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불빛 반짝이던, 청천·산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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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불빛 반짝이던, 청천·산곡동
  • 유광식
  • 승인 2018.02.23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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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유광식 / 사진작가
▲ 유광식_뫼골공원에 위치한 구)화장실 외벽 벽화(4면을 봄여름가을겨울 풍경으로 그렸는데 은근히 맘에 든다. 유치하지도 않고 세련되지도 않은.)_2017


한남정맥의 인천구간에서 동쪽 구릉지에 자리 잡은 산곡동은 청천동과 더불어 옛날 드넓은 마장(馬場)이었다. 지금은 말은 온데간데없고 개발의 말만이 무성할 뿐이다. 산곡동은 미군기지 뿐만 아니라 대규모 아파트 단지도 많고 서구와 연결되는 원적산터널 주변으로는 옛 사택과 일반주택이 가지런히 분포되어 있다. 간간히 맛좋은 만두집과 곱창집, 중화요리집, 백반집을 알아 두며 산곡동을 걷고 있는데, 최근에는 이곳으로 작업실을 얻는 분들이 생기면서 보다 친근하게 다가온다. 산 아래 집들이 대개 1층들이라 시야가 매우 시원하다. 늘 생각하지만 하늘을 가벼이 올려다 볼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단 마음이다. 키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지만 포근함은 겉모습만 보더라도 아파트를 뺨친다. 대신 어디에서나 보이는 빨간 대형마트(롯데마트) 간판이 대조적으로 차갑지만 말이다. 세월에 다듬어진 물렁함이 묻어나는 구석이 많아 걸음이 가볍고 화사한 모양이지만 응당 이런 곳들에 대한 애정 어린 상상은 조금 다급해지는 방향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조만간 재정비 명목으로 사라질 것인데, 군데군데 포클레인이 콘크리트를 긁는 소리가 마치 물 없이 쌀겨를 씹는 기분이다. 예상한 모습일진데 왜 그리 조용히 슬퍼질까 모르겠다. 산을 좋아하는 아이는 이름조차 산곡동이라 더 그랬는지 모를 일이다. 


▲ 유광식_산곡초 앞 산곡시장 골목 안쪽 구)백마극장 외관(백마장은 산곡동의 다른 이름이다.)_2017

▲ 유광식_뫼골공원 아래 상가 뒷편 골목(부평의 원도심 청천동과 산곡동. 이 곳의 전기는 과연 어떻게 쓰일까?)_2017


산곡동과 청천동 사이에는 뫼골공원이 있다. 항간에는 택시기사 분들이 공원 앞 산곡볼링센터는 잘 안다고 하던데, 바로 앞 뫼골공원을 얘기하면 잘 모른다고 하니 의아스럽다. 그 아래로 가면 구)영아다방 사거리가 나오고 더 내려가면 GM부평공장 서문이 나온다. 뫼골공원에서는 단오 마을잔치가 주민과 활동가들의 노력으로 매 해 이어져오고 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취소한 것 빼고는 매년 진행해 왔는데, 어느덧 16회(2017년)를 맞이했다. 마을잔치는 평소에는 쉽게 볼 수 없던 남녀노소를 한데 볼 수 있는 기회이다. 아이들은 엄마들과 체험놀이를 하고 청소년들은 진행보조와 더불어 끼를 발산하는 역할을 한다. 어른들은 곳곳에 배치되어 행사를 이끌며, 어르신들은 음식, 한방진료, 풍악에 취해 이웃들에게 감사함을 전하는 시간을 보낸다. 뜨거운 햇살만큼이나 뜨거운 자리로 돋보인다. 2008년으로 기억하는 잔치에서는 그 넓은 공간에 줄과 비닐만을 이용하여 볕가림막을 만든 것을 보고는 조금 흥분이 일었다. 유년시절, 운동회를 앞두고 학교 운동장에는 몇 개의 천막을 치기 마련이었다. 천막은 내게 잔치의 또 다른 이미지로 다가오며 설렘을 주었다. 청천·산곡 마을단오제는 한동안 못가보다가 최근에 다시 접하게 되면서부터 몇 분들과 대화도 오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청천동이 재개발사업으로 인해 먼저 마을이 비면서 잔치분위기도 절반 격으로 나뉘더라는 안타까운 말도 듣게 되었다. 이제는 오랜 세월만큼이나 아이들은 자랐고 어른들은 더 나이가 들어 마을환경도 변해버렸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임에 틀림없다. 


