현장’이다.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있어 티격태격하며 웃고 떠들고 시끌벅적한 곳이 ‘마을이라는 현장’이다.

 

누군가가 자신만의 목소리로 누가 더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하다고 해버리는 순간 그 현장은 깨져버린다. 어쩌면 길고 지루한 논의와 합의의 과정은 각자의 현장을 어우러지게 하는 중요한 이해의 시간이다.

 

함께하는 그 이해의 시간- 논의와 합의의 과정을 섣부르게 생략해버리면 지난 9년과 같은 시간이 된다. 함께 사는 일은 다양한 각자의 삶=현장만큼 많은 갈등이 존재한다. 그래서 시끄럽고 복잡하고 힘들다. 각자의 현장에 최선을 다하는 일 만큼 되 남의 현장에 대한 배려와 이해를 통해 조율하며 살아가는 지혜를 가꾸는 일이 민주주의라는 것을 우리는 지난해 이맘때 깨닫지 않았던가.

비도 서너 번 오고, 눈도 서너 번 내렸다 녹고, 한파도 서너 번 왔다 갔다하면서 한 해가 저물고 있다. 


2 주에 한 번이면 글을 쓰기에 그리 부족한 시간은 아니지만 살아가는 중에는 글을 써야할 날이 오면 언제나 시간이 부족하다. 그런 핑계로 엉성한 글을 쓰면서 때때로 부끄럽기도 했지만 알리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펼쳐 담아낼 기회를 준 <인천in>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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