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에서 벗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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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에서 벗을 생각하다
  • 심형진
  • 승인 2018.07.03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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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남도답사 1번지 강진


<강진 백련사 동백나무 숲. 다산과 혜장선사, 초의선사가 머물렀던 이곳은 한낮인데도 어두컴컴하다>


귀촌하여 작목반의 꾸러미사업 -농민이 제철에 생산한 농산물을 꾸러미에 담아 일 년 단위로 계약을 한 도시 소비자에게 보내주는 직거래 사업- 을 주관하고 있는 벗을 만나러 몇몇이 강진에 갔다. 인천에서 강진까지 대략 4시간 40분이 걸린다. 빠르다는 것이 고속도로의 장점이지만 그 빠른 만큼 주변의 경관은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빠른 속도도 감추지 못하는 경관들이 있다. 강진에 다가갈수록 강진과 영암의 행정구역을 가르는 월출산의 빼어난 스카이라인에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나타났다 사라졌다하는 월출산의 전경이 가져다주는 흥분은 여행의 기대를 더욱 높인다.



<월대마을 뒷산인 월각산 자세히 보면 거북이와 강아지의 모습이 보인다>


벗이 사는 곳은 성전면 대월리다. 성전면은 강진읍 북쪽 월출산 남쪽에 있는 곳이다. 서쪽으로는 해남과 맞대어 있다. 대월리는 마을 뒷산인 월각산 품에 안겨 월출산을 마주보고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큰 길에서 마을로 접어들 때부터 눈에 들어오는 월각산은(마을 뒷산) 뿔처럼 솟은 바위가 일품이다. 몇 십호가 모여 사는 마을 맨 위에 사는 친구의 작업장 마당에서 월각산이 거침없이 보인다. 산 정상에는 동자승과 거북이 형태의 바위가 눈길을 끈다. 작업장에서 나오는 친구는 과할 정도로 일행을 반긴다. 그도 그럴 것이 며칠 동안 입을 떼지 않을 때도 있다고 하니 뜻이 통하고 추억도 공유하는 친구가 왔으니 오죽하랴. 공자가 말한 인생의 즐거움 세 가지 중 하나인 “벗이 있어 멀리서 부터 찾아오니 그 또한 반갑지 않을쏘냐.”(有朋自遠方來 不亦悅乎)를 굳이 인용할 필요도 없다.

벗을 한자로 표현할 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벗 붕(朋)이요 하나는 벗 우(友)다. 붕은 뜻이 같은 친구를 말함이요, 주로 동문수학한 친구나 그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사상적 뜻이 같은 친구이다. 우는 우리말로 불알친구라 할 수 있는데 어릴 적부터 함께 지낸 격의 없는 친구이다. 붕우유신(朋友有信)은 사상적 동지나 불알친구 모두에게 다 믿음이 있어야 하는 관계 맺기의 가르침이다. 일단 격한 환대를 받으니 내가 과연 그럴 만한가를 돌아보게 된다.



<월출산 무위사 극락보전과 경내>


벗을 만나러 온 여행이기에 이번 강진에서는 벗과 관련한 일을 특히 주목해서 보게 된다. 점심식사를 하기 전에 잠깐 들른 무위사는 강진하면 빼놓을 수 없는 여행지다. 유홍준 교수가 『나의문화유산답사기』에서 극찬한 절집으로 국보와 보물이 즐비한 곳이다. 건축 부재들이 구획하고 있는 측면의 공간분할이 아름다운 극락보전이 국보로 지정되어 있고, 극락보전에 모셔져 있는 보물인 삼존불상 뒤 불화도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보물로 지정된 선각대사 탑비 역시 볼거리다. 무위사의 대단한 볼거리 중에서도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선각대사다. 선각대사는 신라 말 후삼국시대에 활동한 선사이다. 궁예가 후삼국을 거의 다 통일하고 지배할 때 그의 전횡과 만행을 바로잡고자 승려들을 모아 개성으로 올라가 상소를 하다 철퇴에 맞아 죽었다고 알려졌다. 후에 고려 시조 왕건에게 선각대사라는 시호를 받게 되었다. 그는 깨달음 때문에 한 사람에게는 죽임을 한사람에게는 추서를 받았으니 대사와 함께 이 땅 강진에서 개성까지 함께 한 사람들을 움직인 것은 무엇일까?



<강진다원과 그 뒤로 월출산 자락이 보인다>


무위사를 나와 월남사지로 가는 길에 10만여 평의 너른 차밭이 보인다. 1980년대부터 개발된 차밭이다. 백련사가 있는 만덕산은 한 때 야생 차나무가 많아 다산이라고 불렸다. 이곳에 귀양 온 정약용 선생은 이 곳 지명을 따 다산이라는 호를 지었고 머물던 집도 다산초당이라 하였으니 강진의 차 역사를 알 수 있다.
월출산은 달빛을 받아 빛나는 그 바위산의 모습을 보아야만 진수를 알 수 있다. 단지 달이 떠오르는 산이 아니라 달빛에 본 모습이 드러나는 산이다. 가까이 가면 그 모습이 아예 보이지 않고, 너무 멀면 전체는 보이지만 그 속사정을 볼 수 없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야만 진면목을 볼 수 있다. 그 적절한 거리가 바로 월남사지이다. 월남사지에는 3층 석탑이 하나 있다. ‘부잣집 맏며느리와 같다’는 그 탑을 보러 갔는데 탑은 수리를 위해 해체되어 있다. 탑은 보지 못하고 월출산만 보았다.

