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소기업 동반성장 대책, 빈말 아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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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소기업 동반성장 대책, 빈말 아니길…
  • 박영일
  • 승인 2010.10.27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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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시평] 박영일 교수 /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돈 많고 힘센 자들만 챙기던 이명박 정부가 난데없이 공정사회를 외치고 그 일환으로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추진대책’이란 것을 요란하게 발표한 지 한 달이 돼 간다. 그렇지만 현장에서 이렇다 하게 눈에 띄는 변화는 없는 모양이다. 그 동안 드러난 대통령과 그 측근들의 됨됨이, 가치나 성향으로 봐서 많은 국민들도 시큰둥했었으니 그러려니 하고 말 것인가?    

   사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하고 동반 성장해야 할 당위는 어제 오늘이 아니다. 대·중소기업간 불공정거래와 불균형 성장이야말로 한국경제가 앓고 있는 고질병의 총체와 맞닿아 있다. 현재 당면하고 있는 경제위기의 근원인 사회경제적 양극화, 성장잠재력의 정체, 고용 없는 성장으로 인한 고실업과 비정규직화도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고 있다. 대·중소기업의 상생과 동반성장이야말로 한국경제가 최우선적으로 풀어내야 할 숙명적 과제다.

   워낙 중요하고 긴급한 과제이기에 뜬금없어 보이는 대통령의 외침에 혹시나 하는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아니, 이 문제 만큼은 또 하나의 빈말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바람도 있다. 그러기에 정부의 대책이 요란한 일회성 조치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동반성장'을 먼저 들고 나왔던 지난 13일 청와대 간담회 모습ⓒ청와대 
  
  대기업이 안도하고 중소기업이 아쉬워하는 정부 대책

   정부가 발표한 동반성장 대책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지만, 일부 법제도 및 관행의 개선을 포함한 긍정적인 면이 포함돼 있다. 납품 단가를 인하할 경우 대기업이 정당한 사유를 입증하도록 하도급법을 개정하고, 법 적용을 2차 이하 협력업체로 확대하는 것이 그것이다. 동시에 하도급계약 시 표준계약서를 사용하고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기술 관련 자료를 요청할 때 서면 사용을 의무화하고, 중소기업의 자생력 강화를 지원하고 동반성장위원회를 구성하여 지표를 작성·공표하고 점검반을 운영하며, 중소기업의 기술개발, 인력양성에 필요한 투자를 독려하고 대기업의 협력사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정부 대책은 기본적으로 대기업의 의식 전환이나 시혜적인 조치에 의존하고 있어 공허한 말잔치에 그칠 공산이 크고 실효성도 의문이다. 당사자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적계약에서 강자인 대기업의 인식전환이나 시혜에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순진한 발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한계는 당사자들의 반응에 가감 없이 드러났다. 즉, 정부 대책에 대하여 재벌 대기업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반면, 중소기업계에선 아쉬워하고 볼멘소리가 적잖은 분위기였다. 

   중소기업문제의 본질은 재벌지배체제와 교섭력 격차 

   원래 우리나라의 중소기업 보호·지원정책은 다른 어떤 나라와 비교해서도 하등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잘 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의 경영환경은 어느 나라보다도 열악하다. 이 역설적 현상의 근본에 동서고금을 통하여 유례가 없는 경제력 집중과 독과점시장구조가 존재하고 있다. 이로 인하여 중소기업에 제공한 각종 지원책의 혜택이 결국에는 대기업으로 흘러들어가게 돼 있다.

   자유경쟁을 전제로 하는 시장경제체제 하에서 계약조건은 기본적으로 당사자의 교섭력, 협상력에 의존한다. 대·중소기업 간 하도급거래에서 상호 경쟁하는 다수의 중소기업은 불리할 수 밖에 없다. 개개 중소기업은 거래단절, 심하게는 사업 포기를 각오하지 않고서는 대기업의 거래 강요·배제·차별·방해에 얽매이지 않을 수가 없다. 중소납품업체에 대한 재벌기업의 납품단가나 하도급대금 후려치기, 물품 구매 강제, 물품수령 거부나 부당 반품, 대급 지급 지연, 기술 약탈 등이 끊이지 않는 근본 이유다. 

