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의 부활을 환영하며 - 더 많은 여성들이 자유로워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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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의 부활을 환영하며 - 더 많은 여성들이 자유로워지길
  • 국지혜
  • 승인 2018.07.10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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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국지혜 / '열다북스' 대표

지난 겨울, 그나마도 짧게 유지하던 단발머리를 더 짧게 잘랐다. 늘 긴 생머리였고 가끔 기분전환 삼아 웨이브를 주거나 어깨 길이로 단발을 치는 정도가 평생 내 헤어스타일의 전부였다.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았던 숏컷 스타일을 시도하기로 결심하게 된 데에는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올라오는 ‘탈코르셋 독려글’의 영향이 컸다. 최근 긴 머리, 화장, 다이어트와 성형은 물론이고 브래지어와 치마, 하이힐 등 여성에게만 요구되는 꾸미기 활동을 거부하는 탈코르셋 운동은 10대부터 30대까지 주로 젊은 여성들이 주도하고 있는데, 최근에 각종 뉴스에까지 보도되면서 4050여성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모양새다. 중년여성들이 공부하는 모임에서도 탈코르셋이라는 주제로 토론하고 글 쓰는 일이 늘었다고 하니 말이다.

코르셋은 “여성에게 차별적으로 요구되는 각종 의무”를 말한다. 최근 탈코르셋 바람은 주로 외모 코르셋을 이야기하지만 도덕 코르셋이나 효도 코르셋이라는 말도 있다.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보다도 친절하고 상냥할 것으로 기대되고 예의나 도리, 규칙 준수에 대해 더 높은 기준으로 평가받는다. 여성 연예인들은 공식 석상에서 짝다리를 짚고 서 있거나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는 것만으로도 악플 세례를 받으며, 작품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도 작품에 대한 질문보다는 외모 관리에 대한 질문을 더 많이 받는다. 반드시 허리를 꼿꼿하게 하고 다리를 모으고 앉아야 하며 거만해 보여서는 안 된다. 연예인뿐만이 아니라 모든 여성들이 공식적인 자리에 나갈 때 화장을 하고 치마를 입을 것을 권유받는다. 여자 중고등학생들의 교복이 점점 작아져 활동은 물론 한 시간을 앉아 있기에도 불편하고, 직장에서도 여성들은 치마를 입거나 높은 구두를 신고, 더운 날씨에 화장 상태를 유지하도록 요구된다. 최근에는 초등학생들까지도 화장품을 사모으고 있으며 중학생 교실에서는 화장 안한 학생을 찾는 것이 빠르다는 소리도 나온다.

어떤 사람들은 누가 코르셋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면서 “여자들은 원래 꾸미는 것을 좋아하고 그래서 입지 말라고 해도 알아서 그렇게 입으며, 자기가 좋아서 하이힐을 신고, 화장을 한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학생들이 교복을 사러 가면 넉넉하게 맞는 치수의 옷이 나오지 않아서 애초에 선택의 여지가 없고, 여자가 화장을 하지 않고 직장에 나가면 ‘어디 아픈 거 아니냐’는 말을 듣거나 ‘게으르다’는 질타를 받는 사회에서 정말 이런 미용 행위들이 자발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문화적으로 여성에게 요구되는 꾸미기 관습에 대해서 이제 더 이상은 못하겠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탈코르셋 문제는 단순히 여성이 외양을 꾸미느냐 마느냐의 문제만은 아니다.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적은 임금을 받는데, 한국의 여남 임금격차는 보통 36%에서 높게는 38% 수준으로 OECD 순위에서 1위를 놓치지 않는다. 남성들보다 36%의 임금을 덜 받으면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일 년에 95일을 더 일해야 같은 수준의 임금에 도달하고, 하루 일과로 따질 경우 오후 3시 이후부터 여성은 무급 노동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결과가 나온다. 이런 인식에 따라 작년 여성의 날에 한 여성단체가 3시에 조기퇴근 하는 시위를 진행하기도 했다. 또 최근에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온라인을 중심으로 ‘여성소비총파업’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매월 첫째 주 일요일에는 여성들이 다함께 소비를 멈추자는 것으로 “우리가 멈추면 세상도 멈춘다”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2017년 3월 8일 진행된 한국여성노동자회 조기퇴근시위 카드뉴스 중에서>



<매월 첫 번째 일요일에 진행되는 #여성소비총파업 홍보 포스터>
공식계정 twitter.com/k_w_g_c_s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적은 임금을 받으면서도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외양을 꾸미도록 요구받는다. 화장품, 다이어트식품, 미용보조제와 성형시술 등 성형뷰티산업은 한국 경제를 단단히 떠받치고 있으며 여성들은 힘들게 번 돈을 ‘코르셋’ 구입에 쓰도록 구조화되어 있다.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아름다운 외양을 추구한다한들, 돌아오는 것은 ‘성형미인’ 심하게는 ‘성괴(성형괴물)’라는 낙인이거나 최근 미투 운동에서 보듯이 직장 내외에서 성희롱의 대상이 되는 것뿐이라는 것을 떠올려보면 젊은 여성들이 느끼는 박탈감이 충분히 이해될 것이다.

나는 요즘 숏컷 머리에 화장을 하지 않고, 불편한 브라를 벗어던지고, 움직이기 편한 옷과 신발을 착용하고 되도록 팔자걸음으로 걷는다. 많은 남성들이, 그리고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탈코르셋을 가리켜 ‘과격한 운동 방식’이라고 말하기 좋아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의 맨얼굴과 팔자걸음은 아무도 해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자유로워질 뿐. 다른 여성들의 글을 읽고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내 이야기를 통해 많은 여성들이 작은 것 하나라도 내려놓길 바란다. 꾸미는데 들였던 비용으로 저축을 하거나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하고, 꾸미는 데 사용했던 시간에 새로운 공부나 취미생활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남성들이 불편한 것은 여성들도 불편하다. 인류의 절반이 불편한 옷과 신발, 속옷과 헤어스타일에 익숙해지도록, 당연히 받아들이도록 만들어져 온 문화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 여자에게나 남자에게나 편한 것은 좋은 것이다.

이제 2014년 이후에 멈추어버린 인천in의 여성칼럼이 새로 시작된다. 2015년 이후부터 한국에서 새로운 세대의 여성운동이라고 할 정도로 여성의제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으며, 이는 2016년 5월에 일어난 강남역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더욱 확대되었다. 임신중단합법화(낙태죄 폐지) 운동, 여성대상 살해 및 폭력 근절 운동, 학교 및 직장 내 성폭력과 성차별에 대항하는 운동, 여성혐오적 기업을 불매하고 여성 임원 비율이 높은 기업의 물건을 사자는 여성소비자 운동, 불법촬영에 대한 경찰의 편파수사를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와 더불어 머리를 자르고, 화장을 버리고, 편한 옷 입을 권리를 되찾자는 운동이 사방에서 일어나고 있다. 새로운 여성운동의 물결이 넘실거리는 이 때, 여성칼럼이 ‘부활’한 것을 축하하며, 인천in이 더 많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창구의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더불어 인천지역 여성들의 네트워킹과 상호교류·소통의 장이 되기를 바란다.

 

 <2018년 8월 인천여성의 전화에서 진행하는 10대 청소년 대상 탈코캠프 홍보 포스터>
신청링크 goo.gl/yLNwq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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