 

<모란동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영랑생가>


동선을 따라 영랑의 생가에 갔다. 생가에 들어서려는데, 문학답사팀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사람 들 속에 낯익은 이가 보인다. 이렇게 만나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사람이다. 예전 유적 답사를 다닐 때 만난 동호회 사람이다. 강진이 나에게 인연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준 기회 같다. 인연이 있으면 만날 사람은 다 만날 수 있을까? 1초 전까지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만나고 잠깐 있다 또 가버린다. 영랑은 그런데 왜 그렇게 가버린 것을 보내지 못하고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는 걸까? 이런 것이 시인과 범인의 차이일까? 생가 뒷동산에 오르면 세계 각지에서 온 모란을 심어 놓았다. 시절 인연이 닿지 않아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 노래한 모란꽃은 볼 수 없지만 동산 전망대에서 내륙 깊숙이 들어온 강진만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 멀리 포구가 아련하게 보이는 풍경이 좋다.



<영랑생가 뒷동산에서 본 강진읍과 강진만>

<백련사 만경루 창을 통해 강진만이 보인다>

강진은 만이 육지를 깊숙이 파고 들어와 마치 강인 듯 호수인 듯 그 바다의 입구를 찾기가 어렵다. 강진만과 맞대어 있는 산이 만덕산이다. 이 만덕산에는 정약용 선생이 머물던 다산 초당이 있고, 그곳에서 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다산이 오가며 담소를 나눈 혜장선사가 주석한 백련사가 있다. 이 두 사람은 백아와 종자기의 지음처럼 불교와 유교의 경계를 넘어 당대 최고의 지식인으로서 교유했다. 이 두 사람에 더해 다성으로 일컫는 초의선사와의 만남도 주목할 만하다. 이 둘의 만남은 후에 초의와 추사와의 만남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벗의 만남에 무엇이 매개가 되든지 그 진정이 전해지면 서로의 우정이 모두의 행복으로까지 전파됨을 볼 수 있다. 만덕산하면 생각나는 또 다른 사람이 하나 있다. 정계은퇴 선언을 하고 이곳 만덕산 토굴에 들어 2년여를 보내고 다시 출사표를 던진 사람이다. 그 사람의 출사를 기다린 많은 사람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했는데 결국 그들 모두가 지금은 그와 함께 정계를 은퇴할 지경에 몰리게 되었다. 친구 따라 강남 갔으나 결국 박 씨는커녕 다리만 부러진 꼴이다. 그래도 우정은 남았으리라 그들 또한 우정을 쫓아 자신의 진로를 결정한 것이니. 이들 외에도 만덕산은 백련사 만경루에서 바라본 강진만의 절경으로 유명하다. 또한 동백나무 숲도 한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지경이다. 동백나무 숲에 들어앉은 고승들의 부도 밭에 앉으면 다산과 혜장 그리고 초의선사의 두런거림이 들리는 듯하다.


 

만덕산을 내려와 해지는 모습을 보러 강진만의 건너편 마량으로 간다. 벗들과 함께 지는 해를 본다. 강진에서의 긴 하루가 저문다.

친구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강진 읍내에 있는 사의재((四宜齋)에 들른다. 정약용이 강진에 처음 왔을 때 머물던 주막집이 있던 곳이다. 이곳 방 한 칸에서 서당을 열어 동네 아이들을 가르치던 곳이기도 하다. 듣고 보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마땅히 하겠다는 서원을 담은 사의재. 귀양의 황망함에 마음을 두지 못하고 방황하는 약용에게 똘똘한 동네 아이들을 모아 줄 테니 가르쳐 보지 않겠느냐는 주모의 제안이 없었다면 다산의 강진살이가 어떻게 전개되었을지 모른다. 또한 정약용은 주모와의 대화에서 만물의 미세한 이치를 깨닫고 여성에 대한 편견을 접고 세상의 반인 여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후에 혜장과 인연을 맺었지만 아마도 주막집 노파와의 만남이 없었다면 혜장과의 인연도 이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의재를 둘러보며 정약용과 노파의 만남을 생각한다. 문수보살의 현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박대한 수많은 고승들의 이야기가 바로 이러한 일의 반면교사리라. 저자거리에 사는 백성의 삶의 지혜가 책속에 묻혀 사는 서생의 머리를 강타하였으니 노파와 약용의 만남은 문수보살과 염화시주의 가섭과의 만남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또한 벗의 만남이리라.
강진에서의 하루가 길었다. 술 한 잔과 하루를 이야기하는 벗이 있으니 이 밤 또한 새로운 인연의 시작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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