   대·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은 계약에 임하는 중소기업의 교섭력을 강화하는 일이 출발점이다. 수가 많아 서로 경쟁하는 상황에서 중소기업이 믿을 힘은 단결뿐이 없다. 말하자면, 집단화, 조직화다. 대기업 한두 곳의 낙점을 받기 위해 수백, 수천의 중소기업이 경쟁하는 대신에 공동으로 대처함으로써 수직적·종속적 하도급체계에서 탈피하여 대등하게 교섭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이는 새삼스러운 주장이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공정거래법만 제대로 시행하면 된다. 공정거래법과 시행령에는 거래 조건의 합리화를 위해 대기업과 경쟁관계에 있거나 대기업에 대항하기 어려운 경우에 중소기업의 단결과 공동행위를 허용하고 있다. 문제는 대기업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상황에서 폐업을 각오하지 않는 이상 중소기업들이 뭉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가 나서야 한다. 산업별 혹은 업종별로 중소기업들이 대기업과 거래에서 공동으로 교섭할 수 있도록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서서 단결을 주도해야 한다.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에 대한 엄격한 법집행을

   엄정한 법집행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시장지배력 남용과 불공정행위로 시장경제의 기본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를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 이는 지금 당장에라도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가능하다. 문제는 사법부를 포함하여 검찰,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 국세청 등 국가기관이 제구실을 못하는 데서 비롯되고 있다. 이들 기관이 재벌의 영향력 하에 놓여 제 역할을 못하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재벌공화국이라고 자조하고 빈정거리는 것이다. 

   엄정한 법집행을 위해 다음 두 가지는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하나는 대기업의 약탈적 거래를 방지하기 위해 공정위에 부여된 ‘전속고발권’의 활성화다. 공정거래법과 하도급법 위반 사건에 대하여 고발권을 공정위가 행사하지 않음으로써 피해 중소기업이 법의 심판에 호소할 길조차 가로막아 결국 공정위가 대기업의 불공정행위를 비호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공정위를 쇄신하여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게 하거나, 아니면 전속고발권을 박탈하여 피해자가 직접 법에 호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하도급법을 위반한 대기업에 실제 손해액보다 훨씬 많은 과징금과 벌금을 부과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하는 일이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공약으로 인수위원회가 검토한 사항이다. 그런데 출범 이후 도입하지 않고 있으며 금번 대책에서도 빠졌다. 

    어음경제제도도 폐지해야 한다. 

   대금결제관행에 있어서도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쥐어짤 수 없도록 악명 높은 어음결제를 폐지해야 한다. 신용카드 사용이 보편화된 사회에서 아직도 대기업이 납품업체에 어음으로 결제하는 관행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한국만의 후진적 관행이다(오직 일본에서만 극히 예외적으로 남아 있다).

   어음결제의 폐단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납품업자가 현금화하기 위하여 할인율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납품가격을 2중으로 깎이게 된다. 최근에 정부의 권유로 일부 재벌기업이 현금결제를 하고 있으나 이 경우에도 어음할인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제하고 결제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또한 어음은 여러 단계를 거쳐 유통되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부도가 날지 불확실하고 흑자도산이나 연쇄부도의 우려도 커서 신용질서 전체를 위협한다.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1999년 기업이나 정부의 구매 시에 기업구매카드를 사용하도록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었다. 부도 피해도 줄이고 결제기간도 단축할 수 있어 중소납품업체들이 선호하고 정부의 장려책도 있어 새로운 결제제도로 정착돼 왔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 이후 감소추세로 반전하고 있다고 한다.

   대·중소기업의 상생, 동반성장은 한국경제의 미래를 좌우할 핵심적인 과제이다. 그러기에 이명박 정부가 그 동안 외면해왔던 중소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동반성장대책을 발표한 데 대하여 평가하는 것이다. 대책이 지닌 많은 문제점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진정성을 가지고 진지하게 추진하기를 바란다. 현실적으로 동반성장은 한 차례의 대책으로 달성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이제 출발점에 선 것에 불과하다. 우선 당장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기존의 법제도를 제대로 시행하고 부당하고 불공정한 행위를 엄정하게 처벌하는 일부터 착수하여 한국경제가 새롭게 도약할 기틀을 만들어 줄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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