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이 나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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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이 나를 만든다
  • 안정환
  • 승인 2018.06.04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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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안정환 / 연세대 의공학부 복학생

군대를 전역하고 햇수로 4년 만에 복학이다. 새로이 시작할 인연과 다시 펜을 잡아야한다는 생각에 적잖은 기대감과 두려움에 마음을 졸였다. 첫 날은 기숙사에 짐을 풀고 가벼운 걸음으로 학교를 구석구석 둘러보았다. 20살의 내가 기억했던 학교의 모습과 지금 내 눈에 비치는 학교의 모습을 일치시키며 그 중 틀린 그림을 찾는 것도 나름 재미였다. 그러나 학교의 풋풋한 정취를 느끼며 산보하듯 나울대던 기분은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나보다 2~3살 어린 친구들이 점령한 강의실과, 기억은 가물가물하나 익숙지 않은 얼굴들의 집합은 간만의 복귀에 들뜬 나를 가라앉히기에 충분한 환경이었다. 학교를 떠난 시간만큼이나 딱딱하게 굳어 돌아가지 않는 펜대와 머리는 일주일마다 삐거덕댔고 내 머리와 재능을 의심하며 자책하는 시간도 길어졌다. 국가의 부름으로 잠시 해방되었던 20대의 고민을 다시 짊어지려니 힘겹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이런 고민은 비단 나뿐만이 가진 문제는 아닐 거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교수님과 조교님을 찾아 상담을 해보았다. 대뜸 나의 1학년 성적을 물으신다. 아, 말로 꺼내기 심히 부끄럽다. 그 분들은 다 이해한다는 뉘앙스로 미소를 띠면서 지금부터 공부에 정진하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착실히 준비하라고 말씀하신다. 상담을 들을 때는 앞날이 장밋빛으로 점철되어 있는 것 같아 잠시 마음이 부풀었으나 방문을 닫고 나오기 무섭게 다시 고민이 몰려온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대학동기들과도 밥상에 앉으면 ‘뭐 하고 살아야 될까, 내가 잘하는 것이 뭘까’란 주제가 대화의 1순위다. 나 역시 대학입시를 준비하면서 버린 옛 꿈 이후로 어느 하나를 강렬하게 바랐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순간 어떤 일에 관심을 가지다가도 스스로 나의 재능과 현실과 이런저런 그럴싸한 이유들을 대면서 지레 포기해버린 적도 많다. 이러한 판단의 척도가 단지 우울증이나 자괴감 때문이라기보다는 작금의 현실에 스스로의 가치를 재가면서 내린 나름의 합리적인 판단이라 크게 부정적인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그저 침잠해가며 홀로 답할 수 없는 문제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더욱 깊이 파고들 뿐이었다.

나는 군 생활을 한 곳에 오래 있지 않았다. 첫 실무부대에서 해안경계부대로,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영창, 다시 새로운 대대에서 해안경계부대까지. 돌이켜보면 역마살이 단단히 낀 군 생활이었다.
하지만 고단한 군 생활에서 굳이 보람을 찾자면 다양함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낯선 환경 속에서 보람을 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다른 전우들에 비해 다이나믹한 시간들을 보낸 것임은 틀림없다. 그래서 남은 군 생활을 보내는 동안 시시로 닥치는 상황에 조금의 여유가 있었던 것 같다.

‘경험이 너를 만든다.’ 미국이민 전문 변호사인 주디 장이 그 자신이 경험한 일을 써놓은 성공적 이민 이야기다. 나는 복학 전 보냈던 필리핀에서의 생활, 복학 후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까지 이 문구를 항상 되뇌였다.
젊음이 우리를 어떤 곳으로 저절로 데려가 주지는 않는다. 기성세대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훈계나 조언처럼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스스로 체험해보고 처절하게 체득하는 것이 가장 실제적 공부가 될 것으로 믿는다. 최소한 젊음을 무기로 한번쯤 무모한 도전도 해봄이 우리답지 않겠는가.

가능하다면 인턴이나 해외봉사 등 전공에 관련된 자신의 스펙을 착실히 준비하는 모범적인 사례만큼은 아니더라도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는 일과 경험을 물색해보는 것이다. 자신의 목표가 어렴풋이 연구/개발에 있더라도 영업과 서비스 일을 찾아 경험해보고, 반대로 영업과 서비스에 뜻이 있다면 초/중등 학원 강사나 단순노동도 해보며 하나의 관점으로 막힌 사고의 틀을 색다른 경험으로 환기를 시켜주는 것이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다면 해외여행을 하면서 단기 알바를 찾아보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다. 동남아 같은 경우에는 여권 연장과 숙소 비용도 저렴하다. 다양한 경험은 홀로 침잠해지는 답할 수 없는 문제에 나름의 돌파구를 만들어 줄 수도 있다.
사실 나 역시 막막하다. 계획의 시작과 구성도 감이 오질 않아 무지개를 잡으려 허공만 움켜쥐는 나날이다. 그래도, ‘경험이 너를 만드는 것’에 방점을 찍고 살아간다. 때로 어색한 혼밥도 불사해야하고 풋풋한 현역들에 비해 실험시간 내내 낑낑대는 학습부진 아이큐를 가졌지만 경험이 나를 만들 때까지 사고 칠 준비는 충분히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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