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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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확장”
  • 한인경
  • 승인 2018.04.12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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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다시 주목하는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Life of Pi』

<한인경의 시네 공간>은 2016년 상영된 독립영화들에 대한 평론에 이어서, 2017년부터는 ‘다시 주목하는 영화’라는 테마로 영화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영화는 이미지 너머로 발견하는 한 권의 철학서와 같다. 우리는 그 속에서 힐링하고 비상하며 철학적 사유로 삶의 의미를 읽는다.


철학과 영상미와의 절묘한 교집합

『라이프 오브 파이 Life of Pi』

개  봉 : 2013. 01. 01.개봉, 2018. 04 재개봉 예정(127분/미국)
감  독 : 이안
출  연 : 슈라즈 샤르마, 이르판 칸, 라프 스팰, 아딜 후세인
원   작: 파이 이야기(Life of Pi, 얀 마텔)
등  급 : 전체관람가 

 
        출처:영화『라이프 오브 파이』


내가 믿고 싶은 것, 그것이기를 바라는 무의식의 작용
같은 시간, 장소에서 같은 경험을 한 두 사람이 있다. 후일, 이들이 경험 했던 바를 말할 때 전혀 다른 내용인 경우가 있다. 그 당시 각자 심신의 상태에 따라 저장소에 담긴 내용의 색깔과 무게는 다를 수 있을 것으로 이해한다. 또는 자신과 관련된 부분을 좀 더 집중적으로 또는 자의적으로 기억 창고에 넣었을 수도 있고, 아예 팩트보다는 해석한 것을 사실 기억인 양 넣어 두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나의 이야기를 두 버전으로 들려주는 영화가 있다. 감독은 어떤 이야기를 믿든지, 어떤 이야기가 사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영화가 끝났어도 이야기는 계속될 것만 같은 영화, 뒷이야기는 모두 관객의 몫이라고.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다.

성인이 된 파이가 16살 때 겪은 조난 사건을 소설로 쓰고 싶다고 찾아온 작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파이는 두 버전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공통적인 내용은, 파이 아버지는 인도에서의 동물원 사업을 접고 가족 모두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는데, 동물들과 함께 화물선(Tsimtsum 침춤호)을 타고 가는 도중 태평양 한복판에서 배가 난파되며 소년 파이만 살아남아 7달 넘은 표류 끝에 구조된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신을 믿게 될 것’이라며 시작한다.


버전 1 이야기

파이는 간신히 구명보트에 오른다. 그러나 그 보트에는 파이 혼자만이 아니었다. 침몰되어 가는 배에서 뛰어내려 다리가 부러진 얼룩말, 하이에나, 바나나를 여러 개 묶어서 타고 바다에 떠 있다가 파이에게 구조된 오랑우탄 그리고 배 밑바닥에는 거대한 뱅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가 있다. 최종적으로 남게 된 리처드 파커와 파이,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구명보트로 때로는 뗏목으로 그야말로 한 배를 탄 그들이 벌이는 처절한 생존기이다.

 

출처:영화『라이프 오브 파이』
 

버전 2 이야기

두 번째 이야기는 짧지만 충격적이다. 참혹한 비극. 처음부터 보트에 동물들은 없었다. 하이에나는 침춤호 식사 배급과정에서 채식주의자 파이와 파이 어머니에게 모욕을 준 주방장, 원숭이는 파이의 어머니, 얼룩말은 20대 초반이었던 불교 신자인 선원으로 바뀐다. 주방장이 다친 선원을 결국 낚시 미끼로 사용했고 심지어 파이가 보는 앞에서 파이의 어머니를 칼로 쳐서 바다에 던졌다는 것이다. 파이는 결국 주방장을 칼로 죽였다고. 피비린내 살육전이 그려지는 내용이다. 이름이 ‘리처드 파커’인 벵골 호랑이는?

원작은 캐나다인 얀 마텔이 쓴 동명 소설로 2002년에 한국에서도 한강 작가가 <채식 이야기, 2016>로 수상한 바 있는 맨 부커상을 받았다. 이 책은 역대 수상작 중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세계에 약 1,000만의 독자가 있으며 스테디셀러 이기도 하다.

 

출처:영화『라이프 오브 파이』


16살 소년의 성장 영화, 한 편의 흥미로운 우화, 그리고 이성과 본능과의 대치, 믿음에 대한 사유의 영화 등의 관점에서 감상할 수 있겠다. 또는 영화 후에도 계속 변주 가능한 무한성을 품고 있는 영화로도 가능하다. 그 가운데 ‘믿음’이란 단어에 주목하며 필자는 주인공의 이름에서 상징성을 발견한다.
 
