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기억하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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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기억하는 역사
  • 한인경
  • 승인 2018.07.24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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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다시 주목하는 영화 『호텔 르완다 Hotel Rwanda』


<한인경의 시네공간>은 2016년 상영된 독립영화들을, 2017년부터는 ‘다시 주목하는 영화’라는 테마로 평론을 이어가고 있다. 영화는 이미지 너머로 발견하는 한 권의 철학서와 같다. 우리는 그 속에서 힐링하고 비상하며 철학적 사유로 삶의 의미를 읽는다.

 
“르완다의 겨울”

개  봉 : 2006. 09. 07. 개봉(121분/영국 외)
감  독 : 테리 조지
출  연 : 돈 치들, 소피 오코네도, 닉 놀테, 호아킨 피닉스, 장 르노
등  급 : 12세 관람가 



출처:영화『호텔 르완다』


‘아프리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나.
언제부턴가 TV에서 난민구호단체에서 호소하는 광고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거의 아사 직전의 아프리카 아이들을 화면에 보여주며 후원을 호소한다. 물론 선진화의 길로 발전하고 있는 나라도 있지만 고온, 정글, 에이즈, 말라리아, 기아, 내전, 노예…… 어쩐지 현대 문명과는 거리가 있는 단어들, 독재자로 알려진 우간다의 이디 아민도 떠오른다. 아프리카의 역사 알기에 소극적이었던 점과 저개발국가 선입견이란 편식에서 원인을 찾아본다. 미국이나 유럽의 사정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검은 대륙 아프리카, 그 중앙에 위치한 한반도 넓이의 약 1/8 정도인 나라 ‘르완다’를 기억하는 영화가 있다.


『호텔 르완다』
‘100일 동안 1,268명의 목숨을 지켜 낸 한 남자의 감동 실화’
영화 제목과 포스터에 있는 문구를 봐도 언뜻 영화 내용이 그려지질 않는다. 다큐멘터리 영화는 아니지만 르완다와 아프리카의 분할 식민지에 대한 선이해가 필요한 영화다.

벨기에의 인종분리 식민 통치

19C부터 20C초까지 유럽 제국주의 열강들의 침략으로 아프리카는 한 두 나라를 제외하곤 거의 모든 지역이 유럽의 식민지로 분할 통치되었다. 르완다는 벨기에가 1916년 수도 키갈리를 점령하면서 이후 엄격하게 인종분리와 착취로 식민 통치되고 있었다. 르완다는 후투Hutu족과 투치Tutsi족이 주를 이루는데, 벨기에는 르완다의 약 85%를 차지하는 후투족을 14% 정도인 투치족이 지배하게 하는 인종 분리 정책을 펼친다. 두 부족은 르완다 왕국 시절부터 존재했으나 서로 교류를 하면서 지내왔고 증오심 같은 것은 없었다.

‘르완다에 진출한 벨기에는 투치족이 유럽인들과 비슷한 외모를 가진 것에 주목했고, 이들을 유럽인의 먼 친척으로 우대하면서 식민 통치의 앞잡이로 활용하기로 결정했다.’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2012, 시공사)

벨기에가 의도를 갖고 만든 코, 키 등으로 구분하는 모호한 구분법은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는 증명서를 봐야 투치족인지 후투족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들 간에도 까다로운 일이었다. 문제는 후투족과 투치족이 외모나 문화적으로 큰 차이가 없음에도 벨기에 자국의 정책 유지 수단으로 부족 간 갈등을 조장해 간 것. 벨기에는 투치족에게만 권력을 주었고 반면 핍박을 당하는 후투족들에겐 분노가 쌓여갔다. 후투족의 증오의 화살은 식민지화한 벨기에가 아닌 실제 생활에서 자신들을 제압하는 투치족에게로 정조준 된다.



출처:영화『호텔 르완다』


1962년 독립이 되면서 후투족에게로 권력이 옮겨진다. 후투족에게 밀려 인근 우간다로 추방당한 투치족은 반란군을 만들며 거의 일상이 죽고 죽이는 내전이다. 1993년까지 수십 년간 대량학살, 인종차별이 지속된 것. 연립정부 협정이 체결되어 평화가 눈앞에 와 있는데, 1994년 4월 6일 연립정부를 추진하던 후투족 하뱌리마나 대통령이 탄 비행기가 미사일에 의해 격추된다.

다시 영화로

제노사이드 (Genocide 집단살해)

후투족은 투치족에 의해 대통령이 사망했다는 거짓 방송으로 시민들을 선동한다. 다음 날부터 후투족 군부 강경파들과 시민군은 반역자를 축출한다는 명목으로 투치족과 온건한 후투족들에 대한 끔찍한 인종 청소, 제노사이드를 저지르게 된다. 극단주의 후투족은 투치족을 바퀴벌레로 부르며 죽이는 데 총알로 아깝다며 ‘마체테Machete’라는 밀림에서 사용하는 서슬 시퍼런 칼로 난도질한다.

