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마을과 만나고, 마을이 학교가 되는
상태바
학교가 마을과 만나고, 마을이 학교가 되는
  • 강영희
  • 승인 2018.06.07 04: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6) 시민으로 만나는 아이와 어른들을 꿈꾸며

 


@좁은 골목길 안 작은 공터. 지역에서 활동하던 단체의 예술가들이 조성하고, 주인들이 가꾸는 마을 안 비밀정원에 장미가 한창이다.


- 학교가 마을과 만나고, 마을이 학교가 되는


지난 주 금요일, 창영초교 학부모가 찾아와 “학교에 교육감후보가 온데요, 학교를 위한 제안을 하라는데 뭘 하면 좋을까요?” 하며 물었다. “혁신학교를 제안해보는 건 어때요?” 했더니 “이미 혁신학교예요, 2년 됐어요.“ 한다. ”그래요? 몰랐어요. 2년이나 됐어요? 학교가 어떻게 변했어요?“ 했더니 ”별루 변한 건 없어요. 몇 개의 놀이 수업내용이 포함됐을 뿐 큰 변화는 느껴지지 않아요.“

 

'선진적인 혁신학교의 모델들은 학교 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나의 상식과는 많이 달라서 당황했다. 이유야 없지 않겠지만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교장 선생님 생각이 좀 다른가 봐요.”라는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

 

학교 건물이 감시와 통제를 목적으로 하는 교도소와 같은 구조로 지어진 일제시대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구조 속에 아이들을 가두지 말고 마을의 다양한 풍경과 내용을 넘나들어야 하지 않을까.

 

특히 오래 살아온 어르신들이 많은 배다리 텃밭에서도, 마을 공터에서도, 양복집에서도, 책방에서도 문구점과 식당에서도 아이들의 성장을 위한 공부는 가능하다. 학교 안에서는 아무리 다양한 프로그램을 해도 정해진 틀에 갇힐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을 다시 곱씹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5월 25일에는 노명우 교수의 <인생극장> 강연이 '배다리 다多괜찮아 요일가게'에서 , 29일에는 로버트 파우저 교수의 <외국 전파담>강연이 아벨전시관 2층 '시다락방'에서 진행되었다._아벨사진 민운기.

 

아이들은 일상의 공간에서 생활의 지혜를 배우고, 배움의 기회를 놓친 어르신이나 다시 공부하고 싶은 주민들에게는 학교가 그 역할을 해주면 좋지 않을까?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일상의 소소한 교육들이 사라진 요즘 주민-어르신들의 다양한 모습과 태도를 통해 마을을 만나며 생활교육을 받고, 나이든 주민들은 지금의 시대에 맞는 어른들을 위한 생활교육-부모교육, 성교육, 노동교육, 자녀와의 대화법 등 다양한 교양공부를 하는 기회를 제공하면 어떨까?

 

지금 배다리에서는 ‘마을로 가는 교실’이라는 마을학교 프로젝트가 2년째 지역특성화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다. 책과 사람을 가운데 두고 다양한 생각을 펼치고 마을과 나누는 인문학을 시작으로 마을 공간 곳곳이 교실이 되어 다양한 것들을 배우고 생각하게 한다.

 

그러면서 문득 예전에 함께했던 단체의 다양한 어린이 청소년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내가 어려서 접하지 못했던 활동내용들을 만나며 많이 부러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난해 ‘일상이 축제가 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참여했던 주민들이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며 이렇게 공부하는 게 참 몇 십 년 만에 처음이라는 소회를 밝히며 열심히 참여하시던 모습도 떠올랐다.

 

한때 주류였던 문화센터의 이런저런 전문예술강좌는 좀 뻔하고 평범해져 버렸다. 오히려 일상의 지혜, 삶의 태도를 이해하고 고민하는 인문학 강좌는 폭발적이라 할 만큼 호응을 얻고 있다. 교육이 따로 필요할까 싶었던 일상생활의 다양한 모습은 오히려 특별하고 공부해야할 ‘무엇’이 된 게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5월27일 임대를 내놨던 대창서림이 새주인을 맞았다. 개코막걸리가 오랜만에 반쯤 문을 열었는데 결국 임대를 붙혔다. 배다리를 그리고 개코막걸리를 애정하는 사람들이 함께하면 좋겠다. _ 서점사진 장덕윤

 

- 마을이 학교가 되고, 생활이 수업이 되는 

 

동구의 배다리와 송림, 송현동 일대의 초·중·고교를 대략 꼽아 봐도 많을 때 20여 개에 이르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도 배다리 일대에만 초등학교가 4개(송림초, 동명초, 영화초, 창영초), 인근마을에 3개(서흥초, 서림초, 송현초)까지 합하면 7개나 된다.

