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뚜껑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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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 뚜껑을 열며
  • 나보배
  • 승인 2018.06.25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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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나보배 / 인하대 융합기술경영학부 2학년

자취생활이 길어질수록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보다 사먹는 일이 잦아진다. 사방팔방 자리 잡은 편의점과 도시락 전문점 덕에 도시락을 사먹는 일도 적지 않다. 식당에서의 혼밥보다 적적하지도 않고, 비싸지도 않다. 도시락을 사들고 집으로 가는 길만큼 가벼웠던 발걸음이 또 어디 있으랴. 전자레인지에 넣고 3분만 공들이면 따뜻한 밥 한 끼를 즐길 수 있다. 끼니를 고르는 근심마저 덜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걱정을 사서 쌓는 청춘들에겐 끼니 그 이상이다.
 
최근 편의점 3사의 도시락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9.0% ~ 31.4%까지 늘었다고 한다. 편의점의 매출에서 5~10%가 도시락 판매에서 나온다고 한다. 편의점 도시락만의 시장규모는 약 6,000억 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도시락의 인기에는 가파른 1인 가구 증가가 한 몫을 했다. 국토교통부의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전국 1인 가구는 539만7615가구로 집계됐다. 2015년에 비해 3.73%나 상승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도시락을 포함하는 간편식 시장과 관련한 시장분석 보고서 3종을 2017년에 발간한 바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정간편식 시장규모는 1조6720억 원(2015년 기준)으로 1인·맞벌이 가구 수요 확대로 5년 사이 무려 51.1% 성장했다고 한다.



 

앞으로의 추세를 보면, 소비자의 소비방식에 큰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도시락과 간편식은 대부분 편의점과 준대규모점포 그리고 대형마트에서 구매하기 쉽다. 결국 우리 세대를 시작으로 전통시장에 대한 발걸음이 대폭 줄어들 것이다. 이를 우려해 유통산업발전법 12조 2인 영업시간 제한과 같은 규제가 신설되었다. 규제를 통해 소비자들이 전통시장을 선택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2015년 기준 재래시장의 매출은 규제 시행 전인 2011년과 거의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규제의 기대효과는커녕 소비자들이 갈수록 전통시장을 찾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규제에 대한 불만만 커지고 있다. 한 언론사가 한국경제연구원과 함께 조사한 설문조사에서 대형유통업체에 대한 영업제한과 출점제한 규제에 관해 응답자의 과반이 넘는 61.5%가 관련 규제의 폐지 혹은 완화를 희망했다고 한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실시한 ‘전통시장 및 상점가(지하도) 점포 모집단 구축 조사’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전국 전통시장 내 점포수는 205,551개다. 그 중 먹는 것과 관련된 업종의 비율이 전체의 50.4%나 차지한다. 음식점을 뺀 식료품 관련 업종의 비율은 37.3%다. 이런 구조로 보았을 때, 전통시장이 도시락을 비롯한 간편식 시장에 도전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본다. 매년 타성에 젖은 예산지원에도 전통시장이 매출감소를 겪는 이유가 있다. 예산으로 연명하는 수준에서는 창조적 파괴로 이어지는 과감한 혁신 DNA 발휘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통과한 추경예산에서 소상공인과 전통시장 예산배정에 3,704 억이 투입된다. 아무런 혁신 없이는 보나마나한 '예산지원'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도시락 뚜껑을 열며, 버려진 군사산업단지를 활기 넘치는 산업단지로 재조성한 뉴욕의 네이비야드나, 전주 폐산업시설을 문화예술 산업지대로 재구성한 사례처럼 과감한 혁신과 개혁이 넘치는 사회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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