약 100일 동안 르완다 인구의 거의 12~13%에 해당하는 100만 명가량이 살해되는 르완다판 홀로코스트가 자행되었다. 거의 하루에 만 명 정도가 학살당한 셈. 2차 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이 정확한 수치를 알 수는 없지만 대략 600만 명에 이른다고 하는데 르완다의 경우 약 100일이라는 기간을 고려해보더라도 유례없는 비극임이 틀림없다.

‘이것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보다 더 심한 제노사이드였다. 성직자, 의사, 교사 할 것 없이 이 광란의 잔치에 모두 가담했다. 이 학살로 인해 르완다로부터 흘러나오는 물에는 인간의 잔해가 넘쳤으며 빅토리아 호수에는 커다란 시체 더미가 쌓였다. 이것은 인간의 광기였고 군인과 민병대만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을 죽일 수는 없었다. 민간인이 가담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단순히 사람만 죽인 것이 아니라 모든 잔혹한 방법으로 죽였다.’ (‘아프리카를 말한다’, 2014, 세창미디어)



출처:영화『호텔 르완다』


영화의 대략은
르완다의 4성급 호텔 ‘밀 콜린스’의 지배인 ‘폴 루세바기나’가 호텔로 피신한 투치족과 온건한 후투족 난민들 1,268명을 보호해 주었고 결과적으로 그들의 생명을 구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세 가지 감상 포인트

① 사실주의 영화에 대해 짧은 인용으로.
‘대체로 사실주의적인 영화는 왜곡을 최소화하여 현실 세계가 드러나는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자 한다. 사실주의 감독은 그들의 영화 세계가 조작되지 않은 실제 세계의 객관적인 거울이라는 환상을 고수하려고 한다. 이런 영화감독들은 영상을 어떻게 조작할 것인가 보다는 오히려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에 더 많은 관심을 둔다. 카메라 사용은 보수적이다. “영상이 지나치게 아름다우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라는 말은 암묵적인 전제이다. (‘영화의 이해’ , 2017, 도서출판 K-books)

르완다 학살을 중심 테마로 끝까지 끌고 간다. 영화이다 보니 부분적으로 미화, 과장, 순화, 각색도 있겠지만 고도의 특수효과나 영상미보다는 사실을 전달하려 했다. 24년 전 발생한 르완다 참극과 실제 주인공 ‘폴’의 영웅담을 보여주며 자연스레 정치, 사회, 인종에 관한 이데올로기적 견해가 깔린다.

아쉬운 점이 있다.

실화 주인공인 폴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두 부족 간의 갈등과 만행에 집중하다 보니 그러한 대학살이 벌어지게 된 근본 원인에 대한 지적은 소홀했다. 원인 분석은 리얼리티의 간접 체험을 넘어 해결과 개선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팩션* 영화이지만 서방의 침묵 가운데 속수무책으로 벌어졌던 르완다 집단 학살, 내부적으로 소수의 엘리트 후투족이 주동이 된 역사적 팩트에 주목하며 감상해보자.



출처:영화『호텔 르완다』


② ‘폴’의 행동 변화를 주목하자.

잠깐 다른 영화 이야기를 해 본다.
티켓 파워 배우 송강호가 열연한 영화 <변호인>, 송우석 변호사가 처음부터 인권변호사의 길을 택한 것이 아니었고, 영화 <택시 운전사>의 만섭도 마찬가지였다. 만섭은 폴처럼 영업에 능했던 사람이 아니었다. 빠듯한 현실이 벅차기만 했던 소시민 만섭은 스펀지에 물 스며들듯이 어느 순간 광주의 처참한 실상을 알리는 데 앞장 서 있게 된다. 역시 실존 인물을 다룬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오스카 쉰들러는 만섭보다는 오히려 폴에 조금 더 가까운 인물이다. 돈을 벌기 위해 유대인까지 수단화하며 전쟁 중에도 로비에 능한 사업가였다. 그러나 쉰들러는 독일군의 만행에 점차 마음이 돌아서고 아우슈비츠로 갈 유대인 1,100명의 목숨을 구한다.

집회나 정치참여에 소극적인 폴은 혼란스러운 사회체계에서도 호텔 운영에는 현실 적응을 잘하여 후투족 강경파들과 뒷거래하기도 한다. 벨기에人 회장을 대신하여 실질적으로 호텔운영을 하는 폴은 정치, 이념보다는 가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가장이고 게다가 투치족 아내를 둔 후투족이다.

벨기에 사람이 회장이면서 소수의 유엔군과 외국인이 묵고 있는 밀 콜린스 호텔은 투치족에겐 유일한 안전지대. 호텔은 더는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붐비게 된다. 폴은 매정하게 거절은 못 했지만 마음 한쪽에서는 처음부터 투치족을 호텔에 보호해 주지 말아야 했다는 자책을 하며 이런 상황이 끝났을 때 이 직장을 잃을까 걱정한다. 정치적 모임 또는 이웃 투치족이 살해당하는 일에도 침묵했던 폴이 감동 실화의 주인공으로 변해가는 모습도 놓치지 말자.



