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인천 사진에 푹 빠져 지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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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인천 사진에 푹 빠져 지내죠"
  • 김주희
  • 승인 2010.11.01 17: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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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이 만난 사람] 김식만 치과의사

취재: 김주희 기자

"여기에 러시아 영사관이 있었죠. 그 오른쪽 옆에 해무청 청사가 있었는데, 건축가 김중업씨 초기 작품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두 건물 모두 철거됐습니다. 전쟁으로 부서진 것도 아니고…. 다른 건물 짓겠다고 순식간에, 망설이지도 않고 부숴 벌이더군요."

옛 인천 사진에 푹 빠진 이가 있다.

본업은 치과의사인데 아픈 이를 치료하는 일보다 옛 사진 찾아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는 김식만(62·사진)씨.

5개월 전 치과가 있는 남구 용현시장 인근에 아직도 남아 있는 낡은 철길을 따라가다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빠져 지금껏 모아온 사진만 5천 장.

그것도 유독 인천의 옛 사진뿐이다.

"철길을 걷다가 여기에 뭐가 있었는지 궁금해지더군요. 수인선 옛 모습이 어떠했는지 인터넷을 찾아 돌아다니다 보니 다른 사진들도 찾게 됐습니다."

한국 사이트는 물론, 일본과 미국의 사이트까지, 인터넷 사이트란 사이트는 다 뒤지고 다녔다.

지금은 인천의 영문 표기가 'Incheon'이지만, 그가 검색할 때는 'Inchon', 또는 인천의 일본어 발음에 따른 영문 표기 'Jinsen'이나 제물포의 영문표기인 'Chemulpo' 등을 검색어로 주로 사용한다.

그렇게 인터넷을 뒤지다 보니, 6·25 한국전쟁 때부터 1970년대까지 인천에 주둔해 있던 미군들이 찍은 사진이 쏟아져 나왔다. 수인역사의 사진이며, 인천항의 모습을 담은 사진에 현 중구청 일대를 고스란히 간직한 사진이 수두룩했다. 제물포로 검색해 나온 사진도 의외로 많다고 일러줬다.

그렇게 찾은 사진 속에서 그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사진을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진 속 과거 사실이 궁금해졌고, 그래서 이 책 저 책 공부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책 속에 나와 있는 내용 중 틀린 부분이 많더군요. 어떤 건 소설이에요."


김 원장이 1973년판 '한국의 여행'에서 발췌한, 러시아영사관(사진 가운데 흰색 건물)과
그 옆 해무청사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김 원장은 인터넷 말고도 책이나 신문 등도 자료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두 건물의 철거를 김 원장은 굉장히 안타까워했다.

지역사회에서 전쟁 통에 부서졌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졌던 여러 건물이 1950년대 말 찍힌 사진에 버젓이 나와 있거니와, 전쟁이 나기 전에 사라진 것들도 발견했다.

전문가도 아닌 그가 전문가들에게 이건 틀렸고 저건 수정해야 한다고 말했을 때, 되돌아오는 반응은 그러나 냉담했다.

김 원장이 그렇게 자신의 말에 강한 확신을 갖는 이유는, 전문가들이 '정설'로 설명하는 그 건물들이 그의 어릴 적 옆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진 속에 담긴 산줄기와 건물의 모양, 그리고 또렷한 기억으로 사진을 판독한다.

단순히 판독만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주장이 맞는지 틀린지, 꼭 신문기사와 같은 객관적인 증거를 제시한다.

실수할 때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는 사진 판독에 확신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사진 속 과거 세상은 마치 보물지도와도 같았다. 그가 보고 자란, 지금은 많이 사라지고 없는 것들이 사진 속에는 고스란히 남아 있어 그랬다.


주한미군 출신 Norb-Faye씨의 홈페이지에서
김 원장이 찾아낸 1948년 부평 일대를 담은 사진이다.
현 산곡시장인 백마장과 일제시대 무기를 만들던 조병창 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인터뷰 중에도 연신 이 사진, 저 사진 원본을 확대해 사람들의 얼굴표정을 하나하나 살피고, 판독이 어려운 흐릿한 간판 상호까지 꼼꼼히 알려주었다. 여기가 어디고 저기는 또 어디인지, 신나게 설명하는 그의 얼굴은 홍예문 일대에서 뛰어놀던 10살 꼬마아이의 웃음기 어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안타까워했다. 러시아 영사관이 개발이란 명목에 밀려 순식간에 철거되며 묵사발이 된 기억이 되살아나 그러했다.

기록의 중요성이 간과되는 현실이나, 또 그 기록을 여럿이 함께 공유하지 못하는 현실이 또 아쉽기만 하다.

"사진을 소유한 미국인들에게 '당신이 알고 있는 사실이 틀렸다'고 하면 다들 고마워하며 내용을 수정합니다. 그런데 미국인들이 잘못 쓴 내용을 우리는 고스란히 퍼와 마치 그 사실이 진실인 양 무조건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사실이 잘못됐다고 해도 바꾸려고 하지 않아요."


김 원장이 '라이프'지에 실린, 1960년 4·19 혁명때 인천에서 벌어진
학생 시위 사진을 보고 회상에 잠겨 있다. 


김 원장의 말이 이어졌다.

"인천의 옛 사진을 모아놓았는데, 주로 1950~70년대 것들이 많아요. 월미도나 부평 등지에 있던 미군들이 찍은 것이지요. 1970년대 이후, 한국군이 30년 가까이 있었던 시절의 사진은 나오지 않아요. 기껏 찾은 사진은 공수부대원이 전우와 찍은 사진 같은 것들이에요. 사진을 찍지 않은 것인지, 공개를 하지 않는 것인지…. 그런 것 보면 속이 상합니다."

이렇게 모은 사진으로 그는 지난 5월 한 포털 사이트에 블로그(blog.naver.com/kkkk8155)를 개설했다.

'인천이 어제와 오늘'이란 주제로 매일 같이 사진을 올리고 있다.

하루 방문객은 140명 정도다. 인천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주로 찾는다고 했다.

사진과 함께 그는 철저하게 자신의 경험담을 근거로 글을 올린다. 인천의 어제와 오늘을 남에게 알리는 일이기도 하지만, 본인의 기록을 정리하는 일이라 그렇다고 했다.

"학술적인 것은 이미 책 속에 많아요. 그렇다고 그걸 베껴 쓰기는 싫고. 내가 본 것을, 그리고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씁니다. 책을 보고 공부한 사람과 실제로 본 사람은 분명히 다릅니다."

그는 되도록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서 옛 사진을 많이 공유하길 바랐다. 되도록 사진의 원본을 볼 수 있도록 해 주었으면 한다고도 했다. 사진의 사이즈가 작으면 보물찾기가 어려워 그렇다고 했다.

왜 인천의 옛 사진에 그토록 빠져 있느냐고 채차 물었다.

계속된 질문에 대답 없이 사진만 바라보던 그가 짧게 말했다.
 
"인천에 대한 애향심이 있지 않고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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