▲ 유광식_세월천 자락으로 산곡볼링센터 앞 노상풍경(철이라 그런지 마늘이 실하다.)_2017

▲ 유광식_2017년 5월에 열린 16회 청천·산곡 마을단오제 중 청소년들의 뽐내기 공연_2017


인천 부평에는 군산공장의 두 배가 넘는 규모의 GM부평공장이 있다. 청천동에 위치한 GM부평공장은 직간접적으로 10만여 명의 삶과 링크되어 있다. 규모가 매우 큰 공장으로, 인천은 늘 이곳의 동향을 중시했다. 2001년 대량해고사태가 불러온 지역사회 구조변화 이후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마을(淸川)은 오염이 되었던 게 분명하다. 정방형인 공장의 서문에서는 지난 2010년 ‘삼박자’라는 이름하에 비정규 해고노동자들과 함께 천막농성을 지지하는 프로젝트를 이끌기도 했다. 프로젝트를 마칠 무렵에 두 노동자는 정문 고공아치에 올라가 시위를 벌였다. 다행히 협상이 이루어져 3년이 넘는 농성에 종지부를 찍었지만 흡족할 만한 결과의 모습은 되지 못했던 모양이다. 시간은 흘러 연일 스케이트 날이 하얀 얼음을 가르는 평창올림픽 시즌이 되었다. 경기를 응원하던 중 난데없이 난입한 GM본사의 군산공장 폐쇄결정으로 GM부평공장이 있는 인천은 금세 얼음장이 되었다. 설 명절에도 좌불안석이었다. 지금의 상황은 현 정부와 시민들이 어려운 시험을 치르는 형국이 아닐 수 없다. 빨라지는 산업구조의 변화로 앞으로 이런 일은 더 많이 일어날 것 같은데, 발 빠른 대응매뉴얼을 갖추는 것이 절실해 보인다. 요즘 부평을 지날때 공장 안 높은 굴뚝의 연기를 보면서 그 때의 활동이 아릿하게 드리워지곤 하는데, 뉴스 하나하나가 마치 빙상경기만큼 초조하다.  


▲ 유광식_함께 그리는 걸개그림(중앙의 노동자는 걸개 완성 후 다른 노동자 한 명과 함께 정문 아치에 올랐다가 2달여 만에 내려 왔다. 추운 겨울이었다.)_2010

▲ 유광식_농성지지를 위해 예술인, 지역활동가, GM대우비정규직 노동자가 함께 완성한 대형걸개(노동미술굿 기획 일환으로 성효숙 작가 진행)_2010


공장 주변에는 노동자들의 거처가 많이 존재한다. 기존주택부터 높다란 아파트, 동네 특유의 영단주택까지 모두 시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한 지붕 아래 길다랗게 비엔나소시지처럼 줄줄이다. 청천동 ‘국민주택’이 아담하니 따뜻해 보이지만 조만간 비워내야 하는 피해 갈 수 없는 재개발의 땅이다. 주택 못지않게 상가거리와 선술집, 생활공장들의 모습들도 내게는 반갑지만, 바꿔 생각해 보면 선택도 사치이던 시절의 피치 못할 환경이기도 했을 것이다. 간판 자체만으로도 시대와 생활상을 증언하는데, 이곳을 지날 적에는 동네의 사물들이 내게 소곤소곤하는 것처럼 이야기가 들리는 것도 같다. 뫼골공원과 그 위쪽의 광명연립, 오순도순공부방, 햇살공부방도 튀어 나온다. 장수산 아래라고 모두가 장수는 아니듯이, 청천동 마을은 뉴스테이 사업으로 현재 건설절차가 진행 중이다. 그렇게 간다. 그 큰 GM공장도 술렁이는데 허름한 집 한 채 온전하겠는가? 청천동과 산곡동, GM부평공장의 삼각형은 불안하게 일그러지고 있다. 산곡동 미군기지 터는 탁해져 넘어오고 청천동 큰 공장은 추위 아닌 추위에 떨고 있으며 주택은 재정비에 이길 턱이 없으니 말이다. 이렇게 저렇게 말이 많은 건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 유광식_청천동 뉴스테이 철거현장(한 번은 가림막 안으로 잘못 들어섰다가 헤맸다.)_2017

▲ 유광식_산곡동 주택가 큰 거리(과거 번성의 여운이 짙은 거리로 읽히지만 지금은 노년이 짙다. 멀리 미군기지였던 현 한양A 단지가 보인다.)_2018


청천이나 산곡이나 산과 물이라는 속내는 같다.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는 이야기일 수 있다. 먼 옛날이야기가 아닌 곳이었지만 현대에 와서 이곳의 산업단지로 인해 대기, 토양, 수질, 소음, 먼지 등이 복합적으로 거주민들을 위협하고 있다. 군수공장은 사람들을 끌어 모았고 사람들이 거주할 주택이 필요해졌다. 집을 짓다 보니 돌이 산에서 굴러 내려오는 게 아니라 이젠 콘크리트로 대표되는 아파트 몸체가 아래로부터 산 쪽으로 기어오르며 동네의 풍경을 잠식하고 있다. 봉우리만 남는 일은 없을 테지만 거주와 노동에 대해 한 곳에 너무 집적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드넓은 마장의 면적이 주는 부피감이 더는 주거지나 자본으로서의 높이로 사라지지 않도록 균형계획이 펼쳐지길 바래본다. 결국 ‘동네야 놀자’는 ‘청천·산곡동에서 놀자’로 해법풀이 될 것이다.


▲ 유광식_내려다 본 청천동 청수사거리 아래 국민주택 단지(이주에너지가 급속충전중이다.)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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