출처:영화『호텔 르완다』


③ 퇴치해야 할 적이 누구인가?
결국 죽임을 당한 사람들은 르완다 국민인 후투족이고 투치족이었다. 참으로 안타까웠다. 대상이 다르지만, 충분히 시사점이 있는 영화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2006)와 장훈 감독의 <고지전>(2011)을 추천한다. 특히 장훈 감독의 <고지전>은 1950년 시작, 1953년 끝이라는 누구나 알 것 같은 내용의 한국 전쟁 이야기에서 벗어나, 잘 알려지지 않은 1953년 2월부터 7월의 휴전협정이 체결되기 전까지 교착전이 한창일 때 최전방 ‘애록고지’에서의 공방전을 다룬 영화다. 


‘프랑스와 벨기에 군대는 외국인과 르완다 정부 고위 인사들을 소개(疏開)하는 임무를 수행할 뿐 르완다 내부에서 일어나는 학살에 대해서는 수수방관했다.’ (‘아프리카를 말한다’)

“우릴 구조해 줄 사람도 중재해 줄 사람도 없고, 우리뿐이다.” (폴 루세바기나)


대학살 중재를 해 줄 것으로 믿었던 유엔은 백인들, 외국 국적인 사람들을 탈출시키는데 병력을 동원했고 르완다 주재 유엔군도 르완다 참극에 끼어들지 말라는 명령을 받는다. 모두 르완다에서 도망치듯 철수하고, 결국 르완다, 호텔 안과 밖에 남겨진 사람은 르완다 국민들뿐이다. 호텔 안에는 투치족과 온건 후투족들이고 밖은 피 냄새를 쫓아 온 강경 후투족들이다.



출처:영화『호텔 르완다』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인종 청소는 투치족 반란군 장교 폴 카가메Paul Kagame에 의해 진압이 된다. 유엔이나 벨기에, 프랑스 등 외부 힘이 아닌 르완다인에 의해 르완다 대학살이 마침표를 찍은 것.

‘투치는 제노사이드에 대한 보복으로 후투를 절멸시키려 하지는 않았다. 수도 키갈리를 점령한 후 폴 카가메는 연합정부를 수립하고 융합정책을 펼쳤다. 대통령은 후투족이, 투치족인 폴 카가메 자신은 부통령, 18명의 장관 중 12명이 후투 출신으로 임명되었다.’ (‘아프리카를 말한다’)

감독은 어떤 메시지로 소통하려 했나.

영화는 상업적 압박을 안고 만들어진다. 그러나 실화 그것도 시대적, 정치적인 배경이 깔렸다면 감독 본인이 의도했든 안 했든 이데올로기적 메시지가 담기게 된다. 『호텔 르완다』는 좀 더 적극적으로 다뤄지지 않은 점이 아쉬운 부분이긴 하나 제국주의자들이 보는 아프리카인에 대한 시각, 그리고 극단의 후투족이 행한 만행을 보여준다.

르완다 대학살은 하나의 국가, 두 부족 간의 누적된 증오, 분노가 폭발한 것이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그러한 증오심을 갖게 만든 벨기에와 후투족을 후방에서 지원한 프랑스에 있다. 소수 강경파 엘리트 후투족들, 당시 침묵한 서방 열강도 자유롭진 못하다. 즉, 스크린 너머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이 빚어낸 결과가 어떤 비극을 초래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영화가 기억하는 역사
영화 『호텔 르완다』는 르완다 나아가 아프리카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하는 마중물로써 충분한 역할을 해낸 영화다.

참혹했던 내전의 아픔을 딛고 상생과 평화를 일구고 있는 르완다. 국토의 20%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여 자연생태를 보호하고 있는 아프리카의 대표 자연보호 국가, 적도 부근에 있지만 연중 평균 기온이 한국의 봄 날씨와 같은 나라. 제2의 싱가포르를 꿈꾸며 부상하고 있는 이 작은 나라 르완다의 화해와 희망 그리고 평화를 기원한다.




*팩션Faction(Fact과 Fiction의 조어) 영화
역사적 사실에 영화적 상상력과 재미를 가한 영화. 퓨전 사극이 대표적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면 <덕혜옹주>(2016)로 Fact에 Fiction을 더한 영화다. 팩션 영화를 감상하다 보면 사실과 허구와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관객은 어느 순간 스크린 전부를 사실로 받아들이게도 된다. 역사를 100% 재현하는 영화는 불가능하다. 상상력이 추가되어 극적인 스토리를 만들어가긴 하지만 핵심은 감독의 해석이다. 감독이 해석하는 역사가 스크린에 올려지는 것이고 관객들은 다양한 감상 후기를 내놓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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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천사 2018-07-25 13:40:37
아직 안 본 영화인데, 설명을 보고 나니 더 보고 싶어졌습니다. 기사가 매우 유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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