 

동구 인구가 7만 명 이하로 떨어졌다고 한다. 노인의 비중이 크고, 아이들은 적다. 배다리도 경인철도와 주변 도로가 생기면서 삶터 공간도 많이 줄었고, 더불어 주민수도 많이 줄었다. 올해 40여명의 아이들이 창영초에 입학했는데 아이들이 많이 입학한 거라고 마을 어르신이 말씀하셨다.

 

창영초와 주변 고등학교의 등하교 시간이면 나름 이 작은 마을에도 활기가 돈다. 그러면서 나머지 시간에도 아이들이 마을 곳곳을 다니며 이것 저곳 배우면 마을이 참 생기롭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담장이 낮아져 아이들이 마을에서 이것저것 배울 기회를 갖고, 공용공간이 많이 줄어든 주민들에게 일상과 가까운 곳에 있는 학교 공간이 다양한 재교육과 공동체를 위한 활동의 공간이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6월 2일 스페이스 빔에서 진행된 도시학교 강좌. 지속적인 문화정책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지역 문화예술활동가들이 지방선거를 맞아 10대 문화정책을 제안했다. _사진. 스페이스 빔


 

- 시민이 되는 아이와 어른들
 

‘마을 활성화’를 하려는데 마을이 보이지 않았고, '마을 만들기’를 하려는데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주민모임’을 만들려고 하는데 어떤 경험 탓인지 관심이 없거나, 모임에 나가서 공식(?)적인 교류를 하고 싶지 않다는 주민들을 적잖이 만났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마을을 살기 좋게 만들어가자는 취지였지만 언제 떠나야할지 모르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는 주민도 있었다.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을 만큼만 할꺼고 굳이 같이 할 이유가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경쟁에서의 우위, 또는 생존을 최우선으로 살아야 했던 이들은 어떤 ‘갑’들에게 원칙을 무시하는 부당함에도 적당히 비위를 맞추는 ‘을’, ‘병’, ‘정’이 되어야 했다. 낙수효과를 기대하거나 안 되면 ‘민원’이라는 생떼를 쓰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들에게 갑자기 성숙한 시민의식을 요구하고,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며 다그치는 경우를 많이 봤다. 필자 역시도 한때 스스로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풀뿌리 민주주의’니 ‘주민이 만드는 마을’이니 하는 중요한 방향성이 시민사회나 심지어 행정에서 조차 제안되고 있지만 일상에서 그런 활동의 주체가 되는 ‘시민을 키우는 교육’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시간이, 여유가 없기도 하다. 학교 안에 있는 아이들에게도 학교 밖에 있는 어른에게도 그렇다. 함께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 깊은 고민이 이어지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다양한 선거 차량이 가게 앞을 지나간다. 몇 십초도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들을 수 없다. 각종 TV에도 거의 나오지 않고, 나왔다고는 하는데 어디서 나왔는지 모른다. 지역의 전체 후보자들이 어떤 태도와 생각으로 선거에 나왔는지 전혀 알 수 없다. 그들은 주민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거의 들으러 오지도 않는다. '발전'이니 '개발'이니 하는 수 십 년 구린내 나는 공약들이 여전히 들려온다. 그런데 내일부터 사전투표다.   


 @6월 6일 송현터널 앞 _ 사진. 배다리 위원회  


어제는 가을, 겨울, 봄을 지나온 주민행동 농성천막의 지붕이 몇 번의 폭우로 휘청대다 찟어져 몇몇 주민들이 모여 수리를 했다. 혼자 공간을 운영하고 오랜만에 시작하는 활동들을 챙기느라 함께 하지 못했다. 금요일만 진행하는 집회도 몇 주째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은 중동구 관통도로 폐기 주민행동 269일째인 날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