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과 예술을 분리하지 않은 민예적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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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과 예술을 분리하지 않은 민예적인 것"
  • 이권형
  • 승인 2018.03.11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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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이권형 / 음악가


 

2014년 10월 3일, 벌건 대낮의 신포동 차도 위에 없던 길이 났다. 차를 막아선 현수막,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댄스 음악이 울리는 ‘구루부구루마'를 따라 길 위를 지나는 사람들, 누군가는 주변 건물 옥상에서 그 순간을 기록했다. 거짓말처럼 갈라진 홍해를 건너듯 사람들이 차도 위를 걸었다.

 

새삼스럽게 그때가 떠오른 건 그 차도에 설치된 횡단보도의 존재감 때문이었다. 최근 동인천지하상가 공사로 인해 지하로가 막혀있어 여지없이 횡단보도를 건너야 했다. 4년 전이었다면 먼 길을 돌아가야 했을 것이다. 1km나 되는 차도에 횡단보도가 하나도 없었으니까.

 

2014년 당시, 중구에서는 우현로 39번 길 골목에 11억 5천여만 원을 투입해 개항 ‘개항각국거리조성사업'을 진행한다는 얘기가 한창이었다. 인천시 역시 ‘러시아거리조성사업’에 1억 원을 편성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지역민들 사이에서는 수십억이 투입되는 사업이라기에는 진행의 근거가 부족하다는 비판 여론이 생겨났다.

 

'우현 프로젝트’는 인천시와 중구의 독단적인 행정실태에 대한 비판적 여론 속에서 2014년 인천문화재단 문화공동체활성화 사업을 통해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용동 출신의 미학자 우현 고유섭의 미학적 태도를 본받자는 취지로 그의 이름을 본떠 지은 이름이다.

 

우현 고유섭의 이름이 낯선 이들도 많을 것이다. 인천문화재단은 매년 우현의 이름을 기리며 우현상을 시상하지만 인천시민들 중에 그 이름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 이름에 걸맞게 우현 프로젝트는 인천 원도심의 문화적 자산 전반을 살펴보는 자리들로 채워졌다. 동인천 삼치거리를 담은 저서 '삼치거리 사람들’을 집필한 최희영 작가의 강연이 개최되는 등 몇 차례 강연회나 워크숍의 형태의 행사가 이뤄졌다.


'우현 프로젝트’라는 기획이 시작되고 마무리될 때까지 오갔던 수많은 얘기들, 처음에는 독단적인 행정실태를 두고 볼 수는 없다는 경각심에서 시작했고, 문화공동체활성화 사업의 공모를 거치면서 ‘공공적 가치’라던가 '지역 공동체의 주체성’ 같은 모호한 주제로 번져갔다. ‘인천 발품’이라는 제목도 ‘인천 슬라이딩’, ‘인천 미끄러짐’ 등을 거친 투박한 말장난의 산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경각심을 느낀 만큼 의견도 다양했고 그만큼 프로젝트 전반의 언어는 모호해졌다. 프로젝트 전반을 아우르는 방점이 필요했다.

 

다시 첫 문단을 돌이켜보자. 그날은 참여자들이 도원역에서 중구청까지 원도심 일대를 집단으로 도보하는 '인천 발품’이 진행되는 날이었다. 첫 문단에 묘사한 사건은 바로 이 '인천 발품’ 기획의 일환이었다. 1km나 되는 길이의 차도는 횡단보도가 없다는 점, 중구와 동구을 잇는 싸리재길 초입을 가로막고 있다는 점에서 원도심의 지리적 단절을 상징하기에 충분했다.

음악가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댄스 음악이 울리는 간이 공연장 역할의 손수레 ‘구루부구루마'가 앞장섰다. 차도를 막고 춤을 추며 길을 건너는 법 위의 행동, 게다가 중구청이 목적지였다는 점에서 시민들의 경각심 어린 목소리가 담긴 집회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었다. 

 

우현 프로젝트를 돌이켜보면 정말 많은 이들의 지역의 일에 참여했던 귀한 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하나의 방향으로 힘 있게 진행되지 못한 것이 아쉽다. 하지만 '인천 발품’에서의 퍼포먼스는 참여자들의 공통된 염원을 담아 전달하는 그릇으로서의 인상적인 장면을 남겼다. '생활과 예술을 분리하지 않은 민예적인 것’이라는 우현 미학에 가장 근접한 순간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개항각국거리’와 ‘러시아거리’는 공사를 마쳤고 그만큼 거리의 모습도 변했다. 우리가 건넜던 차도에는 이제 횡단보도가 설치됐다. 그때 우현 프로젝트를 통해 실현된 일련의 행동들이 행정이 시행되는 과정에서 거리의 풍경에 얼마나 반영됐을까. 뭐가 어쨌 건 적어도 많은 사람들이 지역에 대한 주인의식을 가지고 참여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건 기억할 만 한 사실이 아닐까. 인천시와 중구, 그리고 시민사회가 그런 완곡한 목소리를 수용할 준비가 돼있었는지와는 별개의 문제 같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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