먼저 파이(Pi), 본 이름은 피신 몰리토 파텔(Picine Molitor Patel)

‘파이’라는 이름은 영화를 관통하는 영원, 믿음의 철학과 맥을 같이 한다.
아버지는 물이 깨끗하기로 유명한 프랑스 수영장 이름을 아들의 깨끗한 영혼을 바라는 마음으로 그대로 아들 이름으로 한다. 그러나 수영장이란 뜻의 피신(picine)은 발음이 오줌싸개(pissing)와 비슷하여 학교에서 늘 놀림을 당한다. “피싱 파텔!” 즉, 오줌싸개 파텔이 되니 열두 살 피신에게는 원작의 표현을 빌자면 ‘가시 면류관을 쓰고 교실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피신이 파이(Pi)로 불리기까지 원주율 파이π를 학교에서 소수점 아래 수천 자리까지 외워 써서 비로소 pissing의 악몽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렇게 하여 영원의 파이(Pi,π) 이름을 갖게 된다.
파이의 종교는 힌두교, 기독교, 이슬람교로 각 신을 모두 존중하며 믿는다. 어머니가 들려준 힌두교 크리슈나 신에 대한 무한한 우주, 힌두교를 통해 믿음을, 예수님을 통해 사랑을 배우며 성장한다. 파이라는 이름은 무한성, 영적인 존재, 믿음의 존재로서 상징성을 갖고 있으며, 망망대해 위 절망과 공포, 고독 속에서도 창조를 상기하며 그 안에 있음을 되새겨 힘을 얻게 된다.

 

출처:영화『라이프 오브 파이』
 

다음으로 ‘리처드 파커’라는 이름이다. 이 호랑이는 새끼 때 냇물을 마시다 ‘리처드 파커’라는 이름의 사냥꾼에게 잡힌 사연으로 ‘목마름(thirsty)'이라 불리다가 팔렸는데 서류 착오로 이름이 바뀐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소년 파이가 성당에서 성수를 먹는 것을 본 신부님이 “You must be thirsty." 라며 물을 건네는 장면이 나온다. 호랑이의 원래 이름 ‘목마름’과 신부님이 부른 파이의 ‘목마름’이 교차되는 부분이다.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는 파이의 무의식, 본능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주인공이다.


영상미

영화『라이프 오브 파이』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뛰어난 영상미다. 환상적이면서도 섬세한 묘사가 뛰어난 원작의 내용을 영상으로 옮긴다는 것이 모험이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이안 감독의 능력을 여실히 보여준 작품이다. 3D 영상의 백미로 달빛이 수놓아진 바다에서 고래가 솟아오르는 장면, CG로 탄생시킨 리처드. 수염, 근육, 움직임, 심지어 미묘한 심리까지 어느새 스크린에 빠져들게 된다.
8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비롯하여 시각효과상, 음악상, 촬영상 수상 이유를 충분히 말해준다. 이안 감독은 영화 <와호장룡> 외에도 신인이었던 배우 탕웨이를 발굴, 영화 <색, 계>에 출연시켜 세계적인 스타로 만든 대만계 미국 감독이다.

 

출처:영화『라이프 오브 파이』
 

영화 중간쯤 귀를 의심할 정도로 선명한 두 마디가 들린다. 파이가 엄마, 아빠를 애타게 부르는 소리다. 너무도 뚜렷해서 거의 놓치지 않을 것이다. 우리말과 비슷한 발음이 제법 많이 겹친다는 인도 남부 지방 언어 중의 하나라고 한다.
“Amma”, “Appa”

파이 이야기를 듣고 선박회사 직원이 작성한 보고서와 원작소설의 내용을 인용한다.

‘파텔 씨의 스토리는 난파선 역사상 가장 멋진 용기와 인내에 관한 이야기다. 그 분만큼 바다에서 오래 생존한 조난자는 없었으며 생존자 중 누구도 벵골 호랑이와 지내진 않았다.’(보고서 中)

“나를 진정시킨 것은 바로 리처드 파커였다. 이 이야기의 아이러니가 바로 그 대목이다. 무서워 죽을 지경으로 만든 바로 장본인이 내게 평온함과 목적의식과 심지어 온전함까지 안겨주다니. 그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로 사랑해, 리처드 파커. 네가 없다면 난 버텨내지 못했을 거야. 희망이 없어서 죽을 거야. (원작 소설『파이 이야기』 中)

두 버전 중 어떤 이야기가 사실인지 영화는 답을 말하지 않는다. 어느 쪽을 믿고 싶은 이유는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나 종교관, 인생관에 따라 다를 것이다. 인간은 선을 추구한다는 전제하에 생각해 본다. 만일 그것이 어떤 이유에서든지 절대적인 도전을 받았을 때는 순간 갈등, 판단 그리고 책임까지도 생각하게 될 것이다. 감독은 수위를 조절한다. 너무 무겁거나 가볍지 않게 동물과 인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믿음에 대하여 환기시킨다. 게다가 눈이 휘둥그레지는 영상까지 플러스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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